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현지르포]규모 7 강진 예사 “두려워도 고향이라 못 떠나요”
ㆍ김기범 기자 ‘비운의 이와테’ 르포
“쇼와 8년(1933년) 지진 때도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고 있잖아. 이번에 마을은 전부 없어졌지만 이렇게 건강하니 얼마나 다행이야.”
17세였던 1933년 당시 규모 8.1의 강진을 겪은 아사누마 요시이(94)는 미야코시에 마련된 피난소에서 다른 이들을 위로하려는 듯 힘주어 말했다. 아사누마가 말한 33년 지진은 규모 8.1을 기록하며 3064명의 목숨을 앗아간 쇼와 산리쿠 대지진을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이와테현에 살고 있는 그는 수천명이 목숨을 잃은 두 번의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흔치 않은 경험을 한 셈이다.
16일 찾은 해안도시 가마이시시 도심 가마이시역 부근에는 ‘여기서부터는 쓰나미 침수 상정 구역’이라는 대형 경고판이 도로 위에 걸려있었다. 표지판에서 바닷가로 몇십m를 걸어가자 쓰나미에 밀려온 자동차들이 상가 건물을 뚫고 들어가 있거나 뒤집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육상 자위대 중장비들이 정리작업을 하고는 있었지만 상가 건물들은 쓰레기로 뒤덮여 있고, 쓰나미가 몰고온 진흙이 바닥에 깔려 있어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지난 11일 일어난 쓰나미가 해안부터 이 표지판 바로 앞쪽까지 가마이시시의 해안 쪽 절반가량을 휩쓴 것이다.
이와테현은 일본 동북지역에서도 빼어난 설경으로 유명하고, 전설에 등장하는 강의 요괴 ‘갓파’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은하철도 999>의 모태가 된 <은하철도의 밤>의 작가인 근대 소설가 미야자와 겐지와 민주당 유력 정치인 오자와 이치로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고통과 비애가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이와테현, 특히 해안 쪽에 거주하는 주민들부분에게 지진과 쓰나미는 상존하는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2003년 발생한 규모 7.1의 강진으로 100여명이 다쳤고, 2008년 6월14일에는 이와테와 미야기에서 규모 7.2의 지진이 발생해 17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됐다. 1896년 대지진 때는 22.4m 높이의 쓰나미로 2만2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1897년(규모 7.4), 1936년(규모 7.4), 1978년(규모 7.4) 등 수시로 규모 7을 넘는 강진이 일어났다.
쓰나미에 쓸린 집에서 쓰레기를 치우던 다카하시 준코(39)는 “이전에도 여러번 지진을 겪었지만 이번이 가장 피해가 크다”며 “두려운 마음을 잊으려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마이시시 고시중학교에 마련된 피난소에서 만난 가누타 고이치(59)는 “우리처럼 바다와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지진 자체보다 쓰나미를 더 무서워한다”고 말했다. 그는 “위험한 걸 알면서도 못 떠나는 것은 태어난 고향에서 계속 살고 싶기도 하고, 갈 곳도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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