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압구정CGV
이정범 연출, 원빈 주연의 영화 '아저씨'는 제목이 아저씨임에도 불구하고 아저씨가 나오지 않는 영화입니다. 상당수의 등장인물들이 원빈을 애써 아저씨라 부르긴 하지만, 그 호칭은 오히려 원빈이 우리 관념 속의 아저씨와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는 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감독이 이런 효과를 몰랐을 리는 없고, 아마 노리고 지은 제목이고, 작성한 대본이겠지요. 아저씨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의 첫 번째 의미가 원빈이 연기한 태식이 아저씨가 아니라는 것이라면 두 번째는 영화에 나오는 다른 아저씨들은 그냥 아저씨가 아닌 나쁜 아저씨, 악당이라는 점입니다. 만석, 중석 형제는 물론 스토리 전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킬러 람로완도 마찬가지지요.
제가 아저씨가 없다는 것을 길게 설명한 것은 악당들에게 납치됨으로써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태식이 세상으로 다시 나서는 계기가 되는, 김새론양이 연기한 소미에게 있어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우선 소미의 혈육인 문자 그대로의 아버지는 아예 영화 속에서 나오지도 않고,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또 소미는 애써 원빈을 아저씨라 부르며 유사 아버지로 삼으려는 노력을 하지만 원빈은 초반에 소미의 부름을 못 들은 척하지요. 아버지 되기를 거부했고, 관객에 의해서도 유사아버지로 인정받지 못하던 태식이 소미와 억지로 유사 부녀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은 물론 소미가 납치되면서부터입니다. 그러나 어렵게 형성된 유사 부녀 관계는 마지막 "한번만 안아보자"라는 대사 이후 물리적으로 끊어지게 되지요. 십여명을 살해하고, 방화, 경찰 폭행 등의 중범죄를 저지른 태식이 다시 세상에 나오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고, 소미는 고아원에서 살아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원빈의 아름다움과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액션 장면이라는 외피가 워낙 두텁긴 하지만, 또 제목이 아저씨라는 유사 아버지를 표방하고 있지만, 한국 영화와 문학에서 끊임없이 변주되어 온 아버지의 부재라는 관념이 영화의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덧붙이자면 킬러 람로완은 반창고를 통한 소미와의 교감을 통해 소미를 보호하는 유사 아버지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파국을 예감한 상태에서의 일시적인 변덕에 가깝지 않나 싶고, 정서적인 교감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론 물리적으로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하고요.
길고 쓸데없는 얘기를 줄이고, 볼 만한 영화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만 말씀드리자면 아저씨는 볼 만한 영화입니다. 스토리상의 숱한 허점에 대해서는 다른 누리꾼들도 숱하게 지적해 놓았을 테니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만, 이 같은 허점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액션 신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여성 관객들에게는 원빈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메리트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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