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말리아 여성이 케냐 다다브 외곽의 다카하레이 난민촌에서 난민 등록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다다브/AP연합뉴스
올해 한 살 난 소말리아 여자 젖먹이 하비보는 영양실조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다. 이미 시력은 잃었다. 영양실조에 걸려 젖이 나오지 않는 어머니 마르오 마알린이 하비보에게 이유식을 먹여보려고 기를 쓰지만 하비보는 그마저 넘기지 못할 정도로 쇠약하다. 가뭄으로 인한 극심한 식량부족 탓에 케냐 다다브의 난민촌으로 피난온 마알린은 지난 7월 초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신이여, 내 딸을 낫게해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비보를 돌보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의 루아나 리마 박사는 하비보가 비타민A 부족으로 인해 시력을 잃은 것이라고 말했다.
소말리아인인 위히리이 오스만 하지(33)는 고향을 떠나 다다브의 난민촌으로 가던 도중 난민촌에서 약 80㎞ 떨어진 곳의 아카시아나무 그늘 아래에서 아기를 출산했다. 5명의 아이를 데리고 다다브로 향하던 하지는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리샤라는 이름을 붙였다. 리샤는 소말리어어로 생명이라는 뜻이다. 하지는 7월 9일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난민촌에 가는 것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이 걸린 일”이라며 “22일 동안 걸으면서 물밖에 마시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인, 어린이, 여성이 최대 피해자
루키오 마알림 누르도 태어난 지 1개월 된 아기를 업고 20일 동안 난민촌을 향해 걸어왔다. 누르는 “우리는 무작정 떠났다. 가뭄 때문에 그냥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줄 음식도 남아 있질 않았다”고 말했다. 또 한 여성은 아픈 아이를 길에다 버려두고 왔다고 털어놓았다. 케냐까지의 여정을 견디기에는 아이가 너무 쇠약해진 상태였던 데다 나머지 아이들을 무사히 데리고 가야 하는 부담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아이의 눈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거주하던 하비바 모하메드 하산은 최근 무장단체에 의해 남편이 피살된 뒤 아이와 함께 모가디슈를 떠날 결심을 했다. 계속 모가디슈에 머물러 있어봤자 굶어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하산은 난민촌으로 가던 도중 만난 무장단체에 성폭행을 당했고 입고 있던 옷마저 빼앗겼다. 몸에 불이 붙으면서 그는 심각한 화상까지 입었다. 하산은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가뭄은 지난번 가뭄보다 더 지독하다”며 “우리는 음식도, 돈을 벌 수단도 없는 데다 무장단체들은 우리가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의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케냐 등이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재민 1100만명이 발생하고 어린이 200만명이 영양부족 상태에 처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이번 가뭄에 대해 “가장 심각한 인도적 위기상황”이라고 밝혔다. 국제적십자사도 소말리아 어린이들의 영양상태를 경고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7월 12일 아프리카 북동부에 거주하는 이들 가운데 1100만명이 최악의 가뭄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긴급 지원을 호소했다. 반 총장은 유엔이 필요하다고 밝힌 16억 달러(약 1조6900억원)의 구호자금가운데 현재 절반밖에 전달되지 않았다며 “(자금지원을)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유엔의 인도적 지원활동을 총괄하는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이번 가뭄으로 인해 케냐에서 350만명, 에티오피아에서 320만명, 소말리아에선 250만명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소말리아의 경우 전체 인구 약 960만명의 4분의 1 이상이 가뭄의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노인과 어린이,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은 케냐 북부 투르카나 지역의 영양실조율은 지난해 15%에서 37%로 크게 높아졌다고 밝혔다. 유니세프는 케냐에서 6만5000명가량의 어린이가 생명이 위급한 상태이고, 소말리아에서는 어린이 6명 가운데 1명이 5세 이전에 사망한다고 밝혔다.
가뭄에 강한 작물 개발 등 대책 세워야
아프리카의 뿔을 덮친 이번 가뭄은 지난 3월부터 시작됐다. 4월부터 6월 사이 우기에 해당하는 기간에 내린 강우량은 예년에 비해 3분의 1에 불과했다. 다음 우기가 찾아오는 10월까지는 비가 오기를 기대하기도 힘든 상태다. 식량과 물이 부족하다 보니 영양실조 상태에 빠진 어린이가 늘고 있고, 콜레라 등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20년 이상 이어진 내전으로 무정부 상태에 빠져 있는 데다, 가뭄으로 인한 피해도 가장 큰 소말리아에서는 현재 매일 어린이 60명이 굶어죽고 있다. 수십만 마리의 가축이 식량과 물이 부족해 죽어갔고, 농작물도 대부분 시들어갔다.
지난 6월 현재 소말리아인 약 5만4000명이 주변의 케냐와 에티오피아로 물과 식량을 찾아 떠난 상태다. 케냐와 에티오피아 내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물이 풍족한 지역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당초 9만명을 수용할 계획으로 건설된 다다브의 난민촌에는 이미 수용능력의 4배가 넘는 약 38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게다가 매일 1000명 이상이 새로 찾아오고 있는 상황이다. OCHA는 130만명분의 식량과 물을 준비해놓고 있지만 물자가 충분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케냐 정부는 국경지역에 최대 8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새 난민촌을 개설하겠다고 밝혔다. 난민촌이나 대도시로 가는 도중 지쳐 사망하는 이들도 많다. 15일 AP통신에 따르면 난민촌으로 가는 사막길에는 부모들이 두고 간 어린이들의 시신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소말리아 남부를 장악하고 있는 알 카에다 연계조직 알 샤바브는 사태가 심각해지자 7월부터 구호단체들의 활동을 허가했다. 알 샤바브는 2009년 이후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서 구호단체들의 활동을 금지한 바 있다. 유니세프는 지난 13일부터 약 10만명이 3개월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의 식량과 의료물자 등을 알 샤바브가 통제하고 있는 지역으로 운송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처럼 가뭄이 일어났을 때 긴급구호를 하는 방식대로라면 아프리카 동북부 주민들의 고통은 앞으로도 계속 되풀이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가뭄으로 인한 인도적 위기를 끝내기 위해서는 가뭄에 강한 작물 개발을 위한 투자 증대 등 장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년 전인 2009년에도 이 지역에서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수백만명이 인도적 지원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한 바 있다. 옥스팜의 알룬 맥도널드는 “이번 위기는 부분적으로는 인재라고 할 수 있다”며 “비가 오지 않아서 위기를 맞게 된 것이긴 하지만 장기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한 탓도 크다”고 비판했다.
<김기범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holjjak@kyunghyang.com>
- [세계]‘아프리카 뿔’ 위협하는 최악의 가뭄
- 2011 07/26ㅣ주간경향 935호
ㆍ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케냐 등 극심한 가뭄… 어린이 영양실조, 콜레라 등 피해 증가
소말리아인인 위히리이 오스만 하지(33)는 고향을 떠나 다다브의 난민촌으로 가던 도중 난민촌에서 약 80㎞ 떨어진 곳의 아카시아나무 그늘 아래에서 아기를 출산했다. 5명의 아이를 데리고 다다브로 향하던 하지는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리샤라는 이름을 붙였다. 리샤는 소말리어어로 생명이라는 뜻이다. 하지는 7월 9일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난민촌에 가는 것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이 걸린 일”이라며 “22일 동안 걸으면서 물밖에 마시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인, 어린이, 여성이 최대 피해자
루키오 마알림 누르도 태어난 지 1개월 된 아기를 업고 20일 동안 난민촌을 향해 걸어왔다. 누르는 “우리는 무작정 떠났다. 가뭄 때문에 그냥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줄 음식도 남아 있질 않았다”고 말했다. 또 한 여성은 아픈 아이를 길에다 버려두고 왔다고 털어놓았다. 케냐까지의 여정을 견디기에는 아이가 너무 쇠약해진 상태였던 데다 나머지 아이들을 무사히 데리고 가야 하는 부담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아이의 눈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거주하던 하비바 모하메드 하산은 최근 무장단체에 의해 남편이 피살된 뒤 아이와 함께 모가디슈를 떠날 결심을 했다. 계속 모가디슈에 머물러 있어봤자 굶어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하산은 난민촌으로 가던 도중 만난 무장단체에 성폭행을 당했고 입고 있던 옷마저 빼앗겼다. 몸에 불이 붙으면서 그는 심각한 화상까지 입었다. 하산은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가뭄은 지난번 가뭄보다 더 지독하다”며 “우리는 음식도, 돈을 벌 수단도 없는 데다 무장단체들은 우리가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의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케냐 등이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재민 1100만명이 발생하고 어린이 200만명이 영양부족 상태에 처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이번 가뭄에 대해 “가장 심각한 인도적 위기상황”이라고 밝혔다. 국제적십자사도 소말리아 어린이들의 영양상태를 경고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7월 12일 아프리카 북동부에 거주하는 이들 가운데 1100만명이 최악의 가뭄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긴급 지원을 호소했다. 반 총장은 유엔이 필요하다고 밝힌 16억 달러(약 1조6900억원)의 구호자금가운데 현재 절반밖에 전달되지 않았다며 “(자금지원을)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유엔의 인도적 지원활동을 총괄하는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이번 가뭄으로 인해 케냐에서 350만명, 에티오피아에서 320만명, 소말리아에선 250만명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소말리아의 경우 전체 인구 약 960만명의 4분의 1 이상이 가뭄의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노인과 어린이,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은 케냐 북부 투르카나 지역의 영양실조율은 지난해 15%에서 37%로 크게 높아졌다고 밝혔다. 유니세프는 케냐에서 6만5000명가량의 어린이가 생명이 위급한 상태이고, 소말리아에서는 어린이 6명 가운데 1명이 5세 이전에 사망한다고 밝혔다.
가뭄에 강한 작물 개발 등 대책 세워야
지난 6월 현재 소말리아인 약 5만4000명이 주변의 케냐와 에티오피아로 물과 식량을 찾아 떠난 상태다. 케냐와 에티오피아 내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물이 풍족한 지역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당초 9만명을 수용할 계획으로 건설된 다다브의 난민촌에는 이미 수용능력의 4배가 넘는 약 38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게다가 매일 1000명 이상이 새로 찾아오고 있는 상황이다. OCHA는 130만명분의 식량과 물을 준비해놓고 있지만 물자가 충분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케냐 정부는 국경지역에 최대 8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새 난민촌을 개설하겠다고 밝혔다. 난민촌이나 대도시로 가는 도중 지쳐 사망하는 이들도 많다. 15일 AP통신에 따르면 난민촌으로 가는 사막길에는 부모들이 두고 간 어린이들의 시신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소말리아 남부를 장악하고 있는 알 카에다 연계조직 알 샤바브는 사태가 심각해지자 7월부터 구호단체들의 활동을 허가했다. 알 샤바브는 2009년 이후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서 구호단체들의 활동을 금지한 바 있다. 유니세프는 지난 13일부터 약 10만명이 3개월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의 식량과 의료물자 등을 알 샤바브가 통제하고 있는 지역으로 운송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처럼 가뭄이 일어났을 때 긴급구호를 하는 방식대로라면 아프리카 동북부 주민들의 고통은 앞으로도 계속 되풀이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가뭄으로 인한 인도적 위기를 끝내기 위해서는 가뭄에 강한 작물 개발을 위한 투자 증대 등 장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년 전인 2009년에도 이 지역에서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수백만명이 인도적 지원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한 바 있다. 옥스팜의 알룬 맥도널드는 “이번 위기는 부분적으로는 인재라고 할 수 있다”며 “비가 오지 않아서 위기를 맞게 된 것이긴 하지만 장기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한 탓도 크다”고 비판했다.
<김기범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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