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성관계 거부하자 수면제 먹이고 구타
ㆍ12세 예멘 소녀 살리, 이혼소송 승리
예멘의 사나 구시가지에서 사는 12세 소녀 살리가 25세의 사촌 나빌과 결혼한 것은 2년전. 아직 어린이였던 살리가 강제로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예멘 법에 결혼이 가능한 최소 연령이 없기 때문이다.
살리는 나빌이 성관계를 강요한 첫 밤을 기억한다. 살리는 “처음에 나는 안전하다고 느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몰랐다는 뜻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겠는가. 나는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울면서 소리쳤고, 내 자신이 싫어졌다”고 말했다.
어느 저녁 몸이 아팠던 살리가 나빌과 잠자는 것을 거부하자 그녀의 숙모는 그녀를 침대에 묶기도 했다. 결국 살리의 부모가 불려왔다. 나빌은 살리와 결혼하기 위해 살리의 아버지에게 1000달러를 지불했다. 살리가 나빌과 사는 것을 거부한다면 나빌은 그의 지참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살리의 아버지는 그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사나 구시가지의 시장에서 칠리를 팔아 하루 2달러에 채 못 미치는 돈을 버는 살리의 아버지는 지참금으로 받은 돈을 이미 빚을 갚는 데 전부 써버렸다.
살리의 아버지는 성관계를 거부하는 딸에게 수면제를 넣은 차를 마시게 했다. 한알로 충분치 않자 두알을 먹였다. 살리는 “내가 마시기를 거부하자 아버지는 나를 때렸고, 나는 점점 어지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검은 니캅을 쓴 살리의 어머니는 “나는 딸에게 성관계에 대해서 전혀 말해주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느낀다”며 “내 동생이 샐리를 딸처럼 보살펴 줄 것이라고 믿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알 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살리의 이야기는 최근 사나의 한 언론에서 중요 기사로 다뤄졌고 여성의 조혼 문제는 예멘 사회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결국 살리는 최근 이혼 소송에서 승소했다.
살리를 비롯해 여러 어린이들의 이혼소송을 맡았던 샤다 나세르 변호사는 “나는 이것이 결혼이 아니라 강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빌에게 돌려줘야 하는 지참금 1000달러 중 700달러는 한 미국계 터키인이, 300달러는 또 다른 예멘 여성이 기부했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을 때 검은 니캅 속에서 살리의 눈은 웃고 있었다. 살리는 재판소를 나서며 “나는 오늘 아침 만해도 내 머리 위에 검은 구름이 끼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자유를 느낀다”고 감격해했다.
하지만 예멘의 어린 신부들이 모두 살리처럼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살리 이전에 처음으로 이혼 소송에서 승소한 소녀는 9세 때 30세인 남편과 결혼한 노주드 알리 알 하달이다. 남편에게 맞고, 강간당했던 그녀는 택시를 타고 법정으로 도망쳤고, 변호사를 찾아 소송을 걸었다. 그녀는 예멘에서 이혼에 성공한 첫 번째 어린이 신부가 되었다.
예멘에서는 여전히 수백만 명의 여자 어린이들이 조혼 관습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국제여성연구센터(ICRW)에 따르면 예멘의 여성 중 거의 절반가량이 18세 이전에 결혼하고 있다. 유엔 어린이헌장은 결혼이 가능한 최소연령을 18세로 정하고 있고, 예멘은 이 헌장의 조인국 중 하나이다.
또 사나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예멘의 일부 지역들에서는 15세 이전에 모든 여성의 절반이 결혼을 하고 있다. 예멘대학연합의 와파 알리는 “예멘 여성들이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어린이 결혼이다”라며 “조혼은 소녀들에게서 평범한 유년기와 교육의 권리를 강탈한다”고 말했다.
조혼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많다. 지난 4월 여성권리그룹은 20세인 남성과 12세에 결혼한 엘함 슈이가 결혼한 지 3일 만에 죽었다고 발표했다. 아랍자매들포럼의 대변인 마제드 알 마드하지는 “그는 성관계로 인한 자궁 파열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또 지난 9월 12세인 파지야 압둘라 유세프는 아이를 낳다 출혈로 사망했다. 의사는 “치료를 받기에 그의 몸은 너무 작았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사르와 엘라비 박사는 “소녀들은 몸이 완전히 자라기 전에 아이를 가지도록 강요당한다”며 “많은 소녀들이 유산을 경험하며, 강요된 성관계로 인한 트라우마로 인해 합병증을 앓게 된다”고 말했다.
1990년 예멘이 통일될 때까지 예멘 법은 결혼이 가능한 최소 연령을 17세로 정하고 있었지만, 통일 당시 최소 연령은 15세로 줄었다. 그리고 9년 후인 1999년에는 민법 개정을 통해 최소연령 자체가 사라졌다.
다시 최소 연령을 정하는 투표를 실시하려 했으나 이슬람법령위원회는 이를 거절했다. 최소 연령 제정에 반대하는 종교 지도자인 모아메드 알 하즈미는 “서양에서 18살부터 어른으로 보는 것과 달리 우리는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어른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위성방송으로 인해 젊은이들은 성적으로 흥분해 있다.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섹스를 하는 것은 간통이고 이는 이슬람에서는 금지돼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결혼을 하도록 허가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ㆍ12세 예멘 소녀 살리, 이혼소송 승리
예멘의 사나 구시가지에서 사는 12세 소녀 살리가 25세의 사촌 나빌과 결혼한 것은 2년전. 아직 어린이였던 살리가 강제로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예멘 법에 결혼이 가능한 최소 연령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저녁 몸이 아팠던 살리가 나빌과 잠자는 것을 거부하자 그녀의 숙모는 그녀를 침대에 묶기도 했다. 결국 살리의 부모가 불려왔다. 나빌은 살리와 결혼하기 위해 살리의 아버지에게 1000달러를 지불했다. 살리가 나빌과 사는 것을 거부한다면 나빌은 그의 지참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살리의 아버지는 그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사나 구시가지의 시장에서 칠리를 팔아 하루 2달러에 채 못 미치는 돈을 버는 살리의 아버지는 지참금으로 받은 돈을 이미 빚을 갚는 데 전부 써버렸다.
살리의 아버지는 성관계를 거부하는 딸에게 수면제를 넣은 차를 마시게 했다. 한알로 충분치 않자 두알을 먹였다. 살리는 “내가 마시기를 거부하자 아버지는 나를 때렸고, 나는 점점 어지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검은 니캅을 쓴 살리의 어머니는 “나는 딸에게 성관계에 대해서 전혀 말해주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느낀다”며 “내 동생이 샐리를 딸처럼 보살펴 줄 것이라고 믿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알 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살리의 이야기는 최근 사나의 한 언론에서 중요 기사로 다뤄졌고 여성의 조혼 문제는 예멘 사회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결국 살리는 최근 이혼 소송에서 승소했다.
살리를 비롯해 여러 어린이들의 이혼소송을 맡았던 샤다 나세르 변호사는 “나는 이것이 결혼이 아니라 강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빌에게 돌려줘야 하는 지참금 1000달러 중 700달러는 한 미국계 터키인이, 300달러는 또 다른 예멘 여성이 기부했다.
하지만 예멘의 어린 신부들이 모두 살리처럼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살리 이전에 처음으로 이혼 소송에서 승소한 소녀는 9세 때 30세인 남편과 결혼한 노주드 알리 알 하달이다. 남편에게 맞고, 강간당했던 그녀는 택시를 타고 법정으로 도망쳤고, 변호사를 찾아 소송을 걸었다. 그녀는 예멘에서 이혼에 성공한 첫 번째 어린이 신부가 되었다.
예멘에서는 여전히 수백만 명의 여자 어린이들이 조혼 관습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국제여성연구센터(ICRW)에 따르면 예멘의 여성 중 거의 절반가량이 18세 이전에 결혼하고 있다. 유엔 어린이헌장은 결혼이 가능한 최소연령을 18세로 정하고 있고, 예멘은 이 헌장의 조인국 중 하나이다.
또 사나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예멘의 일부 지역들에서는 15세 이전에 모든 여성의 절반이 결혼을 하고 있다. 예멘대학연합의 와파 알리는 “예멘 여성들이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어린이 결혼이다”라며 “조혼은 소녀들에게서 평범한 유년기와 교육의 권리를 강탈한다”고 말했다.
조혼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많다. 지난 4월 여성권리그룹은 20세인 남성과 12세에 결혼한 엘함 슈이가 결혼한 지 3일 만에 죽었다고 발표했다. 아랍자매들포럼의 대변인 마제드 알 마드하지는 “그는 성관계로 인한 자궁 파열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또 지난 9월 12세인 파지야 압둘라 유세프는 아이를 낳다 출혈로 사망했다. 의사는 “치료를 받기에 그의 몸은 너무 작았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사르와 엘라비 박사는 “소녀들은 몸이 완전히 자라기 전에 아이를 가지도록 강요당한다”며 “많은 소녀들이 유산을 경험하며, 강요된 성관계로 인한 트라우마로 인해 합병증을 앓게 된다”고 말했다.
1990년 예멘이 통일될 때까지 예멘 법은 결혼이 가능한 최소 연령을 17세로 정하고 있었지만, 통일 당시 최소 연령은 15세로 줄었다. 그리고 9년 후인 1999년에는 민법 개정을 통해 최소연령 자체가 사라졌다.
다시 최소 연령을 정하는 투표를 실시하려 했으나 이슬람법령위원회는 이를 거절했다. 최소 연령 제정에 반대하는 종교 지도자인 모아메드 알 하즈미는 “서양에서 18살부터 어른으로 보는 것과 달리 우리는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어른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위성방송으로 인해 젊은이들은 성적으로 흥분해 있다.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섹스를 하는 것은 간통이고 이는 이슬람에서는 금지돼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결혼을 하도록 허가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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