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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재개발기사 2007~2010

뉴타운은 허울, 서민만 쫓겨나…원주민 재정착률 불과 17% 2008.4.28.

뉴타운은 허울, 서민만 쫓겨나…원주민 재정착률 불과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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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서울 성북구 장위시장 곳곳 ‘반대’ 플래카드
ㆍ25만7천여명이 외지로…영세 상인들 사실상 생계권 박탈

서울 구도심 재개발로 더 나은 삶을 약속한 뉴타운이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28일 서울 성북구 장위 뉴타운 지구에 포함된 장위시장은 뉴타운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곳곳에 내걸린 ‘뉴타운 반대’ 플래카드가 상징하듯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시장 한복판에서 6년째 두부가게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온 남재호씨(53)는 대뜸 “아들 둘을 대학까지 보내고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졌던 두부가게에서 아무 대책 없이 쫓겨날 판”이라며 답답해했다. 남씨처럼 임대를 해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영세 상인들은 이번 뉴타운 개발로 최근 3년간의 평균 영업이익 기준으로 3개월치의 영업손실만 보상받고 영업권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 관련기사 3면

남씨는 “보증금 5000만원과 석달치 수입으로 어디 가서 새로 장사를 시작할 수 있겠냐”며 “애들 등록금도 내야 하고 가족들 먹고 살 걱정을 하면 하루하루가 두렵다”고 말했다. 남씨처럼 월세 보증금이라도 있는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 남씨는 “좌판에서 야채를 파는 할머니들은 시장을 떠나면 먹고 살 길이 없다”고 전했다.

뉴타운이 풍부한 기반 시설과 쾌적한 주거환경을 안겨다 줄 것이라는 당초 목표는 일부 재정여건이 넉넉한 사람에게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소규모 주택소유자·세입자·상인 등은 그들의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른 뉴타운에서 살 길을 찾지 못한 채 삶의 근거지를 빼앗기고 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장영희 연구위원의 조사에 따르면 길음 뉴타운에 거주하는 조합원과 세입자들 중 뉴타운에 다시 살게 된 경우는 17.1%에 불과했다. 뉴타운 사업으로 2010년까지 서울시내에서 10만가구의 주택이 철거될 예정인데, 길음 뉴타운 재정착률을 이에 적용하면 이 중 8만여가구(가구당 가구원수 평균 3.1명) 25만7000여명은 쫓겨나게 되는 셈이다.

동작구 흑석동 뉴타운 지구에서 만난 김모씨(38)도 “뉴타운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말했다. 김씨 는 전세금 9000만원으로 76㎡(23평)짜리 단독주택에서 네 식구가 살고 있었지만 뉴타운 지정 후 임대주택 입주권과 주거대책비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했다. 그는 “임대주택에 다시 살려고 해도 40㎡도 안돼 네 식구가 살기에는 턱없이 비좁다”며 주거대책비 800여만원만 받고 동네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김씨는 지난 총선 당시 국회의원 후보들이 뉴타운을 공약으로 내건 것을 보고 더 낙담했다. 그는 흑석동을 떠나 사당동으로 이사를 갈 계획이었지만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이 ‘사당동 뉴타운 추가 지정’을 내건 이후 사당동 일대 전셋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선뜻 이사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정치인들이 서민들 속사정은 알지도 못하고 앞다퉈 서울 전역에 뉴타운을 지정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돈 없는 서민들은 이제 서울 밖으로 나가라는 얘기밖에 안된다”고 주장했다.

뉴타운 개발 때문에 서울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는 것은 세입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흑석3구역에 112㎡(34평)짜리 집을 가진 정모씨(62)는 “집 주인 중의 3분의 2 이상이 집을 팔고 이사를 갔다”며 “작은 평수에서 살던 사람들은 전부 떠났다”고 말했다. 가옥주들이 이사를 가게 되는 것은 턱없이 많은 ‘추가 부담금’ 때문이다.

서울에서 그나마 서민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었던 강북의 서민 밀집지역. 이곳이 지금 ‘뉴타운’으로 포장되면서 서민들의 삶이 뿌리째 내몰리고 있다. 

<김기범기자 holjja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