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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민주화, 군부와 이슬람 정당 공존에 달렸다

ㆍ비슷한 조건 터키·인도네시아 사례로 본 이집트의 앞날
질서유지만 했던 이집트 군부 이집트 ‘케파야(이제 그만) 혁명’의 발원지였던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지난 18일 한 병사가 시민들에게 국기를 나눠주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를 축출한 지 1주일이 지난 이날 광장에서는 ‘승리의 날’ 집회가 평화롭게 열렸다. 카이로 | AFP연합뉴스


신년 벽두부터 중동의 구체제를 뒤흔들고 있는 반정부 시위의 최종 목표는 민주화에 있다. 특히 이집트의 경우 군부와 이슬람 정당의 조화로운 공존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부에 무게중심이 놓일 경우 또 다른 권위주의 정권의 출현이 불가피하고, 이슬람이 변혁 에너지를 모두 흡수할 경우 이란과 같은 신정(神政)으로 흐를 수 있어서다. 앞서 비슷한 고민을 풀어낸 인도네시아와 터키의 사례를 돌아보면서 이집트는 물론 새로운 정치실험이 임박한 중동의 앞날을 내다본다. 

군, 정권 교체에 결정적 역할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의 붕괴 이후 이집트 변화의 핵심은 군부와 무슬림형제단이다. 각각 무바라크 집권 시기에 기득권 세력을 대표해온 군부와 핍박받았던 야권을 대표해온 무슬림형제단이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다.

이집트 군부는 현재 모하메드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군 최고위원회를 중심으로 정치 개혁을 진행 중이다. 군 최고위원회는 지난 13일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 기능을 정지하는 한편 6개월 이내에 선거를 치르겠다고 공표했다. 20일 정치범 108명을 석방하는 등 유화책을 쓰는 한편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는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슬람 정당들도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집트 법원은 지난 19일 중도적 성향의 이슬람 정당 ‘알와사트 알자디드’의 창당을 허가했다. 1996년 무슬림형제단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창당했으나 그동안 정당 등록을 거부당해 왔다. 무슬림형제단도 지난 15일 자체 웹사이트에 게재한 성명을 통해 정당 건설을 선언했다. 이집트 독립언론 알마스리 알요움에 따르면 이와 별개로 무슬림형제단 일각에서는 터키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이란 이름으로 이슬람 율법에 근거한 시민정당을 준비하고 있다. 

이집트에 앞서 독재정권이 물러나고 군정을 거쳐 민정으로 권력이 옮겨간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터키에서도 군부는 독재정권 퇴진과 이후 정치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고, 민정 이양 이후 이슬람 정당들은 정권을 장악하거나 내각에 참여하고 의회에서 의석을 확보하는 등 활발한 세속정치 행보를 보여왔다. 인도네시아와 터키의 경우 군부의 힘이 막강하고, 이슬람 정당들의 세가 강하다는 것과 여타 이슬람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성공적인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뤄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집트의 미래 모델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통해 독재자를 몰아낸 후 과도권력을 위임받은 군부가 정치개혁을 진행한 것이 이집트와 유사하다. 독재정권 시절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오랫동안 군사원조를 받은 것도 공통점이다. 미국 공영방송 NPR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권력이 이양된 것이나 민주주의 경험이 부족한 것, 주변 국가들 역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 등도 유사점으로 꼽았다.

인도네시아와 이집트에서 모두 군은 독재정권이 물러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NPR에 따르면 이집트군이 시위대를 진압하지 않고 질서 유지 임무만을 수행한 것처럼 인도네시아 군부는 1998년 당시 반정부 시위를 강제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했다. 수하르토 퇴진 뒤에는 군의 정치적 역할을 점진적으로 축소시켰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전 대통령은 65년 쿠데타로 군사정권을 수립하고 이듬해 대통령에 취임한 뒤 32년 동안 장기 집권했다. 98년 경제위기 탓에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수용하고 청년실업이 급증하면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당시 약 1200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수하르토는 시위 열흘 만에 사임했다.

무바라크 퇴진 이후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 권한을 위임받아 야권과 정치개혁 협상을 한 것처럼 인도네시아에서도 수하르토 사임 이후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 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 정치개혁을 지휘했다. 이 같은 과정은 군이 이후에도 인도네시아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민주화가 진전된 현재도 군부 인사들은 여전히 정치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군부의 발언권이 강화되면서 군비 강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집트에 무슬림형제단을 제외하고는 변변한 야권 세력이 없었던 것처럼, 인도네시아에서도 장기독재로 수권 능력을 갖춘 야권 세력이 성장하지 못하다 보니 민정 이양 이후에도 군부가 상당 부분 기득권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 군부에서도 술레이만 부통령이나 탄타위 위원장 등 군출신 인사의 대선 출마 가능성이 거론된다. 군부는 경제적 필요에서라도 권력을 유지하려는 관성이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19일 뉴욕타임스는 이집트 내 음식·시멘트·가솔린·자동차·건설 업계의 상당 부분을 운영하고 있는 이집트 군부가 정치개혁과 별개로 기득권을 유지하려 할 것으로 분석했다. 시사주간 타임에 따르면 군이 운영하는 사업체의 규모는 이집트 국가경제의 약 10~15%를 차지하고 있다.

터키 역시 독재자 한 명이 장기간 집권하지는 않았지만 군부는 오랜 기간 막강한 권력을 보유하고 현실정치에 수차례 개입했다. 터키 군부는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60년, 71년, 80년 세 차례 쿠데타를 일으켜 민정을 해산시킨 후 새로운 민정이 들어설 때까지 군정을 운영했다. 터키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의 전신인 복지당이 군부의 압력을 받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세속주의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97년 해산당한 것까지 합하면 군부는 네 차례 민정을 해산했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이 군에 대해 신뢰하는 것처럼 터키인들도 군에 대한 믿음이 강한 편이다. 쿠데타를 일으키기는 했으나 군정을 오래 지속하지 않았고 수년 안에 민간에 권력을 이양했기 때문이다.

인니는 이슬람 정당 지지도 낮아

한편으로 인도네시아와 터키 이슬람 정당들의 정치활동은 이집트 이슬람 진영에 세력 확장 및 정권 획득 과정의 지표가 되고 있다. 집권에 성공한 터키 이슬람 정당과 제도권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4개 이슬람 정당의 공통점은 이슬람에 기반하면서도 세속적인 요소를 일부 도입했다는 점이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이 서방의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고, 보다 더 세속적이고 대중적인 기반을 얻기 위해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터키선 ‘무슬림 민주주의’ 배워야

현재 인도네시아 이슬람 정당 가운데 번영정의당(PKS)은 유도요노 정권의 내각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과 종교사상적으로 동일한 기원을 갖고 있는 PKS는 인도네시아 내에서 가장 잘 조직된 정당이기도 하다. 이슬람주의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상황에 맞는 유연한 대처능력을 보이고 있다.

PKS는 그러나 현재 인도네시아 내에서 제4당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전체 이슬람 정당의 득표율을 합해도 28%에 그친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대부분이 무슬림인 것을 감안하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이 군사독재 시절부터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폭넓은 지지를 받아온 것에 비해 PKS의 활동은 독재정권 시절 미약했다. 이를 감안하면 지난 13년간 이슬람 정당들이 꾸준히 성장해 온 셈이다. 아니스 마타 PKS 사무총장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민주주의는 타협을 통해 존재하고, 특히 인도네시아처럼 큰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며 “2014년 총선에서는 10% 이상을 득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터키에서는 이슬람 정당들이 90년대부터 꾸준히 지지 기반을 쌓은 끝에 95년 AKP의 전신인 복지당이 사상 처음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2002년에는 AKP가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계속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 AKP는 올 7월 총선에서 3번째 승리에 도전하게 된다. 터키는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는 달리 헌법에 따라 정치와 종교를 엄격하게 분리하고 있다. 이슬람 정당이 9년째 수권에 성공하고 있는 것은 AKP가 이슬람주의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세속주의 성향이 강한 터키 현실에 맞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스탄불 바흐체세히르 대학의 첸지즈 아크타르 교수는 지난 13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터키에서 정치적 이슬람주의는 완전히 변형되어 세속적인 환경에 맞게 적용됐다”며 “터키의 모델은 유럽의 기독민주당처럼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 이슬람주의 운동을 ‘무슬림 민주주의 운동’으로 만드는 데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AKP는 집권 이후 친이슬람정책을 펼치면서 군부 등 세속주의 세력의 비판을 받고 있지만 실용주의적 정책을 펼치면서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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