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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기사 2010.5.~

[현장에서]응원 끝나자 쓰레기장 ‘12번째 선수들’도 완패 2010.6.18.

지난 17일 밤 11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앞 영동대로. 아르헨티나와의 월드컵 경기가 끝나고 12만명에 달했던 붉은 물결이 빠져나간 거리는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17일 밤 서울 영동대로에 응원단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빈 음료수병과 훼손된 응원 막대, 버려진 부채, 맥주캔과 깨진 술병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전단지…. 쓰레기들은 거리 곳곳을 뒤덮고 있었다. 낮부터 “내 쓰레기는 가져가자”며 빨간 쓰레기봉투를 나눠주는 캠페인이 벌어졌고, 경기가 끝난 후 일부 시민들이 쓰레기를 줍긴 했지만 후반 중반부터 사람들이 뜨기 시작한 거리에 뿌려진 쓰레기를 치우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아르헨티나전에 완패한 허탈감 탓이었을까. 영동대로를 덮은 쓰레기는 지난 12일 치러진 1차전인 그리스전 때보다도 훨씬 많았다. ‘청소해! 청소해!’ 구호가 나왔던 지난 2002년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쓰레기 범람의 책임을 응원단에만 돌리기는 어려웠다. 기업과 매점들의 책임도 컸다. 

낮부터 영동대로에서는 판촉 행사가 줄을 이었다. 음반을 홍보하는 부채, 기업 로고가 새겨진 막대풍선과 같이 기업들이 나눠준 판촉용 응원도구가 넘쳐났고, 기업의 판촉물도 거리를 덮었다. 

편의점들은 도로에 설치한 간이 천막에서 먹을거리 판매에만 열을 올렸다. 쓰레기는 쏟아지는데 버릴 공간은 마련돼 있지 않았다. 홍보만 생각하고 뒤처리에는 관심이 없는 기업의 상혼과 무책임이 거리를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데 한몫한 것이다.

다행인 것은 시청앞 서울광장은 그나마 달랐다는 점이다. 많은 인파와 쓰레기는 영동대로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한 인터넷 사이트가 벌인 빨간 봉투 캠페인, 한 기업 내의 동호회 회원들의 쓰레기봉투 배포 등 자발적인 노력이 이어지면서 시민들의 호응이 더해졌다. 

광장은 여기저기 어수선했지만, 응원객 중 상당수가 남아 쓰레기를 주운 덕에 원래 모습 가까이까지 회복될 수 있었다. 서울광장 거리응원에 참석했던 직장인 백재욱씨(34)는 “거리응원에 기업들의 판촉 이벤트만 난무하고, 시민들의 자발성과 시민의식은 옅어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