우선 영화 좀 좋아한다, 그리고 피가 철철 흐르는 화면도 영화만 괜찮으면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중 아직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안 보신 분이 있다면 바로 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올해 놓쳐서는 안 될 영화니까요~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서영희 씨가 연기하는 학대 받고 살던 김복남이라는 여성이 자신을 학대해온 가해자, 그리고 가해자들에 대해 묵인해온 방관자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니까요. 그 와중에 지성원 씨가 연기하는 복남의 친구 해원이 끼어들면서 새로운 파국이 연출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단순한 스토리를 보면서 저는 참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목을 자르고, 피가 튀기는 슬래셔무비여서가 아니라 다른 무엇 때문에 마음 한곳이 계속 불편했는데 한참 뒤에야 원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건 복남의 복수 대상에 남편과 시동생, 친구 등 극중의 가해자와 방관자들뿐 아니라 관객들도 포함되어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어요. 다르게 말하면 복남에게 일어난 비극을 촉발시킨 역할을 하는 방관자들 가운데 관객인 나도 포함되어 있는 듯한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낙타는 가장 마지막에 올려놓는 깃털 같이 가벼운 짐 때문에 쓰러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도 관성적으로 더운 사막을 천천히 걸어갈 수 있었던 낙타가 한계치를 넘어선 마지막 짐 때문에 쓰러지듯, 일상을 어떻게든 유지해 가던 사람이 옆에서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은 일 때문에 평정심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복남의 비극은 깃털처럼 가벼운 짐이라고 하기는 어렵죠. 그의 마음을 붕괴시킨 것은 다른 방관자들과는 달리 가장 믿었던 존재니까요. 하지만 그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한 사건이 복남과 그를 둘러싼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아쇠가 된다는 것은 비슷한 점이 있는 듯해 위의 말을 인용해 봤습니다.
다시 방관자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죄의식을 느끼는 방관자 중 한 사람이 되어버린 저는 올봄에 본 다른 영화 한 편이 떠오르더군요. 송두율 교수님에 대한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를 볼 때 겪었던 일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이 영화를 볼 때도 불편한 마음으로, 침묵하고 방관하며 송 교수님을 몰아세우는데 일조했던 이들 중 하나라는 죄의식을 느꼈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은 시간, 같은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분들은 다르게 생각하시더군요. 국민참여당 당원들과 시민광장인가 하는 단체 회원들께서 단체 관람을 오셨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송 교수님을 다른 길로 가게 하려 강요하는 이들과 어이없는 질문을 하는 기자들에게 끊임없이 야유를 하시더군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먼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사실 이런 분들의 경우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보면서도 불편하다고 느끼기보다는 가해자들과 극중의 방관자들에 대한 분노만을 느끼실 가능성이 높을 것 같긴 합니다.
글이 길어지다 보니 스포일러성의 문장들도 가끔 눈에 띕니다만, 내용을 좀 알고 가셔도 상관없는 영화니까 주저하시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놓치지 말고 보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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