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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 기사 2010.8.~

“일 ‘근린제국조항’만 지켜도 교과서 왜곡 없다”

“일 ‘근린제국조항’만 지켜도 교과서 왜곡 없다”

ㆍ다카시마 류큐대 명예교수 방한 ‘독도 냉정한 접근’ 주문

“일본은 19세기 아시아 민중이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에 저항한 덕분에 식민지가 될 운명을 피했습니다. 새 교과서에는 조선, 중국 등 아시아 민중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켜야 합니다.”

21일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일본 교과서 문제와 근린제국조항’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다카시마 노부요시 류큐대 명예교수(68). 그는 “일본 정부는 아시아 국가들을 배려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었던 근린제국조항을 준수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와 시민들이 일본 측에 근린제국조항을 지키도록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근린제국조항(近隣諸國條項)이란 1982년 일본 교과서 검정기준에 신설된 조항이다. 당시 미야자와 기이치 관방장관은 일본이 아시아 각국을 ‘침략’한 게 아니라 ‘진출’했다는 교과서 표현이 비난을 받자 담화를 통해 “근현대의 역사적 사상을 취급하면서 국제 이해와 국제 협조의 견지에서 필요한 배려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우익세력은 근린제국조항 탓에 자학적인 역사관이 담긴 역사 교과서가 출판되고 있다며 철폐를 요구해왔다.

고등학교 교사 시절부터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반대운동을 펼쳐온 다카시마 교수는 “한국인들은 물론 일본 내에서도 발표된 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근린제국조항에 대해 아는 이가 드물다”며 “이 조항만 지켜도 일본의 역사 교과서가 왜곡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본은 중학교 교과서 검정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결과는 3~4월 발표된다. 이번 검정은 2008년 일본 문부과학성이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펴내면서 독도 문제를 기술하도록 한 뒤 처음 실시되는 것이다. 또 기존에 역사 왜곡 교과서를 출판해왔던 후소샤가 이쿠호샤로 이름을 바꿔 역사와 공민 교과서를 검정 신청했고, 역시 극우 성향의 지유샤도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앞으로 다카시마 교수는 일본 내에서 ‘제2의 근린제국조항’을 제정하자는 운동도 벌일 계획이다. 그가 말하는 제2의 근린제국조항은 19세기 미국, 프랑스 등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를 침략할 때 조선, 중국 등 아시아 각국의 민중이 맞서 싸우면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경영 및 침략 비용이 크게 늘어난 덕분에 일본이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는 내용을 교과서에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다카시마 교수는 “이미 1950년대 일본 학계에서 의견이 일치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1926년부터 1989년까지 재위한 히로히토 덴노(天皇·일왕)가 덴노제의 유지를 위해 미국에 항복하는 것을 늦춘 게 일본과 아시아 민중의 희생을 키웠고, 한반도 분단에도 원인을 제공했다며 “덴노의 잘못에 대한 기술도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카시마 교수는 그러나 한국인들이 독도 영유권에 대해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일본 극우세력에게 자신들의 ‘독도를 되찾자’는 활동을 정당화하는 빌미를 준다면서 냉정한 접근을 당부했다.

<글 김기범·사진 김세구 선임기자 holjja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