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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동물, 함께 사는 이야기

토종 돌고래 상괭이를 꼭 드셔야 하나요

 "고래 고기를 먹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그걸 꼭 드셔야만 하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신다면 대부분 시민들은 아마 "꼭 먹고 싶은 건 아니지만, 경험 삼아 먹어볼 생각은 있어요.", "먹어보진 않았는데 궁금하긴 하네요.", "궁금하긴 한데 꼭 먹고 싶지는 않네요." 이 정도로 답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여기서 고래 보호와 상괭이 고기 유통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하는 저는 먹어본 경험이 있다는 것부터 고백합니다. 6년 전인 2009년 당시 저는 서울시와 행정안전부를 출입하고 있었는데 대변인실과 기자단의 오찬에 울산 부시장이 고래고기를 올려보낸 적이 있습니다. 다른 행안부 출입기자분들은 귀한 음식이라며 맛나게들 드셨고, 저는 꺼려지긴 했지만 몇 점 집어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만 해도 고래류의 혼획과 유통에 대해서는 무지했기에 입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반성까지 하면서 고래류에 대해 말씀드리는 이유는 서울 시내 전통시장에서도 고래류가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는 지난달 시민 제보로 서울 둔촌동 시장 내 한 상점이 상괭이를 판매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 상점은 2월 중순과 3월 초 상괭이를 통째로 전시해 놓았으며, 3월 중순에도 상괭이로 의심되는 고래류를 해체해 전시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카라 활동가들이 찾아갔던 지난 8일에도 상점 측은 냉장고 안에 고래고기를 보관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하는 카라에서 보내주신 사진들입니다. 아마 둔촌동 사시는 분들은 '아 저기 아는 가겐데.'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여기까지는 2월 15일 한 시민이 카라에 제보해주신 사진입니다.




상괭이의 모습이 좀 더 확연히 나타나는 이 사진들은 지난 3월 2일 제보자께서 촬영하신 사진입니다. 




   지난 3월 중순 제보자께서 다시 찾아가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상괭이로 의심되는 고래류 동물을 해체해 판매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카라 활동가들이 4월 8일 이 상점에 찾아가 물었을 때도 냉장고에 고래고기가 있다고 답했다고 하네요. 멸종위기 고래류인 상괭이가 재래시장에서 유통되는 사실에 놀란 카라 활동가들은 해양경비안전본부와 해양수산부 등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렸지만 혼획된 고래류의 유통은 합법이라며 조치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밖에는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부의 ‘고래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가 혼획으로 죽은 고래의 유통을 허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고래의 불법 유통을 정부가 묵인, 방조하고 있는 셈이지요.


실제 지난 27일에는 울산 앞바다에서 불법 포획의 흔적이 남은 밍크고래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어민 그물에 걸린 6m짜리 밍크고래의 등 부위에 작살이 박혀 있었던 것인데요, 울산 해양경비안전서는 불법 포획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 포획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하네요.

고래 고기 유통을 정부가 묵인, 조장하다 보니 법적으로 금지된 불법 포획까지 시도되고 있는 셈인데요, 2012년에도 상괭이를 불법 유통시키던 일당이 태안에서 검거된 바 있습니다.


 2013년 한겨레신문의 '고래는 운이 나빠 그물에 걸려 죽는 걸까' 기사(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07673.html에 따르면 국내에서 혼획된 고래의 수는 2011년 1054마리, 2012년 2633마리인데 이 가운데 합법적으로 유통된 고래는 2011년 277건, 2012년 1126건에 불과합니다. 대구mbc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혼획된 고래류는 1849마리이고, 상괭이가 1200마리 가량으로 67%를 차지했다고 하네요. 여기서 잠시 상괭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상괭이는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이 취약 등급으로 분류한 멸종위기종이자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서 보호종으로 지정한 동물입니다. 국내 남서해안에 주로 서식하고, 몸길이는 약 1.5m가량입니다. 고향인 제주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 같은 남방큰돌고래의 2분의 1에서 3분의 1 정도 크기지요.


이런 사실에 대해 동물보호단체 카라에서는 정부의 보다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혼획된 고래의 유통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많은 수의 상괭이가 혼획에 희생당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서남해안에만 사는 상괭이 수가 이러다 급감해 버리면 다시 수를 늘리기는 어려운 일일 뿐더러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카라에서 제기한 다음 질문에 저는 "아니오"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세상에 먹을 것이 많고, 아직 먹어보지 못한 것들도 많은데 꼭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고래 고기를 먹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다음 질문에 동의합니다.

먹는다 하더라도 어떻게 유통이 되는 건지, 합법적인 것인지 불법인지 정도는 알 수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디선 구조해 방류하고, 어디선 먹겠다고 난리를 치는 한국의 고래정책은 쓴웃음이 나오는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이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