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경향 국제기사

[주간경향] 사우디 여성 운전권 ‘험난한 길’

[세계]사우디 여성 운전권 ‘험난한 길’

ㆍ보수층 인식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처벌 주장까지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에게 운전할 권리를 허용하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자동차 운전을 금지하고 있는 사우디에서 여성의 운전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여성이 운전을 하다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사우디가 여성들의 운전을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왼쪽) 페이스북 페이지 ‘우리는 모두 마날 알 샤리프다. 사우디 여성들의 권리와 연대에 대한 요구’에 올려져 있는 마날 알 샤리프의 모습. (오른쪽) 6월17일 여성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운전을 할 것을 촉구하는 인터넷 대자보.

지난 5월 31일 미국 CNN방송은 사우디 인권활동가들의 말을 인용해 단지 운전을 했다는 이유로 사우디 종교경찰에 체포됐던 사우디 여성 마날 알 샤리프(32)가 전날 보석으로 석방됐다고 보도했다. 알 샤리프는 5월 21일 운전을 했다는 혐의로 바로 체포됐다가 몇 시간 후 석방됐지만 다음날 또 운전을 하다 구속당한 바 있다.

정보통신(IT) 업체에서 일하는 컴퓨터 보안전문가인 알 샤리프는 체포되기 전 자신이 운전하는 모습을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렸는데, 이는 높아지는 여성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사우디에서는 흔치 않은 싱글맘인 알 샤리프는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사우디 사회에서 남성들은 물론 남편이 있는 다른 여성들에 비해서도 매우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다. 그는 법을 지키기 위해 “(남자) 운전사를 고용할 경우 수입의 3분의 2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가족들 가운데 남성들이 운전을 해주지 않는 이상 운전기사를 고용하지 않으면 차를 이용할 수 없는 사우디 여성들에게 있어 운전을 할 권리는 평등권뿐 아니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절실한 문제인 셈이다. 미국 뉴햄프셔주에 체류하던 시기에 운전면허를 취득한 그로서는 비싼 비용을 들여 운전기사를 고용해야 하는 현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는 구속되기 전 CNN과의 인터뷰에서 “비도 물 한 방울로부터 시작된다”며 “이것은 우리 여성들의 운전을 위한 상징적이고 작은 시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알 샤리프의 변호사와 만났던 인권활동가에 따르면 알 샤리프는 다시 구속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온라인 통해 세계적으로 관심 받아
알 샤리프와 사우디 여성들의 권리 증진활동은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온라인 공간을 통해 알려지면서 관심을 얻고 있다. 알 샤리프는 유튜브에 자신이 운전하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여성이 운전을 하는 게 뭐가 나쁜가’라는 이름으로 올렸다. 이 동영상은 10만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AFP통신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마날 알 샤리프다. 사우디 여성들의 권리와 연대에 대한 요구’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지난 2일 현재 2만6179명이 지지를 표시해 놓았다.

한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이 지난 5월 24일 수도 리야드에서 자동차에 올라타고 있다. 리야드/AP연합뉴스
사우디에서 여성의 운전권리를 인정하라는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도 소규모의 시위나 청원서 제출 등의 시도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계획적으로 다수의 여성들이 참여하지는 못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1월부터 중동과 북부 아프리카의 아랍국가들에서 일고 있는 민주화 바람이 사우디 여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등 민주화 바람이 불어닥친 나라들에서 시위대의 사이버 근거지 역할을 했던 페이스북은 사우디 여성들의 운전권리 쟁취운동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알 샤리프를 포함한 사우디 여성들이 여성운전 금지법을 폐지하기 위해 만든 운동단체의 이름은 ‘위민투드라이브(Women2drive)’로, 이들은 페이스북에 ‘내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운전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이름의 페이지를 만들어놓고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를 통해 여성들에게 외간 남성들과의 접촉을 금지하고 있으면서도 주로 외국인 노동자인 남성 운전기사를 고용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점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여성들 전반적 권리향상 요구 나서
사우디 여성들은 운전권 부여를 요구하는 것뿐 아니라 선거권 등 전반적인 권리 향상도 요구하고 있다. 지난 4월 23일 누하 알 술라이만(28)을 포함한 사우디 여성 12명은 지방선거를 위한 유권자 등록이 시작된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선거사무소를 찾아 유권자로서 등록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했다. 제다와 다맘, 코바르 등에서도 비슷한 일이 연출됐다. 현재 사우디는 여성들에게 선거권 등 정치적인 권리를 부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알 술라이만 등은 ‘사우디 여성 혁명’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중심으로 선거법 개정운동을 벌이고 있다.

여성이 남성 후견인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돼 있는 후견인 제도를 폐지하는 것도 이들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다. CNN방송에 따르면 사우디 여성들은 남편, 아버지, 형제, 아들 등 가족 구성원 가운데 남자들로부터 결혼, 취직 같은 중요한 일들은 물론 공부, 여행, 병원 치료 등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알 술라이만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을 만날 수 없었지만 소셜미디어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줬다”며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활동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지난 5월 24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택시를 잡고 있다. 리야드/AP연합뉴스
여성들의 운전권 쟁취는 쉽게 이뤄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긴 하지만 사우디 보수층들의 인식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성들이 모르는 남자와 만나는 일이 잦아지면서 가정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또한 이들은 운전을 하는 여성들에 대해 채찍질로 처벌을 가해야 한다는 운동까지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한 여성 기업가가 사우디 내에서 자신의 운전기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사건이 사우디 내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2일 AFP통신은 현지 일간 오카즈를 인용해 익명의 한 여성 기업가가 이슬람의 성지인 메디나의 공업지역에서 자신의 운전기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이 여성을 성폭행한 운전기사는 현지 경찰에 체포된 상태로 아직 국적은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사우디 여성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통해 오는 17일 집단으로 운전을 감행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 알 샤리프가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렸던 것을 본떠 운전을 하고 있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여성들도 나타나고 있다. 17일 사우디에서 벌어질 여성들의 비폭력, 불복종운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김기범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holjja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