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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 기사 2010.8.~

생색내기 그친 이스라엘 ‘가자지구 봉쇄 완화’

생색내기 그친 이스라엘 ‘가자지구 봉쇄 완화’

ㆍ“생필품 부족” 국제단체 보고서
ㆍ출입 통제에 아픈 아이 사망도
ㆍ팔레스타인 주민들 고통 여전

지난 10월 팔레스타인 어린이 나스마 아부 라신(당시 2세)의 부모는 가자지구 밖 이스라엘 병원에서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이스라엘 당국에 출입허가를 내줄 것을 요청했다. 백혈병을 앓는 라신의 상태가 악화되면서 긴급 요청을 한 것이었지만 이스라엘 당국은 차일피일 허가를 미뤘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라신이 10월16일 사망한 후 일주일이 지나서야 이스라엘 당국은 출입허가를 내줬다.

‘거꾸로’ 된 세상 꿈꾸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젊은이들이 지난 7월19일 칸유니스의 한 공동묘지에서 공중제비를 넘고 있다. 가자지구 젊은이들은 이스라엘의 국경봉쇄에 따른 경제난으로 일자리도 구하지 못한 채 힙합 및 펑키 음악에 맞춰 랩을 하거나 춤추며 소일하고 있다. 칸유니스 | AP연합뉴스

가자지구 주민들이 지난 6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경제봉쇄 완화 발표 이후에도 일상적인 고통을 겪고 있고, 라신처럼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이스라엘의 봉쇄 완화가 국제사회에 보여주기 위한 생색내기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30일 국제앰네스티, 옥스팜 등 25개 국제인권·구호단체들이 펴낸 보고서 ‘무너진 희망들: 계속되는 가자 봉쇄’에 따르면 현재 가자지구로 수입되는 물품의 양은 2007년 이스라엘의 경제 봉쇄 시작 전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식량, 물, 전기 등 주민들 생활에 필요한 품목조차 제한적으로 공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구호기구들의 원조에 의존해 생활하는 주민의 비율이 80%에 달하고, 61%는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매일 4~6시간가량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수돗물은 4~5일에 한 번 6~8시간만 공급되고 있다. 가자지구 밖으로 나가는 것도 자유롭지 못해 10년 전과 비교해 이스라엘 당국으로부터 외부 출입을 허가받는 비율은 1%에 불과하다. 2009년 이후에만 33명의 환자가 라신처럼 출입허가를 받지 못하는 바람에 사망했다.

2007년 이후 붕괴된 경제도 전혀 회복되지 않고 있다. 봉쇄 이후 기업체의 65%가 문을 닫았고, 실업률은 39%까지 치솟았다. 수출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건축물자 수입량이 봉쇄 이전의 10분의 1 정도뿐이다보니 2008년 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등으로 무너진 주택 가운데 상당수가 파괴된 상태 그대로다. 군수용으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건축물자를 반입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는 탓이다.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한 무장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하자 2007년부터 무기 공급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가자지구를 봉쇄한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 구호선단에 대한 공격으로 나빠진 국제여론을 의식해 지난 6월 원칙적으로 군수품을 제외한 모든 물품의 가자지구 반입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케이트 앨런 국제앰네스티 영국지부장은 30일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봉쇄를 완화했다고 하지만 (이스라엘의) 잔혹하고 불법적인 봉쇄로 시민들 모두가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며 “가자 봉쇄를 끝내라는 이스라엘 당국에 대한 압력만 줄어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