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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기사 2010.5.~

인도적 지원품, 北에 못 가고 먼지만 쌓인다 2010.7.3.

ㆍ인천항 물류창고 가보니
ㆍ생필·의약품 컨테이너 수개월째 창고서 낮잠… 정부는 반출승인 ‘미적’

대형 컨테이너 수백개가 수북이 쌓여 있는 인천항의 한 물류업체 창고는 평일 한낮인데도 한적했다. 트럭들이 이따금 텅 빈 채로 창고를 빠져나갔고 인부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 단체들이 밀가루·설탕·의약품 등을 선적하기 전에 쌓아놓는 물류창고는 ‘오늘도 개점휴업’ 중이었다.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대북지원 단체들이 확보된 생필품, 의약품 등 물건을 보내지 못해 몸살을 앓고 있다. 사진은 2일 인천항의 한 물류창고에 인도적 대북지원물품이 그대로 쌓여 있는 모습. 인천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지난해만 해도 트럭들이 정신없이 드나들며 바빴는데 지금은 들어오는 짐도, 나가는 짐도 없어요.” 

2일 찾은 물류창고의 현장 관계자는 대북 지원물품이 수북이 쌓여 있는 컨테이너 문을 열며 한숨부터 쉬었다. 그는 “정부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마저 끊으면서 이곳에서 일하던 트럭 기사와 인부들도 다 일자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현장 관계자가 열어 보여준 6m 길이 컨테이너 두 개에는 북한 어린이들이 먹을 빵을 만드는 데 쓰일 설탕과 콩식용유가 가득했다. 컨테이너 하나엔 20~25t의 짐이 실렸다. 그 옆 컨테이너에는 북한 병원에 보낼 결핵약이 차 있었다. 세계결핵제로운동본부가 준비한 결핵약은 지난해 11월 이 창고에 들어왔지만 정부의 반출 승인이 나지 않아 8개월째 묶여 있는 상태다. 

한 대북 지원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북측이 약품을 분리해 다른 데 쓸지도 모른다고 의심해 결핵약으로만 쓸 수 있도록 제조한 것인데도 승인을 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을 오가던 컨테이너 150여개는 창고 한쪽에 아예 텅 빈 채 쌓여 있었다. 몇 달 전까지 대북 지원물품으로 가득했던 천막창고에도 반출 승인을 받지 못한 몇몇 물품만 먼지가 뽀얗게 덮인 채 쌓여 있었다. 오는 10월이면 유효기간이 끝나는 의료용 수액, 북한 병원의 전력을 돌리기 위한 배전반, 비닐하우스 수리용 비닐이 보였다. 물류창고 관계자는 “영·유아들과 관련이 적은 이 물품들은 지원단체들이 아예 반출 승인이 날 거라는 기대조차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천안함 침몰사고 후 정부가 대북 제재를 강화하면서 대북 지원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지난 5월24일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담화에서 ‘인도적 지원은 계속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후 통일부가 반출 승인을 낸 물품건수는 밀가루·콩두유가루·설탕 등 8건에 불과하다. 70~80개에 달하는 단체들마다 매달 적게는 1~2건에서 많게는 7~10건씩 반출 승인 요청을 쏟아내는 것에 견주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다. 

통일부의 반출 승인에 일관성이 없는 것도 문제다. 한 대북 지원단체가 신청한 밀가루와 설탕은 승인이 난 반면 다른 단체가 영·유아 지원을 위해 신청한 콩식용유 등 빵 재료는 승인이 나지 않았다. 

지원단체들이 입는 피해도 커지고 있다. 한 대북 지원단체는 북한에 보낼 밀가루 20여t을 구입해 창고에 보관하다 반품하는 바람에 보관료와 구입비 일부를 손해봤다. 시민들이 애써 모은 소중한 돈이 날아간 셈이다. 다른 지원단체는 북으로 보내려던 6억원어치 농사장비의 반출 승인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외국으로 보낼 곳을 찾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대북 강경책과 달리 시민들의 북한동포 돕기 모금은 더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지난 1월부터 북한 취약계층에 빵과 생필품 등을 보내는 ‘밥이 희망이다’ 사업은 처음 5개 유치원에 물품을 지원했지만 모금액이 늘어나 이달 초엔 16개 유치원·보육원에 빵과 콩두유가루 등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강영식 사무총장은 “정치적·군사적으로 경색된 것과 별개로 인도적 지원은 계속해야 한다”며 “굶어 죽어가는 사람은 일단 살려놓고 봐야 한다는 우리 민족의 정서처럼 많은 국민들이 대북 인도적 지원에 동참해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