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본 IT 양대 스타의 ‘희비교차’
ㆍ“손정의를 총리로!” 찬사 쏟아져 VS 벤처 영웅 호리에 실형 확정
'손 마사요시를 총리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 내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54)과 2000년대 초·중반 일본 벤처의 총아로 떠오르며 숱한 화제를 만들었던 호리에 다카후미 전 라이브도어 사장(38). 일본 정보기술(IT)업계의 큰손인 두 사람의 현재 대비되는 모습이 관심을 끌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호리에 다카후미 라이브도어 전 사장
지난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를 덮친 이후 손정의 사장이 보인 행보로 인해 일본 내 그의 인기는 계속해서 치솟고 있다. 손 사장은 4월 3일 개인 돈 100억 엔(약 1300억원)을 대지진 성금으로 기부했다. 개인 기부금으로는 가장 많은 액수다. 손 사장은 또 2011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부터 앞으로 은퇴할 때까지 소프트뱅크에서 받게 될 연봉도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손 사장의 2009 회계연도 보수는 총 1억800만 엔(약 23억원)이었다.
그는 기부에서 그치지 않고 일본의 에너지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재단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손 사장은 4월 20일 일본 민주당의 동일본 대지진 부흥비전검토팀 모임에 참석해 현재의 원전 의존적 에너지정책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연에너지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개인 돈 10억 엔을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정부에 태양광, 풍력 등의 발전설비를 대대적인 규모로 갖춘 동일본솔라벨트 구상을 제안하는 동시에 이 같은 방식으로 만든 전기를 모두 사들이라는 제안도 내놓았다. 그는 원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는 분위기인 일본의 유력 인사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원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日 트위터 팔로어 수 1위
손 사장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일본 누리꾼 가운데 일부는 ‘손 마사요시(손정의의 일본 이름)를 총리로’라는 댓글을 달며 열광하고 있다. 손 사장이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것에 대한 반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국적을 갖고 있는 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견이 다수다.
물론 손 사장은 지진 발생 이전에도 일본인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트위터에서 일본 누리꾼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모습도 손 사장이 인기를 끄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손 사장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트위터 팔로어(구독자)를 갖고 있으며, 4월 29일 현재 손 사장의 팔로어는 112만7327명에 달한다.
그는 이번 대지진 이후에도 트위터에 소프트뱅크의 휴대전화 기지국 상황 등에 대해 보고하고, 복구가 빨리 진행되지 않는 것에 대한 사죄글을 올리며 누리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4월 29일 새벽 1시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 지진피해 기지국에 대해 회사에서 예정했던 복구공사는 일단 완료했습니다”라는 보고글을 올렸다.
일본 갸루의 포털사이트 GRP(www.grp-r.net)가 조사한, 갸루들이 주목하고 있는 트위터 유명인 10인에서도 손 사장은 남성으로는 유일하게 7위를 차지했다. 영어 ‘걸(Girl)’을 일본어 식으로 발음한 갸루는 특유의 화장법과 패션으로 꾸민 젊은 여성들을 뜻한다. 대부분 갸루들이 선망하는 패션 모델들인 다른 유명인들 사이에서 대머리에 전형적인 중년 아저씨 모습인 손 사장이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해 GRP는 “손 사장의 일하는 방식과 생활방식이 높은 공감을 얻고 있고, 이상적인 상사의 모습으로서 호감을 받고 있다. 결단력과 행동력에서 매력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1957년 8월 일본 규슈의 사가현 토스시에서 재일교포 2세 손삼헌씨의 차남으로 태어난 손 사장은 74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때부터 일본 성을 버리고 한국 성을 사용하고 있다. 81년 손 사장이 처음 직원을 데리고 설립한 소프트뱅크는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이 됐다. 1998년에는 도쿄 증권거래소에 주식이 상장됐고, 2000년에는 760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해 미국 <포브스>가 조사한 세계 부호 순위에서 4위에 오르기도 했다. 2011년 현재 재산은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폭락한 주가로 인해 81억 달러(약 8조6800억원)를 보유해 세계 113위로 내려앉았지만 여전히 일본 내에서는 1위를 지키고 있다.
손 사장은 현재 일본 국적이지만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트위터에서도 그는 마사손(@masason)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손정의의 일본식 이름으로 그를 손 마사요시라고 부른다. 일본을 대표하는 양심적 지식인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손 사장이 지난해 소트프뱅크 창립 30주년 행사에서 ‘회사 대표로서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후 스크린에 자신의 할아버지 사진을 비추고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단상에서 목놓아 울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와다 교수는 손 사장 등의 재일교포에 대해 “재일 코리안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거기서 얻은 무한한 힘을 살리며 비약해나가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손 사장이 일본인들의 찬사를 받고 있던 시기에 IT업계의 또다른 큰손 호리에 전 라이브도어 사장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4월 27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최고재판소는 전날 호리에 전 사장의 상고를 기각하고 분식회계 혐의로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확정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호리에몽’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벤처업계의 영웅으로 떠올랐던 호리에의 행보가 철퇴를 맞은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았다는 견해도
호리에는 도쿄대에 다니던 96년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업체 ‘온더엣지’를 차린 것을 시작으로 벤처업계에 뛰어들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10여년 만에 공격적인 기업사냥을 통해 40여개 회사를 거느린 그룹 총수가 될 수 있었다.
그는 IT 붐의 주역이자 일본에서는 드문 일이었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거침없이 추진하는 모습 등으로 특히 젊은층으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프로야구 긴테쓰 구단 인수와 니혼TV에 대한 적대적 M&A 선언 등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00 억엔 버는 방법> <돈 잘 버는 사람> 등 그가 쓴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한때 일본 언론은 창조적 파괴자라는 의미에서 그를 일본 전국시대 통일의 기틀을 다진 오다 노부나가에 비유하며 일본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물론 편법과 탈법으로 기업사냥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호리에의 몰락은 한순간에 찾아왔다. 2006년 1월 호리에는 분식회계 등을 일삼으며 주식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로 체포됐고, 같은 해 4월에는 라이브도어의 상장이 폐지됐다. 벤처의 총아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일본 사회에서는 호리에의 구속과 이번 실형 판결에 대해 ‘튀어나온 못을 참지 못하는’ 즉, 유별난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사회 분위기가 그를 몰락시켰다고 보는 견해도 많다.
호리에의 거침없는 행보는 수감생활 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실형이 확정된 지난 4월 26일 기자회견에서 호리에는 2년6개월 동안의 수감생활 동안 “느긋하게 책을 읽고 싶다. (체포된 후 보석될 때까지) 3개월 동안 200권을 읽었고, 2년 반 동안은 2000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도소 안에서도 공부하고 있지만 모든 이들이 즐거워할 만한 일을 하고 싶다”며 출소 후의 포부를 밝혔다.
<김기범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holjjak@kyunghyang.com>
'손 마사요시를 총리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 내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54)과 2000년대 초·중반 일본 벤처의 총아로 떠오르며 숱한 화제를 만들었던 호리에 다카후미 전 라이브도어 사장(38). 일본 정보기술(IT)업계의 큰손인 두 사람의 현재 대비되는 모습이 관심을 끌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호리에 다카후미 라이브도어 전 사장
지난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를 덮친 이후 손정의 사장이 보인 행보로 인해 일본 내 그의 인기는 계속해서 치솟고 있다. 손 사장은 4월 3일 개인 돈 100억 엔(약 1300억원)을 대지진 성금으로 기부했다. 개인 기부금으로는 가장 많은 액수다. 손 사장은 또 2011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부터 앞으로 은퇴할 때까지 소프트뱅크에서 받게 될 연봉도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손 사장의 2009 회계연도 보수는 총 1억800만 엔(약 23억원)이었다.
그는 기부에서 그치지 않고 일본의 에너지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재단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손 사장은 4월 20일 일본 민주당의 동일본 대지진 부흥비전검토팀 모임에 참석해 현재의 원전 의존적 에너지정책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연에너지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개인 돈 10억 엔을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정부에 태양광, 풍력 등의 발전설비를 대대적인 규모로 갖춘 동일본솔라벨트 구상을 제안하는 동시에 이 같은 방식으로 만든 전기를 모두 사들이라는 제안도 내놓았다. 그는 원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는 분위기인 일본의 유력 인사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원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日 트위터 팔로어 수 1위
손 사장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일본 누리꾼 가운데 일부는 ‘손 마사요시(손정의의 일본 이름)를 총리로’라는 댓글을 달며 열광하고 있다. 손 사장이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것에 대한 반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국적을 갖고 있는 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견이 다수다.
물론 손 사장은 지진 발생 이전에도 일본인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트위터에서 일본 누리꾼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모습도 손 사장이 인기를 끄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손 사장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트위터 팔로어(구독자)를 갖고 있으며, 4월 29일 현재 손 사장의 팔로어는 112만7327명에 달한다.
그는 이번 대지진 이후에도 트위터에 소프트뱅크의 휴대전화 기지국 상황 등에 대해 보고하고, 복구가 빨리 진행되지 않는 것에 대한 사죄글을 올리며 누리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4월 29일 새벽 1시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 지진피해 기지국에 대해 회사에서 예정했던 복구공사는 일단 완료했습니다”라는 보고글을 올렸다.
일본 갸루의 포털사이트 GRP(www.grp-r.net)가 조사한, 갸루들이 주목하고 있는 트위터 유명인 10인에서도 손 사장은 남성으로는 유일하게 7위를 차지했다. 영어 ‘걸(Girl)’을 일본어 식으로 발음한 갸루는 특유의 화장법과 패션으로 꾸민 젊은 여성들을 뜻한다. 대부분 갸루들이 선망하는 패션 모델들인 다른 유명인들 사이에서 대머리에 전형적인 중년 아저씨 모습인 손 사장이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해 GRP는 “손 사장의 일하는 방식과 생활방식이 높은 공감을 얻고 있고, 이상적인 상사의 모습으로서 호감을 받고 있다. 결단력과 행동력에서 매력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1957년 8월 일본 규슈의 사가현 토스시에서 재일교포 2세 손삼헌씨의 차남으로 태어난 손 사장은 74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때부터 일본 성을 버리고 한국 성을 사용하고 있다. 81년 손 사장이 처음 직원을 데리고 설립한 소프트뱅크는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이 됐다. 1998년에는 도쿄 증권거래소에 주식이 상장됐고, 2000년에는 760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해 미국 <포브스>가 조사한 세계 부호 순위에서 4위에 오르기도 했다. 2011년 현재 재산은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폭락한 주가로 인해 81억 달러(약 8조6800억원)를 보유해 세계 113위로 내려앉았지만 여전히 일본 내에서는 1위를 지키고 있다.
손 사장은 현재 일본 국적이지만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트위터에서도 그는 마사손(@masason)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손정의의 일본식 이름으로 그를 손 마사요시라고 부른다. 일본을 대표하는 양심적 지식인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손 사장이 지난해 소트프뱅크 창립 30주년 행사에서 ‘회사 대표로서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후 스크린에 자신의 할아버지 사진을 비추고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단상에서 목놓아 울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와다 교수는 손 사장 등의 재일교포에 대해 “재일 코리안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거기서 얻은 무한한 힘을 살리며 비약해나가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손 사장이 일본인들의 찬사를 받고 있던 시기에 IT업계의 또다른 큰손 호리에 전 라이브도어 사장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4월 27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최고재판소는 전날 호리에 전 사장의 상고를 기각하고 분식회계 혐의로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확정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호리에몽’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벤처업계의 영웅으로 떠올랐던 호리에의 행보가 철퇴를 맞은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았다는 견해도
호리에는 도쿄대에 다니던 96년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업체 ‘온더엣지’를 차린 것을 시작으로 벤처업계에 뛰어들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10여년 만에 공격적인 기업사냥을 통해 40여개 회사를 거느린 그룹 총수가 될 수 있었다.
그는 IT 붐의 주역이자 일본에서는 드문 일이었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거침없이 추진하는 모습 등으로 특히 젊은층으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프로야구 긴테쓰 구단 인수와 니혼TV에 대한 적대적 M&A 선언 등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00 억엔 버는 방법> <돈 잘 버는 사람> 등 그가 쓴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한때 일본 언론은 창조적 파괴자라는 의미에서 그를 일본 전국시대 통일의 기틀을 다진 오다 노부나가에 비유하며 일본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물론 편법과 탈법으로 기업사냥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호리에의 몰락은 한순간에 찾아왔다. 2006년 1월 호리에는 분식회계 등을 일삼으며 주식거래법을 위반한 혐의로 체포됐고, 같은 해 4월에는 라이브도어의 상장이 폐지됐다. 벤처의 총아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일본 사회에서는 호리에의 구속과 이번 실형 판결에 대해 ‘튀어나온 못을 참지 못하는’ 즉, 유별난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사회 분위기가 그를 몰락시켰다고 보는 견해도 많다.
호리에의 거침없는 행보는 수감생활 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실형이 확정된 지난 4월 26일 기자회견에서 호리에는 2년6개월 동안의 수감생활 동안 “느긋하게 책을 읽고 싶다. (체포된 후 보석될 때까지) 3개월 동안 200권을 읽었고, 2년 반 동안은 2000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도소 안에서도 공부하고 있지만 모든 이들이 즐거워할 만한 일을 하고 싶다”며 출소 후의 포부를 밝혔다.
<김기범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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