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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긴 본 영화

안방에서 희생자를 보는 포스트 9.11 시대의 우리, 베리드


베리드, 로드리고 코르테스 - 왕십리cgv 12.13.

등장하는 배우가 단 1명뿐이라는 점에서 베리드는 던칸 존스의 빼어난 저예산 SF영화 '더 문'을 떠오르게 합니다. 라이언 레이놀즈라는 요즘 할리우드에서 뜨는 이 주연배우의 연기력 역시 더 문에서 혼자 여러 클론들을 연기한 샘 락웰만큼이나 인상적이고요. 참고로 샘 락웰은 아이언맨2에서 경쟁회사 CEO로 나왔던 배우랍니다.
그러나 베리드는 더 문보다 더 극악한 조건을 추가한 경우지요. 관 속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휴대전화와 손전등 등의 소품들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가야 하니까요. 그런데 휴대전화를 통한 대화와 관 속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들로만 이뤄져 있으면서도 이 영화는 시종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늦출 겨를을 주지 않는 미덕을 갖고 있더군요. 지루함 없이 보실 수 있다는 것만은 장담합니다.
하지만 관 속의 폐소 공포를 느낄 수 있다는 식의 감상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주인공 콘로이에게 전혀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요. 전후좌우에서 콘로이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비춰주는 카메라 덕분에 다양한 방향에서 관 속의 모습을 지켜보는 이점은 있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콘로이의 상황을 공감하지는 못하고 그저 극장에 앉아 그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자국 군대의 공격을 일상다반사처럼 지켜보고, 미국이 치르는 전쟁들을 전 세계인들이 CNN 등을 통해 지켜보는 것처럼요. 안전한 곳에서 전쟁의 스펙터클을 보는 것이 어느새 우리에게 전쟁을 익숙한 것으로 만들었고, 그 희생자들 역시 몇 명 사망, 몇 명 부상, 몇 명 납치 등의 숫자로만 존재하는 이들이 만든 것이 아닐까 싶어요.
가장 두려운 것은 이명박 정부의 무뇌아 같은 대북정책과 북의 연평도 포격 등 강경대응으로 한반도의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만성화되면서 국지전이 빈발하게 되면 바로 경기도에서, 강원도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마찬가지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베리드는 아이디어면에서, 재미면에서 볼 만한 작품이지만, 현재 한반도 상황을 생각하면 편한 맘으로 보기는 힘든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