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부터 19일까지 3박 4일 간의 일본 재해현장 취재에 대해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내용들을 취재기를 통해 전해 드리려 합니다. 4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제게는 4주처럼 느껴지는 긴 기간이었습니다. 이번에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게는 4년, 40년처럼 긴 시간이었겠지요.
14일 낮 저와 다른 기자의 현장 투입된다는 얘기를 들었고, 이날 저녁 정신 없이 짐을 꾸렸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도쿄 특파원을 비롯해 지난 12일 지진 발생 직후 투입된 기자까지 모두 3명이 도쿄와 센다이 등에서 취재 중이었지만 미야기현과 이와테현의 다른 지역에 대한 취재도 필요하다는 편집국의 판단이었습니다. 바로 비행기편을 알아본 결과 비교적 이와테현 및 미야기현과 가까운 아키타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는 16일에나 있었고, 아키타에 비해 조금 멀긴 아오모리공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15일 오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오모리현은 일본 본섬인 혼슈 최북단에 있는 지역으로 아오모리에서 바다를 건너가면 바로 홋카이도가 나오는 곳입니다.
15일 오전 비행기를 타고 점심 쯤 아오모리공항에 도착하니, 조금 한가한 얘기처럼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설국'이었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첫 문장 '긴 터널을 지나니 그곳은 설국이었다'처럼요. 현지에서 본 일본 신문 1면 제목 중에 '무정한 하늘'이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제가 가있는 동안 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입은 도호쿠 지방에는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폭설과 강추위가 지속됐었습니다. 제가 4일내 본 것도 폭설이 내린 풍경이었습니다. 이런 마음 아픈 취재가 아니라 여행으로 왔다면 참 아름답게 보였을 설경이었지요.
현재 고속버스와 기차 등이 속속 운행을 재개하고 있지만 15일에는 아오모리에서 제 목적지인 이와테현의 현청소재지인 모리오카시와 다른자의 목적지인 미야기현의 대도시 센다이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은 택시밖에 없었습니다. 일본 택시의 살인적인 요금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요. 차를 렌트하는 것은 제가 국제면허가 없는 데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포기했고요. 실제 이날 아오모리 시내에서 보니 주유소마다 수십 대의 승용차들이 기름을 넣으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택시 기사에 따르면 차량 1대당 20리터씩만 주유를 해준다고 하더군요.
고속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2시간이면 이동이 가능한 모리오카시까지 일반 도로로 이동하면서 본 아오모리현과 아키타현, 이와테현 내륙도시들의 모습은 평온함 그 자체였습니다. 수십~수백킬로미터 저편에서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났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죠. 불을 번쩍번쩍 밝히고 있는 파친코장도 있었습니다.
모리오카시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나절. 점심을 안 먹고 이동한지라 우선 역 앞의 작은 식당에서 저녁을 간단히 먹고 호텔을 잡았습니다. 전에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만드신 안해룡 감독님이 잘 모르는 도시에 갔을 때는 비즈니스호텔 체인 토요코인이 무난하다고 말씀하신 게 떠올라 역 앞에 있는 토요코인에 투숙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방사능 공포도 없었고 현장 취재 의욕에 불탈 때였지요. 짐을 풀면서 씻으려고 보니 면도기를 안 가져왔더군요.
내일 교통편도 알아볼 겸 역 앞에 나가 편의점을 가려고 했는데 아뿔싸, 연 곳이 하나도 없더군요. 몇 시에 닫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영업을 종료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습니다. 맨 위에 있는 사진이 다음날인 16일 아침 편의점이 닫혀 있는 모습인데요,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이 닫힌 모습이 현재 일본의 물자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주네요. 편의점뿐 아니라 연중 무휴인 식당 체인들도 닫았더군요.
이후 다른 도시들에서도 계속 본 모습이지만 현재 일본은 기름 부족과 도로 두절 등으로 인해 심각한 물자난을 겪고 있습니다. 일본 내나 전 세계에서 보내온 물건들이 대도시나 재해지역 인근 도시에 쌓이기만 하고 실제 필요한 이들에게는 전달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물자가 전달돼도 운반하거나 판매할 사람이 없는 경우도 많고요. 가장 현대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던 사회가 한 순간에 원시사회로 전락해 버리는 모습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호텔에서도 아침을 안 주거나 주먹밥 1~2개로 식사량을 제한하는 경우도 많았답니다. 저도 출장 중에 가장 곤란했던 부분이 밥을 사먹는 것이었고요.
그럼 현장 취재를 갔던 둘째날 얘기는 취재기 2편에서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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