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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국제기사

[세계]원전가동 중단 ‘세계적 대세?’

[세계]원전가동 중단 ‘세계적 대세?’
2012 03/06주간경향 965호
ㆍ후쿠시마 사고 1년, 독일·일본 등 탈원전 흐름 긍정적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1주년이 되는 3월 11일이 다가오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가장 먼저 탈원전을 선언했던 독일은 성공적으로 원전에서 벗어나는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도 1주년을 앞두고 탈원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2월 20일 유럽 34개국 송전사업자네트워크(ENTSO-E)의 통계를 인용해 독일의 지난해 전력 수출량이 수입량보다 많아 흑자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인 지난해 3월 노후화된 원전 7기의 가동을 잠정 중단한 후 5월부터 9월까지는 외국으로부터 전력을 들여오는 수입량이 수출량보다 더 많았다. 이후에도 1기의 원전을 더 중단시켜 8월에는 모두 8기의 원전 가동을 완전 정지했지만 10월부터는 다시 전력 수지가 흑자로 돌아섰다.

폐허로 변해버린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모습. 동일본 대지진 1주년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탈원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AP 연합뉴스 

마이니치신문은 독일이 원전 가동 중단에도 불구하고 다시 전력 수출국이 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지난 가을 날씨가 좋았던 것과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증가 등을 꼽았다. 지난해 독일의 전력 생산량 가운데 원자력발전은 18%로 전년의 22%에서 4%포인트가량 줄어든 반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약 20% 정도로 증가했다. 로이터통신은 독일 내 태양광발전소가 전 세계 태양광발전소의 37%에 달한다고 전했다.

또 독일 정부가 주택의 단열화를 실시하는 등 에너지 낭비를 막기 위한 정책을 편 덕분에 전력 소비량이 전년 대비 5%가량 감소한 것도 유리한 조건이 됐다. 결국 독일의 지난해 전력 수출량은 수입량보다 약 4200kwh가량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5~9월 사이의 전력 수지 적자를 합해도 흑자 상태가 된 것이다. AFP통신 등 일부 외신은 독일이 한파로 인해 가동을 중단했던 원자로 중 일부를 재가동했다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지만 로이터통신은 이를 오보라고 전했다.

프랑스, 원전 문제 대선 이슈로 떠올라
반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원전 정책에 전혀 변화를 주지 않은 원전 대국 프랑스는 이번 한파를 겪으면서 오히려 독일로부터 전력을 수입하는 신세가 됐다. 2월 들어 유럽 전역의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한파로 인해 전력 소비가 급증하면서 전기를 통한 난방이 전체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프랑스는 자국 내 원전 모두를 가동하고 있다.

프랑스는 2월 들어 6일 동안 전력 수요가 가장 많은 오후 7시를 중심으로 독일로부터 전력을 수입했다. 자국 내 전력 생산량의 70%가량을 원전에서 생산하는 원전 대국 프랑스가 원전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독일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에는 모두 58개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으며 이번 한파 전까지는 유럽 최대의 전력 수출국이었다.

프랑스 사회당 대선 후보인 프랑수아 올랑드는 공약으로 프랑스의 원전 의존도를 낮추겠다고 밝히면서 원전 문제를 대선의 주요 이슈로 삼고 있다. 그러나 니콜라 사르코지 현 대통령은 원전 정책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오는 4월 대통령 선거가 실시될 예정이다.

독일 정부가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에서 처음으로 탈원전에 앞장선 것은 독일 내 원전 반대 여론이 끓어오른 덕분이다. 사고 직후인 지난해 3월 12일 슈투트가르트에서 6만여명의 시위대가 원전 폐쇄를 요구하며 인간띠 시위를 벌였다.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고가 있은 이후 34년 만에 미국의 원전 건설이 재개됐다. 사진은 지난해 3월 28일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의 모습이다. | AP 연합뉴스


같은 달 26일에는 독일 주요 도시에서 26만명이 원전 반대 시위를 벌였고, 지방선거에서도 집권 기민당의 텃밭이었던 바덴-뷔르템베르크 지역에서 녹색당 후보가 주 총리로 선출됐다.

결국 독일 정부는 지난해 5월 2022년까지 독일 내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스위스도 2034년까지 원전에서 벗어날 것을 선언했다. 이탈리아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추진한 원전 재가동을 위한 국민투표가 부결되면서 세계에서 세번째로 탈원전 정책을 선택한 나라가 됐다. 이탈리아는 구소련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1987년부터 자국 원전 전체를 가동 중지한 바 있다.

미국, 34년 만에 원전 건설 재개
한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당사국인 일본은 가동한 지 40년이 넘은 원자로는 원칙적으로 폐쇄하는 수명제한 제도를 지난 1월 도입하기로 했다. 일본 내 원전의 3분의 1가량이 가동한 지 30년이 지난 노후원전이기 때문에 이 제도가 순조롭게 도입될 경우 일본의 탈원전 흐름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원전 보유국 가운데 원전 수명을 제한하는 나라는 드문 편이다.

다만 40년 이상 된 원전이라도 전력사업자가 운전연장 신청을 하면 심사를 거쳐 연장운전을 허용하는 예외규정이 있어 수명제한 제도가 유명무실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도 나오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들은 동일본 대지진 1주년인 오는 3월 11일 곳곳에서 원전 반대 집회를 벌일 예정이다. 또 교토변호사회는 23일 교토 인근의 후쿠이 현에 있는 원전 14기 가운데 가동한 지 30년이 지난 원전의 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정부와 후쿠이 현의 원전을 운영하는 간사이전력 등 전력사업자들에게 보냈다. 이들은 의견서에서 30년 미만의 원전도 앞으로 10년 이내에 폐지해 원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회적인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온 것으로 유명한 배우 야마모토 다로는 22일 후쿠이 현 의회를 방문해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 일본 지부와 함께 원전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목숨과 맞바꿔야 하는 원전은 필요없다”며 에너지 정책 전환을 요구했다. 이들은 후쿠이 현 내에 있는 간사이전력의 오오이원전 3, 4호기 재가동 추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 등 원자로 생산 국가들과 원전 개발을 추진해온 중동의 산유국 쿠웨이트도 지난해 원전 건설 계획을 중단했다. 교도통신은 지난 22일 쿠웨이트 정부기관의 연구원을 인용해 쿠웨이트를 통치하고 있는 자비르 알 아흐마드 알 사바하 수장이 지난해 7월 원자력위원회를 해산시켰다고 보도했다. 쿠웨이트는 2022년까지 4기의 원전을 건설할 계획으로 2009년 원자력위원회를 만든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은 34년 만에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재개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지난 9일 전력업체인 서든컴퍼니가 신청한 원자로 2기 추가 건설 계획을 승인했다. 원자력규제위 표결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그레고리 야스코 위원장은 “후쿠시마 사고가 마치 없었던 것처럼 원자로 허가를 내주는 것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김기범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holjja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