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인도, 태아 성감별 여아 낙태 ‘젠더사이드’ 만연
“내이름은 이제 나쿠사가 아니라 사크시예요. 사크시라고 불러주세요.”
지난 10월 22일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 사타라에 이름이 나쿠사인 소녀 267명이 모였다. 마하라슈트라 주 지방정부가 사실상 이름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소녀들에게 새 이름을 가질 기회를 주기 위한 행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나쿠사는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 지역의 마라티어로 ‘원치 않은’이라는 뜻이다.
아들을 낳기를 원했던 인도 부모들이 원치 않은 딸이 태어났다는 의미로 나쿠사라는 이름을 붙인 탓에 이 지역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녀들 수백명이 살고 있다. 이 부모들은 딸에게 나쿠사라는 이름을 붙일 경우 다음에 태어나는 아이가 아들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날 증인이라는 뜻의 사크시라는 이름을 새로 얻은 16세의 소녀는 지난 10월 24일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개명 행사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고, 내가 그 특별한 일의 증인이라는 뜻에서 이름을 사크시로 골랐다”고 말했다. 사크시는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나를 사크시라고 불러달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아선호사상·거액 지참금이 원인
그는 “나는 나를 갖기를 원치 않았던 부모님을 이해한다”며 “부모님은 나보다 먼저 언니 셋을 낳았고 딸을 그만 낳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말했다. 사크시는 “하지만 내 뒤로도 여동생 둘이 더 태어났다”고 덧붙였다.
이날 개명 행사에 딸을 데리고 온 스와티 구드는 눈물을 흘리며 “딸에게만 새로운 정체성이 생긴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새 정체성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여성의 딸은 만시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사타라 지역은 남아선호사상이 강해 남초현상이 극히 심각한 인도 내에서도 여성 인구 비율이 가장 작은 곳이다. 인도 전체에서 남성 1000명당 여성은 914명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881명에 불과하다.
형편이 넉넉한 집안에서는 불법 태아 성감별로 아기가 여자아이인 것으로 판명되면 낙태를 하는 경우가 많다. 매년 인도에서 낙태되는 여아는 드러난 숫자만도 수십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일간 힌두스탄 타임스에 따르면 인도에서 유일하게 무슬림 인구가 많은 카슈미르 잠무 주에서는 6세 이하 여아의 비율이 급감해 종교지도자 등이 협력해 여자아이 구하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발표된 인도 2011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이 지역의 남아 1000명당 여아의 비율은 859명으로 지난 10년 동안 가장 빠른 추락세를 보였다. 이 지역에서 여자아이들이 줄어드는 이유 역시 태아 성감별 후 여자아이를 낙태하기 때문이다.
결혼할 때 신부 측에서 신랑 측에 거액의 지참금을 지불해야 하는 제도도 낙태나 여아 살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성감별을 할 만큼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부정하는 성감별 후 중절은 성별에 따른 대량살상을 뜻하는 젠더사이드에 포함되며, 인도는 젠더사이드가 만연한 국가로 꼽힌다. 젠더사이드는 인종말살(제노사이드·genocide)에 빗댄 용어로, 1985년 미국 여성작가 메리 앤 워런의 <젠더사이드>라는 저서에 처음 등장한 바 있다.
역시 남아 1000명당 여아 비율이 898명에 불과한 인도 북부 우타프라데시 주의 마을 두 곳에서는시민단체들이 70억명째 아기의 출산을 축하하는 행사를 열었다. 우타프라데시 주에서만 1분마다 11명의 아기가 태어나는 만큼 어느 아기가 70억명째인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한 데도 이 단체들이 이날 처음 태어난 아기를 70억명째라며 기념했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남아에 비해차별을 받는 여아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우타프라데시 주 인구의 대부분은 하루 2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극빈층이며 여자아이들은 남성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영국에 본부가 있는 어린이복지단체 플랜은 이날 우타프라데시 주의 주도 러크나우 인근의 말 마을에서 태어난 여자아이인 나르지스를 상징적인 70억명째 아기로 정했다. 러크나우 교외에서도 시민단체 바트살야가 비슷한 행사를 열었다. 유엔은 최근 이날 70억명째 아기가 태어난다고 발표했으나 구체적인 장소나 시각을 밝히지는 않았다.
남초 현상이 심각해지고 결혼 상대를 찾지 못하는 남성들이 늘어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형제가 한 여성을 아내로 삼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10월 27일 세 형제의 아내로 생활하고 있는 인도 여성 무니의 사연을 소개했다. 무니가 결혼해서 우타프라데시 주 바그파트 지역의 시집에 왔을 때 남편의 부모는 그에게 “너를 남편의 형제들에게도 나눠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니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들(남편과 형제들)은 자신들이 원할 때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를 취했다. 내가 저항하면 그들은 나를 마구 때렸다”고 말했다. 남편과 형제들은 성관계를 강요했을 뿐 아니라 무니를 구타하고 집밖에서 자게 하는 등 갖은 방법으로 학대했다.
로이터통신은 무니와 같은 사례가 많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남편과 함께가 아니면 밖에 나와서 다니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경찰도 단속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2011년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바그파트 지역의 남성 1000명당 여성의 비율은 858명에 불과하다. 특히 어린이들의 경우 남아 1000명당 여아는 837명으로 2001년의 850명에서 13명 줄어들었다.
은퇴한 경찰관인 시리 찬드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마을마다 적어도 결혼을 못 한 남성들이 5~6명씩 되고 심지어는 한 집안에 신붓감을 못 구한 총각이 서너명씩 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 내 다른 지역에서 신붓감을 돈을 주고 사오는 경우도 있지만 결혼 안 한 형제들이 한 여성과 사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형제가 한 여성을 아내로 삼는 일도
신붓감을 언어와 생활방식이 전혀 다른 서뱅갈 등 다른 지역에서 데려올 경우 남자쪽에서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1만5000루피(약 34만원)가량이다. 14살 때 자신보다 13살 더 많은 남편에게 시집 와서 아이 셋을 낳은 서뱅갈 출신의 여성 사비타 싱은 “난 이곳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아무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며 “나는 자유를 잃었다”고 말했다.
<김기범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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