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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 기사 2010.8.~

에이즈, 이젠 하늘의 형벌 아니다

에이즈, 이젠 하늘의 형벌 아니다

ㆍ유엔, 전세계 H I V 감염자 10년새 20%감소·치사율 급락 보고서
ㆍ예방사업 효과·치료약도 효과 입증 … 저개발국 빈곤층은 고통 여전

인류의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에이즈) 퇴치 노력에 청신호가 켜졌다. 

10년 전에 비해 에이즈를 유발하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률과 치사율이 크게 낮아지고, 에이즈 치료약에 예방효과도 있는 것으로 발견된 덕이다. 완전한 에이즈 퇴치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희망의 단서가 나온 셈이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이 23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지난해 HIV에 감염된 인구는 260만명으로 1999년의 310만명에 비해 20% 가까이 감소했다. 에이즈 사망자 역시 1999년의 210만명에 비해 180만명으로 조사됐다.

HIV 감염률은 2001~2009년 34개국에서 25% 이상 낮아졌다. 대부분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이다. UNAIDS는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콘돔 사용 캠페인, 상담 등의 예방사업이 효과를 보고 있는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콘돔 사용률이 높아진 게 에이즈 예방에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UNAIDS는 최근 교황청이 “에이즈 예방을 위해서는 콘돔을 사용해도 된다”고 밝힌 것도 에이즈 예방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에이즈 치료에 널리 쓰이는 항바이러스제가 HIV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에이즈 퇴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23일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HIV 감염 위험이 높은 동성애, 양성애, 성전환 남성 2499명을 대상으로 2년 반 동안 항바이러스제 트루바다(Truvada·박스 위 사진)를 복용하도록 한 결과 감염률이 평균 44%에서 73%까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 글래드스톤 연구소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브라질, 에콰도르, 페루, 태국 등 6개국 임상실험에서 매일 트루바다를 복용한 이들의 HIV 감염률이 트루바다를 복용하지 않은 이들에 비해 평균 72.8%가량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저개발국 빈곤층이 에이즈로 인해 겪는 고통은 여전한 상황이다. 아프리카 남부 국가의 에이즈 감염률은 특히 심각해 이 지역 HIV 감염자 약 2250만명은 전 세계 감염자 약 3330만명의 68.2%를 차지한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15~49세 이상 성인의 HIV 감염률이 10%가 넘는 9개국 모두가 아프리카 남부에 있다. 아르메니아, 방글라데시, 그루지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필리핀, 타지키스탄 등 7개국에서는 HIV 감염률이 2001~2009년 25% 이상 급증했다.



지나치게 비싼 치료제 가격은 여전히 빈곤층 감염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 질리어드 사이언스사가 제조하는 트루바다의 1년치 가격은 미국에서 5000~1만4000달러(약 571만~1600만원)에 달한다. 1년치 트루바다의 복제약이 아프리카의 빈국들과 개발도상국에서는 150달러(약 17만원) 정도에 공급되지만 그마저 빈곤층에는 버거운 거액이다. 

현재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HIV감염자는 약 1000만명에 달한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