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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동물, 함께 사는 이야기

10년 간 절반이 죽어갔다···돌고래 수족관은 '잔인한 수용소'

제돌이 방류 7주년, 한국의 돌고래들 안녕하십니까①

지난달 27일 경남 거제의 수족관 거제씨월드에서 벨루가(흰고래)를 타는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핫핑크돌핀스 제공.

29마리 폐사···세균 침투로 인한 패혈증·패렴 다수

일부 수족관, 꾸준한 지적에도 사람과 직접 접촉 프로그램 운영

전문가들 “사육 자체가 잘못···장기적으로 방류, 우선 접촉 금지부터”

최근 10년 사이 국내 수족관에서 사육 중이던 돌고래의 절반가량이 스트레스와 열악한 환경 등의 이유로 폐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족관들이 돌고래를 가둬두고 쇼를 시킬 뿐만 아니라 돌고래를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강제수용소 역할을 한 셈이다.

2013년 7월18일 제주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방류한 지 7년. 그사이 시민들의 눈높이는 동물권을 논의할 정도로 높아졌지만, 수족관 업계와 관계 당국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양이원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해수부로부터 제출받은 ‘국내 수족관의 돌고래 보유 현황’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돌고래를 보유한 국내 수족관 8곳에서 전체 61개체 중 29개체가 폐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47.54%에 달하는 높은 폐사율에 대해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은 돌고래가 수족관에서 사육하기에 적합한 동물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됐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돌고래를 사육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며 남은 돌고래들도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신세라는 얘기다. 특히 야생에서 수명이 40~50년에 달하는 돌고래들이 대체로 10~20대 미만의 젊은 나이에 죽어나가는 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해수부 자료에 따르면 돌고래들의 사인은 패혈증이 11개체로 가장 많았고, 폐렴이 7개체로 뒤를 이었다. 수의사인 세계자연기금(WWF) 이영란 해양보전팀장은 “패혈증, 폐렴 등 세균 원인의 질병이 사인이 된 것은 돌고래들의 면역체계가 약해졌거나 자연적인 무리 생활을 하지 못하는 환경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수족관에서 태어난 새끼들의 생존율이 낮은 것도 폐사율이 높은 것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거제씨월드에서 사육 중인 벨루가들의 모습. 핫핑크돌핀스 제공.

실제 전체 12마리 중 7마리가 폐사한 울산 장생포고래생태체험관에서는 환경단체들의 지적을 무시하고 4마리를 출산시켰으나 이 중 3개체가 생명을 잃었다. 장생포고래생태체험관은 기업들이 운영하는 다른 수족관들과 달리 울산 남구청에서 운영하는 공공기관임에도, 암수를 분리하지 않고 돌고래들을 출산시켜 논란이 되어왔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거제씨월드처럼 사람이 돌고래를 만지고 타는 등 직접 접촉하는 것이 돌고래들에게 더 큰 스트레스를 준다고 지적하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이 돌고래를 타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동물학대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거제씨월드에서는 2015~2019년 20개체 중 45%에 해당하는 9마리가 죽어나갔다.

지난 7일 제주 서귀포시의 수족관 퍼시픽랜드에서 한 조련사가 돌고래를 물밖으로 나오게 해 관람객들에게 가까이 보이도록 하고 있다. 김기범기자

돌고래와 인간의 직접적인 접촉을 금지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하지만 논란이 된 거제씨월드 외에도 여러 수족관에서 사람과 돌고래가 직접 접촉하는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지난 6일과 7일 사이 방문한 제주 지역 수족관 마린파크와 퍼시픽랜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마린파크에서는 돌고래쇼는 중단했지만 조련사 체험, 돌핀스위밍, 돌핀태교 등의 이름으로 돌고래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 체험 프로그램을 여전히 운영하고 있었다. 6일 오후 마린파크 내의 수조에서는 어린이가 포함된 두 가족이 수조에 들어가 돌고래를 만져보고, 조련사들을 따라해보는 등의 체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의 수족관 마린파크 내의 체험프로그램 안내 포스터.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의 수족관 마린파크 내의 체험프로그램 안내 포스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사람과 동물의 불필요한 접촉을 줄여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한 전문가는 “돌고래쇼는 그나마 돌고래가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갇혀만 있는 것보다는 나은 측면도 있지만 돌고래를 만지거나 타는 등의 체험은 돌고래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준다”고 지적했다.

퍼시픽랜드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돌고래를 만지는 프로그램은 중단했지만, 돌고래를 수조 바깥으로 나오게 하거나 사육사가 고속으로 헤엄치는 돌고래에 매달리고 함께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을 연출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퍼시픽랜드는 과거 불법 포획된 제돌이 등을 쇼에 동원하다 압수당한 수족관이다.

지난 7일 제주 서귀포시의 수족관 퍼시픽랜드에서 조련사들이 헤엄치는 돌고래에 매달려 있는 쇼를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돌고래쇼는 수족관에서 돌고래를 사육하는 한 필요악일 수 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사람도 감옥에 갇혀있기만 한 것보다는 매일 짧은 시간이나마 운동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나은 것과 다름없다는 얘기다. 서울대공원에서 사육하다 서울시의 돌핀프리 정책으로 인해 퍼시픽랜드에 양도된 돌고래 태지의 경우도 서울대공원 수조에 혼자 남았을 때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다가 퍼시픽랜드에 내려와 다른 돌고래들과 함께 지내고, 쇼에도 동원되면서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공원은 고 박원순 시장의 돌핀프리 선언 이후 사육 중이던 돌고래를 모두 야생으로 돌려보냈지만 국내 원산이 아니라 일본 타이지에서 온 태지의 경우 방류할지, 계속 인간이 보호해야 할지 등을 놓고 이견이 존재했었다.

이로 인해 장기간 홀로 지내던 태지를 서울대공원과 시민단체, 전문가들이 논의한 끝에 야생에 방류하거나 바다쉼터로 가기 전까지 퍼시픽랜드에서 보호하기로 했던 것이다. 퍼시픽랜드 관계자는 “대니(태지의 바뀐 이름)는 제주에 온 뒤 살이 붙어서 체중도 늘어났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들은 태지가 쇼에 동원되는 것 자체보다는 태지를 제주에 보낸 뒤 서울시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서울시가 사실상 퍼시픽랜드에 태지를 떠넘긴 후 때때로 건강 상태 정도만 확인할뿐 나몰라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드러난 수족관 돌고래의 높은 폐사율을 감안하면 퍼시픽랜드에서 아무리 정성껏 태지를 보호한다 해도 언제 태지가 폐사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럴 경우 태지를 떠넘긴 서울시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해양생물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대표는 “사육 시설에서 돌고래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음을 생각해서라도 태지가 수족관에서 죽지 않도록 서울시 예산 및 국가 예산으로 ‘바다쉼터’를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제돌이 방류의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 서울시 차원에서 해양생물과 생태에 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공원에서 사육하다 지난해 퍼시픽랜드에 양도한 큰돌고래 태지의 모습.

그러나 만지는 체험보다 낫다고는 해도 돌고래쇼 역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마찬가지다. 해양생물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에 따르면 마린파크나 퍼시픽랜드 양쪽 모두 돌고래들이 쇼 도중 사육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모습이 확인되기도 했다. 지능이 높은 돌고래들이 먹이를 이용한 조련을 거부하고 ‘파업’을 벌인 셈이다. 일부 수족관들의 주장처럼 돌고래들도 쇼를 즐긴다면 이 같은 돌고래가 지시를 거부하는 듯한 행동을 보일 이유가 없기도 하다.

이처럼 쇼나 체험 프로그램은 물론 사육 자체가 학대에 가깝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돌고래 사육 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와 생명다양성재단은 지난 10일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을 통해 “고래는 그 어느 동물보다 사육환경에 부적합하며 사육하는 것 자체가 학대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두 단체가 이 같은 성명을 낸 것은 거제씨월드 측이 비난 여론에도 돌고래에 타는 체험 프로그램을 지속할 것이라며 “해양동물들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행동 풍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 농무부에서 권고하고 있는 규칙 하에 돌고래(벨루가)를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 차원이었다. 이들 단체는 “고래 타기는 행동풍부화가 아님은 물론 정반대 행위”라며 “고래를 타는 것이 해당 동물에게 약간이라도 이득을 준다는 것은 가해를 친절이라고 말하는 파렴치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어떤 과학적, 국제적 기준에서도 사람이 동물을 타는 것을 행동풍부화라 하지 않는다”며 “행동풍부화는 동물이 야생의 서식지에서 누렸을 다양한 자극을 최대한 재현시킴으로써 스트레스와 정형행동 등을 감소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돈을 많이 낸 고객을 태우는 명백한 상업적 행위를 행동풍부화와 같이 동물을 위한 용어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극도의 위선이자 동물권 및 동물행동에 대한 과학을 조롱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고래를 타는 것은 단 한 차례라 하더라도 행동풍부화가 아님은 물론이며 오히려 정반대에 해당되는 가해적, 침해적, 반생명적,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달 27일 경남 거제의 수족관 거제씨월드에서 벨루가(흰고래)를 타는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핫핑크돌핀스 제공.

이들 단체는 “벨루가를 사람이 얼마든지 밟고 올라타도 무방한 존재로서 표현하는 것은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와 가장 대척점에 있으며 매우 비교육적이고 심지어는 반교육적”이라며 “거제씨월드는 벨루가 타기를 즉각적으로 중단하고 지금까지 고래 타기를 해온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대표는 “지나치게 높은 폐사율에도 관리 주체인 해양수산부는 평소 사육 시설과 사육 동물에 대한 관리를 전혀 실시하지 않고 있다”며 “시민단체들이 해수부에 고래류 사육 시설의 문제점을 전달하면서 정기적인 점검, 건강하지 못한 개체들을 바다쉼터 조성 후 이송하도록 얘기해 왔지만 해수부는 이를 거부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좁은 수조에 갇혀 고통스러워 하는 해양포유류에 대해 해수부는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며 “해당 기업에만 맡긴 채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이처럼 높은 폐사율로 이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와 생명다양성재단은 “사육 중인 고래를 당장 방류할 수 없다면 그때까지 최대한 좋은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데 사람이 고래에 타는 것은 반생명적, 비윤리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동물을 쇼로 이용하고 있는 실태를 당장 해소하기 어렵다면 우선 번식을 금지하는 등 즉각 실시 가능한 조치부터 해야 한다”며 “근본적으로는 수족관 돌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한 계획을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세워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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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170739001&code=940100#csidxd1546fef0a51246ac1faccd89bcf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