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 기자의 살아남아줘서 고마워(29) - 7년 전 제주 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잘 지내고 있어요.”
14일 제주 대정읍 앞바다에서 확인된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다른 돌고래들의 모습. 제돌이의 등지느러미에 새겨진 숫자 ‘1’이 보인다. 핫핑크돌핀스 제공.
힘차게 바다를 가르며 헤엄치는 돌고래의 등지느러미에 새겨진 숫자 ‘1’이 보이시나요. 바로 7년 전인 2013년 7월 고향인 제주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의 모습입니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 사무실을 둔 해양생물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는 제돌이와 다른 남방큰돌고래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14일 오전 대정읍 앞바다에서 촬영해 이날 공개했습니다.
지난 8일 대정읍 앞바다에서 핫핑크돌핀스가 촬영한 삼팔이의 모습. 핫핑크돌핀스 제공.
핫핑크돌핀스는 제돌이 사진과 함께 제돌이와 같은 해 제주 바다에 방류된 남방큰돌고래 춘삼이와 삼팔이의 최근 사진도 함께 공개했습니다. 핫핑크돌핀스는 “춘삼이와 삼팔이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쇼돌고래 야생방류 7년이 지났지만 이 돌고래들이 여전히 바다에서 잘 살아가고 있어서 무척 뿌듯하다”고 전했습니다.
제돌이는 제주 바다에서 불법으로 포획된 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다가 야생 방류된 남방큰돌고래입니다. 남방큰돌고래는 국내에선 제주 연안에만 서식하고 있고, 세계적으로는 아프리카 동남해안, 아라비아해, 인도양, 동남아시아와 호주 및 뉴질랜드 등의 바다에 서식하는 해양동물입니다. 남방큰돌고래는 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 전 단계인 ‘준위협종(NT·Near Threatened)’으로 분류한 해양포유류입니다. NT는 멸종위기 직전의 상태, 또는 보호조치가 중단될 경우 멸종위기에 처하게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다른 돌고래들의 모습. 핫핑크돌핀스 제공.
남방큰돌고래들은 최근에는 특히 대정읍 앞바다에서 자주 관찰되고 있습니다. 제주 내의 다른 연안 지역에 비해 돌고래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소가 상대적으로 적고, 난개발이 상대적으로 덜 진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핫핑크돌핀스에 따르면 “대정읍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들은 마음껏 수면 위로 뛰어오르며 활발히 먹이활동과 휴식 및 사교적 행동을 취하며” 지냅니다. 수면 위로 몸을 드러내도 자신을 해치는 요소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다른 돌고래들의 모습. 가운데 돌고래는 아직 덜 자란, 어린 돌고래로 보인다. 핫핑크돌핀스 제공.
제주를 대표하는 해양동물인 남방큰돌고래들의 미래에 대해선 최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체 개체 수가 120여 마리에 불과한 이 돌고래들의 서식지인 제주 연안에서 난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방큰돌고래들의 마지막 안식처라고 할 만한 대정읍에서는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계획까지 추진되고 있습니다. 핫핑크돌핀스를 포함한 시민단체들은 제주도에 해양풍력발전단지 조성계획을 전면 철회하고, 대정읍 앞바다를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잘 보전하는 것이 제주의 미래가치에 부합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앞바다에서 해녀들이 테왁망사리에 음파를 내보내는 장치를 부착한 후 조업해 돌고래 접근여부를 알아보는 돌고래 회피 장치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제주도 제공
물론 남방큰돌고래들의 미래에 대한 소식들이 모두 어두운 것만은 아닙니다. 최근 대정읍 앞바다에서 해녀와 남방큰돌고래 들의 공존을 위한 실험이 밝은 소식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서귀포시 모슬포수협,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어촌계, 핫핑크돌핀스 등은 지난달 31일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앞바다에서 돌고래 접근 회피 장치 시범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실험에서는 무릉어촌계 소속 해녀 11명이 조업에 투입됐고 이중 2명의 테왁 망사리에 돌고래 회피용 음파발신장치인 ‘핑어’를 부착했습니다. 핑어는 900g 정도 무게로, 돌고래가 싫어하는 특정 주파수대의 음파를 불규칙적으로 내보내 음파에 민감한 돌고래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리의 장치입니다. 이 실험이 추진된 배경은 남방큰돌고래가 몰려와 조업을 방해한다는 해녀들의 호소 때문입니다. 남방큰돌고래가 해녀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업 도중 돌고래가 몰려들어 해녀들이 놀라는 일이 발생하고,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을 돌고래가 낚아채 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녀들이 수협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이 같은 실험이 실시됐습니다. 해녀들에 따르면 음파 장치를 부착해 물질(해녀가 해산물을 포획, 채취하는 행위)을 하는 동안 돌고래가 다가오거나 방해하는 행위는 없었습니다. 정확한 효과나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여러차례 실험이 진행돼야 하겠지만 인간과 돌고래의 공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습니다. 핫핑크돌핀스는 제돌이를 포함한 한반도의 동물들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 3가지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고래류, 북극곰, 영장류, 코끼리 등 수족관, 동물원 사육 부적합 종들은 모두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더이상 야생에서 잡아오지 말자”, “개체 수가 매우 적어 보호가 시급한 남방큰돌고래들의 서식처 제주 바다 일대를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 “지구온난화 감소와 해양생태계 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래류를 보호하기 위해 해양포유류보호법을 제정하여 불법포경과 고래고기 유통을 근절하자” 등입니다. 해녀와 남방큰돌고래 들을 위한 실험 외에도 남방큰돌고래들에 대한 밝은 소식들이 더 많이 들려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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