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 기자의 살아남아줘서 고마워(28) - 세계 최대 산호초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서 역대 최악의 백화현상
호주의 세계 최대 산호초인 ‘그레이트배리어리프(대보초·大堡礁)에 역대 최악의 백화현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해양생태계는 물론 육상생태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산호 군락이 회복불가능한 악영향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백화현상이 나타난 호주 그레이트배리어리프 산호의 모습. 모건 프래챗, 호즈연구협의회(ARC) 산호초연구센터 제공.
백화현상이 나타난 호주 그레이트배리어리프 산호의 모습. 크리스틴 브라운, 호즈연구협의회(ARC) 산호초연구센터 제공.
호주연구협의회(ARC) 산호초연구센터장인 테리 휴스 호주 제임스쿡대 교수 등 연구진은 지난달 2주 동안 1036개소의 산호 군락을 공중에서 조사한 결과 광범위한 백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7일(현지시간) 밝혔다. 연구진은 특히 기존에 대규모 백화현상이 일어났던 북부와 중부 산호초 외에 처음으로 남부에서도 백화현상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연구진이 백화현상이 발생한 지역을 표시한 지도를 보면 2016, 2017년과는 달리 남부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백화현상이 나타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호주 산호초연구센터 연구진이 공중에서 그레이트배리어리프를 관찰하고 있다. 호주연구협의회(ARC) 산호초연구센터 제공.
연구진은 이 같은 대규모의 백화현상의 원인을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온도 상승탓으로 보고 있다. 해수온도가 상승하면 산호 내부에 서식하는 조류(藻類)가 외부로 빠져나가게 되는데 산호의 알록달록하고, 선명한 색깔은 조류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산호는 색을 잃고 희게 변하는 것이다. 백화현상이 일어난다고 해서 산호가 바로 죽는 것은 아니지만 높은 해수 온도가 지속되면 결국 목숨을 잃게 되고, 다양한 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산호는 외양 때문에 식물로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동물이다. 해파리나 말미잘 등과 함께 자포동물로 분류된다.
2016년과 2017년 호주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백화현상 현황. 빨간색은 백화현상이 일어난 지역, 초록색은 백화현상이 일어나지 않거나 발생 규모가 작은 지역. 호주연구협의회(ARC) 산호초연구센터 제공.
2020년 호주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백화현상 현황. 빨간색은 백화현상이 일어난 지역, 초록색은 백화현상이 일어나지 않거나 발생 규모가 작은 지역. 호주연구협의회(ARC) 산호초연구센터 제공.
지구 남반구의 여름이었던 지난 2월 호주에서는 1900년 호주 기상당국이 해수 온도 측정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온도가 관측됐다. 연구진은 올해 해수온도가 평년보다 평균 3도가량 높았던 탓에 백화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말로는 대보초라고 부르는 그레이트배리어리프는 호주 동북부 해안에 있는, 세계 최대의 산호 군락이다. 길이는 2300㎞, 면적은 34만5400㎢에 달한다.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는 1500종 이상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고, 411종의 경산호와 수십종의 해양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그레이트배리어리프는 호주를 상징하는 관광명소 중 하나로서 연간 56억달러의 경제효과를 일으키고 있으며 수만명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기도 하다.
공중에서 촬영한 호주 레이트배리어리프의 백화현상 모습. 호주연구협의회(ARC) 산호초연구센터 제공.
그레이트배리어리프를 포함한 산호초는 지구상에서 가장 생기가 넘치는 해양생태계로 꼽힌다. 지구상 해양생물 전체의 4분의 1에서 3분의 1가량이 생애 중 일정시기 동안 산호초에 의지해 생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연안지역을 침식과 극한기상현상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다양한 식량자원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유엔의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의 경제학(TEEB·The Economics of Ecosystems and Biodiversity)’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전체에서 산호초가 주는 혜택을 받는 이들은 8억5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적어도 2억7500만명은 산호초와 생계가 직결돼 있다. 호주에서는 이미 그레이트배리어리프 내 서식지 감소로 인해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는 상태다.
과학자들이 이번 백화현상이 특히 심각하다고 경고하는 것은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서 일어난 백화현상의 빈도가 최근 빠르게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대규모 백화현상이 처음 발생한 것은 1998년으로 당시 여름에는 역대 가장 높은 기온이 기록됐다. 이후 2002년, 2016년, 2017년에도 대규모 백화 현상이 일어난 바 있다. 올해까지 합하면 지난 5년 동안만 벌써 3번의 대규모 백화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과거에는 엘니뇨 현상이 발생할 해에 백화현상이 발생했으나 최근 호주의 여름 평균기온이 높아지면서 엘니뇨가 발생하지 않은 해에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까지 5번의 대규모 백화현상 가운데 엘니뇨가 발생한 해 백화현상이 일어난 것은 1998년과 2016년뿐이다. 연구진은 이처럼 엘니뇨가 아닐 때도 백화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산호초들의 회복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스페인어로 ‘남자아이’, ‘아기 예수’라는 뜻의 엘니뇨는 태평양 적도 부근의 바닷물이 비정상적으로 뜨거워지는 현상을 말한다. 보통 엘니뇨 감시구역(남위 5도~북위 5도, 서경 170도~서경 120도 사이 바다로 페루 부근 동태평양)에서 해수면 온도 편차가 0.4도 이상으로 6개월 이상 지속될 때를 말한다. 엘니뇨라는 이름은 과거 페루 어민들이 성탄절쯤 바다가 따뜻해지며 물고기가 풍부해지는 현상을 이렇게 부른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라는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 한 산호초의 대량 폐사를 막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산호초감시프로그램의 마크 이킨 박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래에도 산호초가 존재하길 원한다면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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