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30일자 경향신문 11면에 게재된 "말은 안 통해도 서로 보듬다 보니 친구" 기사(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7300258325&code=940401)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입니다.
처음 두 나라 아이들이 전남 곡성에서 만난다는 것을 들은 것은 지난 25일 저녁 일본에서 온 시민단체, 대학 교수, 연구원 등의 분들과 저녁을 먹으면서였습니다. 여러 가지로 일본에서의 취재를 도와주신 강내영씨께서 이번에 한국과 일본의 탈학교 청소년들이 만나는 공동 캠프에 가서 워크숍을 진행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아, 이건 기사 하나 써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요일 아이템 회의에 발제해서 취재를 하기로 결정했고, 수요일 아침보고를 마친 후 바로 전남 곡성에 내려갔습니다.
서울에서 오전 10시쯤 떠났는데 곡성에 도착하니 오후 3시쯤 됐더군요. 정말 징하게 멀었습니다, 곡성은. 회사 차량을 지원 받아 갔으니 다행이지 기차로 갔다면 고생 좀 했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어디를 봐도 지리산과 섬진강을 시야에서 벗어나게 하기 힘든 곡성의 산수는 유려하다는 말이 부족할 지경이더군요. 안구가 정화된다, 폐가 맑아진다는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현지에서 취재를 도와주신 보따리학교 김재형 선생님께선 웃으시면서 "이 동네 사람들은 지리산을 앞산처럼, 섬진강을 동네 하천처럼 생각해서 갑갑하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갔을 때 아이들의 일정은 근처 찜질방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비가 계속 내려서 실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일본 분들은 찜질방을 참 좋아하더군요. 저는 땀이 줄줄 흐르는 보석사우나 안에서 수첩을 꺼내들고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10분만에 손 들고 나갔는데 말이지요.-_-
찜질방에서 다같이 모였을 때는 홍익대 안상수 교수님-안상수체로 유명하신!-께서 한글 자모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짧은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다들 신기해 하더군요. 영어를 100살로 칠 때, 중국 한자는 60살, 일본 가나는 24살, 한글은 12살 정도라고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찜질방을 나와 숙소인 김재형 선생님 댁에 갔는데 곡성군 죽곡면 남양리 큰길에서 차로 10여분 가까이 올라가는 첩첩산중이었습니다. 김 선생님은 8년 전에 귀농을 하셨는데 집에 전기가 안 들어오더군요. 화장실도 재래식이었고요. 아이폰은 전화는 물론 3G도 안 터지더군요. 어찌보면 더없이 불편한 환경에서, 설거지 등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하는 데도 아이들은 불평 한마디 안 하더군요. 다소 불편하게 생각한 제가 부끄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다같이 모여서 노는 시간이 마련됐습니다. 이구동성 놀이도 하고, 같이 노래도 하고 -저도 어쩔 수 없이 한 곡을 불러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었습니다.- 노는데 저는 다음 날을 기약하기 위해 근처 모텔을 잡아서 잠을 청했습니다.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요.
29일 얘기를 하기 전에 보따리학교에 대해 소개를 해드려야겠군요. 오마이뉴스에서는 몇 차례 기사화된 것 같은데 그밖의 언론에서는 별로 다뤄지지도, 또 알려지지도 않은 것 같으니까요. 보따리학교에는 '길 위의 대안학교'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곳입니다. 장소가 정해져 있지도 않고, 입학이나 졸업, 입시와 같은 제도도 없고, 정해진 교과 과정이나 자격증을 가진 교사도 없습니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이번 보따리학교를 어디서, 어떤 주제로 여니까 참가할 분은 와달라라는 공지가 뜨면 원하는 학생들이 찾아와 같이 놀기도 하고, 배움을 얻기도 하는 방식입니다. 아무래도 보따리학교에 오는 청소년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는, 탈학교 청소년들이 많은 것 같네요. 이번에 보따리학교에서 만난 16살 여자 청소년은 보따리학교 중간쯤부터 왔다는데 학교를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고 해요. 하지만 학교에선 보따리학교에 가느라 한달에 일주일 정도씩을 학교에 안 나오는 이 아이를 가만 둘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 아이는 학교도 계속 다니고 싶었음에도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기사에 아이의 자유로운 생활방식을 학교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 바로 이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참, 보따리학교의 시작과 진행과정 등까지 말씀드리기는 제 취재가 부족하니 오마이뉴스 등의 기사를 참고해 주세요.^^
기사에 언급된 일본의 프리스페이스 코스모 역시 비슷한 개념이긴 하나 좀 더 체계나 형식 같은 것이 갖추어진 느낌이었습니다.
29일 아침엔 김재형 선생님의 인솔로 아침 식사 전 근처에 있는 수령 200살 정도의 보호수에 가서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각자 소원을 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흔히 당산나무라고 부르는 예전엔 마을마다 있었던 신성시되는 나무였습니다. 일본에서 온 프리스페이스 코스모의 졸업생인 카오루양은 "다시 한국 친구들과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하더군요. 2박 3일만에 절친이 된 듯한 흐뭇한 모습이었지요.
이날 일본 아이들은 귀국을 위해 2시 반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야 했기에 오전부터 서둘러 함께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신문에 사진이 나온 서로 웃는 얼굴을 그려주는 것이나 몸을 이용해 오토바이나 기차를 표현하기, 자연에서 얻은 물건들만으로 서로의 만남을 기념하는 상징물을 만드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서로 웃는 얼굴 그려주기에는 두 가지 규칙이 있었는데요, 하나는 서로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갖기에는 참 좋은 규칙이었지만, 도화지를 보면 안 되기 때문에 그리는 게 은근히 어렵더군요. 짝이 안 맞다 보니 저도 같이 그렸거든요.^^; 다른 하나는 한번에 그리기, 즉 손을 떼지 않고 그리기였고요.
워크숍이 진행되는 도중에 저는 다시 회사 차량을 타고 서울로 돌아와 강남경찰서에 가서 보따리학교에서 받은 사진을 고르고, 기사를 부랴부랴 마감했습니다. 마지막까지 같이 있다가 같이 기차를 타고 올라왔으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겠지만 마감 시간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지요.
제가 가기 전날인 27일 밤에는 지역 주민 및 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졌는데 거기서 일종의 한일 학교의 폭력성 배틀 비슷한 게 진행됐다고 하네요. 한국과 일본 양쪽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 한국 학교의 폭력성이 이겼다고 합니다.-_- 학교의 폭력성 때문에 등교 거부를 하게 된 일본 아이들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고 하네요. 한국 사회 자체의 폭력적인 면이 일본의 그것보다 심하기 때문인지 한국 아이들이 갖고 있는 학교의 폭력성에 대한 내성이 일본 아이들보다 강한 것 같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참 씁쓸하네요.
기사에도 썼지만 다른 아이들과 이번에 만난 한국과 일본의 아이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주체성이었습니다. 코스모의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이 주체성이라고 말씀하셨고, 보따리학교에서도 모든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회의를 통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하는 방식으로 결정되더군요.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과 강압적인 학습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특히 이번에 보따리학교에 온 한국 아이들의 경우 스스로 학교를 떠나기로 결정한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면이 더 강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번 취재의 관건은 아이들과 대화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였어요. 일본 아이들이나 한국 아이들한테서 보따리학교에 와서 느끼는 것들을 묻기 전에 일단 될 수 있는 한 친해지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좀 먹혔는지 모르겠네요.^^; 일본 아이들에게는 한국어로 쓰여있는 책을 일본어로 읽어주고, 한국 아이들과도 같이 놀아주고 했는데 어느새 목적을 잊은 채 저도 아무 생각없이 놀고 있더군요.ㅎㅎ 그랬던 덕분인지 아니면 아이들 자체가 워낙 적극적이고, 주체적이어서 그랬는지 "참 좋았어요." "재밌었어요." 같은 이야기가 아닌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취재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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