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농경지에서 먹이활동 중인 흑두루미의 모습. 최은호씨, 자연관찰사이트 네이처링 제공.
김기범 기자의 살아남아줘서 고마워(27) - 이천학의 도시 순천에서 먼 길 가는 흑두루미들에게 띄운 편지
지난 25일 전남 순천시 공무원들에게는 내부전산망을 통해 보기만 해도 흐뭇한 웃음을 짓게 하는 편지 한 통이 전송됐습니다. 순천시 순천만보전과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된 신입 공무원인 전은주 주무관이 보낸 ‘님은 갔습니다. 아아 나의 사랑하는 흑두루미님은 갔습니다’라는 제목의 편지였습니다. 같은 순천시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띄운 편지인 동시에 먼 길을 떠나는 흑두루미들이 번식지인 시베리아에 잘 날아갔다가 다시 가을철 순천으로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진심이 담긴 편지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편지는 인사에 이어 “오늘은 아주아주 아쉽고 서운한 소식을 전해드리러 찾아왔습니다”라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전 주무관이 말한 ‘아쉽고 서운한 소식’은 바로 “2019년 10월 18일에 찾아왔던 흑두루미들이 순천만을 떠나 시베리아로 돌아갔습니다!(오열)(통곡)”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전 주무관은 공무원들의 인사발령 사항 양식에 흑두루미의 부서를 각각 ‘신임 시베리아’, ‘현임 순천만습지’로 적어놓은 표도 함께 첨부했습니다.
순천시 순천만보전과 전은주 주무관이 전 직원에게 보낸 편지에는 허석 순천시장을 비롯한 순천시 공무원 59명이 응원 댓글을 남겼다. 순천시 제공.
순천만은 국내를 찾는 흑두루미 중 가장 많은 수의 흑두루미들이 월동을 하는 곳으로 올겨울의 경우 최대 2701마리가 관찰됐습니다. 과거에는 흑두루미 대부분이 일본 규슈의 이즈미 지역까지 남하해 월동했으나 순천만의 서식환경이 개선되는 등의 이유로 2006~2007년쯤부터 순천만에 머무는 흑두루미의 수가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말까지는 월동하던 흑두루미 수가 채 100마리도 안 됐었지만 농경지를 습지로 재자연화하고, 철새들의 비행 때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는 전깃줄을 없애기 위해 전봇대를 철거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었습니다.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농법을 도입하고, 추수 후에도 논에 남은 볏짚과 낱알을 흑두루미들을 위해 남겨둔 것도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순천만을 찾는 전체 두루미류의 개체 수가 처음 1000마리를 넘어선 것은 2014년 12월로, 이때부터 순천은 ‘천학의 도시’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흑두루미 개체 수가 1000마리를 넘어선 것은 2015년 10월입니다.
흑두루미의 모습. 김신환씨, 자연관찰사이트 네이처링 제공.
그러던 것이 2017년에는 2000마리가 넘는 흑두루미가 겨울을 나면서 ‘이천학의 도시’가 되었고, 이제는 삼천학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흑두루미 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순천만의 생태계가 그만큼의 흑두루미에게 먹이를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생물다양성이 풍부해졌다는 의미도 됩니다. 이는 모두 순천시와 시민단체 등 민관이 서식환경 보전과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정부가 이를 돕는 과정에서 얻은 성과였습니다.
순천만에서 흑두루미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순천만보전과 공무원들. 순천시 제공.
전 주무관의 편지는 흑두루미가 모두 북상하기 직전인 21일 실시된 마지막 모니터링에서 있었던 ‘아주 특별한 일’로 이어집니다. 순천만보전과 공무원들은 흑두루미가 월동하는 가을철부터 봄철 사이 이동 시기에는 매일, 이동이 없을 때는 매주 1회 순천만에서 흑두루미들이 깨어나 먹이활동을 하러 날아가는 새벽에 개체 수를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 모니터링날은 2019마리의 흑두루미가 순천만에 남아 있었어요”라며 “2019마리라니~1마리만 더 있었어도 참 좋았을텐데”라며 모니터링을 마치려 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관찰된 수는 결국 2020마리째를 채우고야 말았습니다. 전 주무관은 “날개가 축 처져있는 흑두루미가 갈대밭에 있는 게 아니겠어요”라는 문장으로 2020마리째 흑두루미를 발견한 상황을 전했습니다. 이 두루미는 순천만 명예습지안내인인 강나루씨에게 구조된 뒤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이송됐고, 현재는 치료를 받은 뒤 회복 중이라고 합니다.
흑두루미는 천연기념물 228호인 멸종위기 조류입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멸종위기종 목록인 적색목록에서 취약(VU)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IUCN 적색목록에 따르면 전 세계에 남은 흑두루미 수는 6000~1만5000마리에 불과합니다.
흑두루미의 번식지와 월동지. 한반도에서는 순천만이 월동지로 표시돼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제공.
사실 순천만에서는 흑두루미 가운데 이 지역에서 월동하는 개체들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 최대 월동지인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에서 출발해 번식지로 이동하다 휴식을 취하고,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순천만을 중간 기착지로 삼는 개체들도 많습니다. 이즈미는 두루미류 1만6000마리가량이 월동하는 곳으로, 세계 최대의 두루미 월동지로 꼽히는 곳입니다. 특히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는 이즈미에 머무는 개체가 세계 전체 흑두루미의 80%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4대강사업 때문에 순천만과 천수만을 중간기착지로 삼거나 아예 순천만을 월동지로 이용하는 흑두루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흑두루미들은 일본으로 남하할 때와 다시 돌아올 때 낙동강에 존재했던 해평습지를 비롯한 습지와 모래톱 등에서 쉬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4대강사업 이후 수위가 올라라고 모래톱이 사라지면서 흑두루미들은 쉴 곳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낙동강 유역을 따라 이동하던 흑두루미들이 이동 경로를 서해안의 천수만과 남해 순천만 쪽으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반면 봄철 북상하는 흑두루미가 2000마리 이상 관찰됐던 낙동강 유역은 중간기착지 기능을 거의 상실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22조원이 넘는 예산을 낭비한 데다 숱한 생물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면서 생태계를 파괴시킨 4대강사업이 흑두루미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친 셈입니다.
전 주무관은 편지의 끝부분에 “당분간은 여러분들께 흑두루미 소식을 알려드리지 못할 것 같아 참 아쉽네요”라며 “그래도 흑두루미는 10월에 다시 찾아오니까 그때까지 흑두루미 잊지 마시고, 순천만습지도 잊지 마시고, 꼭꼭 기억해 주세요!”라는 인사로 편지를 맺었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올가을 순천만에서 다시 흑두루미들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랍니다. 삼천학의 도시가 실현되는 날이 언제일지도 기대가 됩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3261631001&code=610103#csidx477e8aec09bdeb8bef36d02b9249c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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