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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정파 초월 ‘평범한 시민들’이 역사 새로 쓴다

ㆍ이집트 ‘민주화 시위’ 장기화… “목숨 던질 준비 돼 있다”
“광장을 지켜라” 인간띠 저지 반정부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카이로 시민들이 지난 5일 타흐리르 광장으로 통하는 길목에서 군 탱크들로부터 철조망 바리케이드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사슬을 엮고 있다. 카이로 | AP연합뉴스

“무바라크 정부가 쓰러질 때까지 투쟁은 지속돼야 합니다.”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수일째 철야를 하며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 아메드 압델 모네임(22)은 6일 “프랑스 혁명도 민중이 권리를 쟁취할 때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우리도 무바라크 타도에 평생을 걸어야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엔지니어인 샤리프 모하메드는 “앞으로 한 달가량은 시위로 지치겠지만 우리의 나머지 삶은 자유를 획득하게 될 것”이라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철권통치에 저항하는 이집트 시위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시위대열에는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피로와 굶주림에도 시달리고 있다. 쌀쌀한 겨울 날씨에 비마저 간간이 흩뿌려 노상에서 철야를 하기에도 고역이다. 하지만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이집트인들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묵묵히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이집트 시위는 특정 정치·종교조직의 일사불란한 지휘가 아닌 평범한 이집트인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추동되고 있으며 시위과정에서 종교와 정파를 초월한 연대감과 스스로 이집트인이라는 자각이 굳건해지고 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무바라크 대통령은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시위대의 배후세력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작 무슬림형제단은 시위군중에서 다수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오히려 세련된 선글라스에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카이로의 나이트클럽을 막 나온 듯한 여성들도 끼어 있다. 아버지의 무동을 탄 어린이들, 북부공단에서 상경한 노동자들, 나일강 주변 5성급 호텔의 종업원과 자영업자, 기업인 등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시위대열을 구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58세의 배관공인 아메드 무스타파는 26살 난 둘째아들 이슬람이 지난 5일 내무부 청사 앞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복부에 총상을 입고 숨졌지만, 다른 두 아들과 함께 광장을 지키고 있다. 무스타파는 “바로 5m 앞에서 아들이 총상을 입고 숨지는 것을 지켜봤다”면서 “나도 (목숨을 던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시위대의 무슬림들이 정오 기도를 위해 시위를 중단하자 최근 무슬림들과 격렬한 종교 갈등을 빚었던 콥트교도(기독교도)들이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손에 손을 잡고 인간띠를 만들어 연대를 과시했다. 이번 시위가 특정 종교가 아닌 전 이집트인으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음을 확인시킨 장면이었다. AP통신은 단일한 지도부나 조직체가 없다는 점이 오히려 시위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돼 왔다고 분석했다. 무슬림형제단은 5일 성명을 통해 “이집트의 시위는 이슬람 봉기가 아니라 불공정하고 권위주의적인 체제에 대한 대중의 항거로, 여기에는 모든 계층, 모든 종교, 모든 분파가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5일에는 가랑비로 타흐리르 광장 바닥이 진흙탕이 됐다. 하지만 늦잠에서 깨어난 시위대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요를 툭툭 털어내며 또 하루의 시위를 이어갔다. 시위대들은 투쟁기간 동안 임시 진료소와 자경단을 운영하는 한편 음식 배급 등에서 인상적인 질서유지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민과 시위대 간 연대의식도 싹트고 있다. 외신은 상인들이 시위대에게 생수를 건네주고 시위 도중 부상한 이들을 위해 시내 병원에 헌혈 대기자가 몰리는 모습을 전하고 있다.

<서의동 기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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