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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 기사 2010.8.~

대지진 참사 1년 아이티는 지금…‘땅 꺼지는 한숨’은 계속된다

ㆍ무정부 상태 속 난민촌 생활
ㆍ생필품 부족에 하루하루 고통
ㆍ구호금 지원 지연 ‘머나먼 복구’

지난해 1월 아이티를 덮친 강진 때 피에르(30)는 아들 페켄스(11)와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생계를 위해 고아원에 맡겨놓았던 아들을 한 구호단체가 미국으로 보내 입양을 시켰기 때문이다. 피에르가 페켄스가 머물던 고아원을 찾아갔을 때 아들은 미국으로 떠난 뒤였다. 아들의 행방을 찾은 후에도 피에르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어머니로서의 양육권리를 포기하는 문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5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보고 싶다”며 “언젠가 아들이 나를 방문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아이들이 지난달 31일 신년을 축하하며 라이터로 불을 밝히고 있다. 포르토프랭스 | AP연합뉴스


오는 12일이면 아이티에서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해 막대한 인명피해가 일어난 지 1년이 된다. 하지만 아이티인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고 있다. 지진 피해가 채 복구되기도 전에 발생한 콜레라가 창궐하면서 사망자가 속출했고, 정치적인 혼란까지 겹치면서 가뜩이나 늦어지고 있는 복구작업을 지연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월12일 수도 포르토프랭스 서쪽 약 15㎞ 지점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아이티에서는 약 23만명이 사망했고, 150만명 이상이 집을 잃고 난민촌 신세를 지게 됐다. 게다가 지난해 10월 발생한 콜레라가 아이티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지난해 말까지 콜레라에 걸린 아이티인은 15만7300명가량이며 사망자도 3481명에 달한다.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 이후의 정치적 혼란도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5일 AP통신에 따르면 아이티 선거위원회는 2월 말까지는 대선 결선을 치를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실시된 대선 1차 투표에서 각각 1, 2위를 차지한 야당 진보국민민주당(RDPN)의 미를란드 마니가 후보와 집권 통합당(INITE)의 주드 셀레스틴 후보 가운데 승자를 가리는 결선 투표는 당초 1월16일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야권 후보들의 지지자들과 경찰의 충돌로 사망자가 속출하는 등 폭력행위가 이어지면서 결국 미뤄지게 됐다. 

이 같은 정치 혼란과 정부의 무능으로 인해 사실상 무정부상태나 다름없는 아이티에서 비정부기구들의 헌신적인 의료·구호활동은 거의 유일한 희망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국경없는 의사회(MSF) 회원 500여명과 쿠바 의료진 약 1200명은 매일 수백명의 콜레라 환자를 돌보며 헌신하고 있다. 아동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이재민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하는 활동을 펼치는 한편 최근에는 어린이 임시학교를 만드는 사업도 벌이고 있다. 

지진 발생 당시 심한 상처를 입어 다리를 절단했지만 구호단체들의 도움으로 의족을 얻은 무용수 파비안 장처럼 여전히 무용 연습을 계속하며 삶에 대한 의지를 보이는 이들도 있다. 장은 “장애를 갖게 되면 삶이 끝난 것처럼 여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작년 1월12일에 몸의 일부를 잃었다고 해도 여전히 나는 나 자신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물, 식량 등 기본적인 물품의 부족으로 인해 대부분의 아이티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진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나면서 국제사회가 아이티를 잊어가고 있고, 구호단체들의 활동도 아이티의 열악한 도로 및 위생시설과 역량 부족 탓에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세계 각국은 지진 발생 당시 아이티에 막대한 구호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지만 현재까지 약속된 금액의 10분의 1만을 내놓았다. 이로 인해 복구작업이 더뎌지면서 콜레라 피해를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달 31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해 지진 발생 후 세계 각국이 아이티에 지원키로 약속한 구호금은 약 100억달러(약 11조2600억원)에 달하지만 실제 전달된 금액은 약 10억달러(약 1조1260억원)에 불과하다.

MSF의 유니 카루나카라 대표는 지난달 28일 영국 일간 가디언 기고문에서 “아이티에서의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은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국제사회가 막대한 지원을 하고 1만2000개의 비정부기구가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도 적어도 2500명 이상이 예방과 치료가 쉬운 질병인 콜레라로 사망했다”고 지적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찰리 매코맥은 복구작업과 정치적 안정에 적어도 15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매코맥은 “아이티 인구의 90%에게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90%의 인구가 노동을 하도록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