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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기사 2010.5.~

고통이 고통을 보듬다… ‘진실의힘’ 25일 출범 2010.6.15.

ㆍ고문 피해자가 고문 피해자 도와

군사정권 시절 간첩조작 사건에 휘말려 고문당한 사람들을 돕는 사회단체가 공식 출범한다. 고문 피해자들의 치료와 법률소송을 돕고 고문방지 활동에 나서는 재단법인 ‘진실의힘’이다. 과거 고문 피해를 직접 겪었던 사람들이 제2·제3의 피해자를 줄이고 ‘고문 제로’ 사회를 만들겠다며 의기투합했다. 

진실의힘은 오는 25일 개소식을 열고 공식 활동에 나선다고 14일 밝혔다. 발족일은 유엔이 정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6월26일)에 맞춰졌다. 법인의 모태는 2008년 5월부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주도해 서울 봉은사 선불당에서 월요일마다 열려온 ‘고문피해자 치유모임’이다. 

지난해 10월 조작간첩사건 고문 피해자 10여명이 기금을 출연해 재단으로 출범했고, 고문피해자 치료에 머물러온 활동 폭을 이번에 공개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재단에는 과거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됐던 피해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1985년 ‘모자간첩’ 사건의 피해자 이준호씨(61), 80년 ‘진도간첩단’ 사건의 석달윤씨(76), 86년 재일공작지도원 지령 사건의 김양기씨(60) 등이 그들이다. 하나같이 간첩 혐의로 정보기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고 징역을 살다가 최근 1~2년 사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들이다. 간첩 조작사건에 의해 청춘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들이 뒤늦게 또 다른 피해자들을 돌보겠다고 나선 셈이다. 

고문피해자 모임의 장소를 제공해 온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재단 측 요청으로 이사장을 맡게 됐다. 

또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최연소 장기수로 14년간 복역 후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된 강용주씨(50), 인권변호사 조용환씨,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와 임상심리 전문가들이 재단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1년여 전부터 이어져온 고문피해자 모임에서는 현재 김양기씨 등을 포함해 세번째 그룹(15명)이 치유를 받았고, 지금은 네번째 그룹으로 고문피해자 부인들의 치유가 진행 중이다. 김양기씨는 “내가 치유모임에서 상담을 하고 나니 다른 고문피해자들에게도 반드시 심리치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국가가 공식적인 기구를 만들어 피해자들의 치유와 재활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25일 공식 개소식과 더불어 현재 고문피해자와 가족의 후유증 치료에 주력해온 재단 활동의 폭은 더 확대될 예정이다. 인권 변호사들이 주축이 된 법률팀은 재심 사건에 대한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재심사건의 경우 고문 수사관을 찾아내기도 어렵고, 자료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아 법률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명 간첩사건의 피해자뿐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치유 활동을 병행할 예정이다. 

나아가 인권침해 사건의 진상규명과 아시아 지역의 인권침해 피해자 지원 사업도 펼쳐나가기로 했다. 

진실의힘 한지연 사무국장은 “최근에 재심을 시작한 사건의 경우 민간인 통제구역에 같이 들어갔던 여러 가족이 간첩으로 몰려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았지만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정한 것은 한 가족밖에 안된다”며 “드러난 것보다 묻혀 있는 사례가 더 많고,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