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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의 현장 이야기

위기의 길고양이 구조기: 벽을 뚫고 땅을 파고 하수구를 뒤지다

위기의 길고양이 구조기: 벽을 뚫고 땅을 파고 하수구를 뒤지다 

-벽을 뚫고 땅을 파고 하수구를 뒤지는 길고양이 구조의 세계-
이현주, 전진경 동물보호단체 카라 활동가







우리 곁에는 고양이들이 살고 있다. 집에는 반려묘로 살아가는 고양이들이 있고, 거리에는 길고양이들이 있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에서는 ‘길고양이’를 ‘도심지나 주택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하여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고양이로서 개체수 조절을 위해 중성화(中性化)하여 포획장소에 방사(放飼)하는 등의 조치 대상이거나 조치가 된 고양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집고양이와 길고양이의 경계는 모호하다. 버려진 고양이나 외출고양이(집과 거리를 배회하며 사는 집고양이)들이 길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거리의 어린 길고양이들이 구조되어 집고양이로 사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길고양이는 거리에서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심지어 자유로운 삶을 상상하기도 하지만 길고양이의 삶은 실제로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사람의 도움이 없을 때 야생에서의 생존 가능성만을 살펴본다면 개들보다는 고양이가 생존가능성이 더 높은 건 사실이다. 그 결과 실제로 상당수의 고양이들이 길고양이로 거리에서 보호자 없이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고양이들에게도 거리에서의 삶, 특히 도시에서의 삶은 매우 힘들다. 

우선 차량 사고나 직접적인 학대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건설한 ‘도시’라는 삶의 조건 자체가 고양이들에게는 극도로 위험하고 삭막한 공간이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높은 건물이나 계단도 고양이들에게는 무섭고 낯설고 생명을 위협하는 구조물이다. 손바닥만한 공간까지도 시멘트를 발라놓은 도시 공간에서 고양이들이 작은 몸이나마 안전하게 은신할 공간은 거의 없다. 고양이들은 허름한 창고나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기 힘든 건물의 배관 등 구조물, 버려진 집기나 야적물의 틈, 심지어 차량의 엔진룸에 은신할 수밖에 없다. 옛날처럼 따뜻한 부뚜막이나 개인집의 아늑한 지하실, 헛간 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로 살 곳이 없는 고양이들은 그래서 더욱 사람들에 눈에 많이 띄게 되는 경향이 있다. 

살 곳이 없어 배수관에 은신중인 길고양이들. 사람 눈을 피할 수 있고 비교적 따뜻한 곳이지만 상부 배관 틈이 막히면 그대로 갇혀서 죽을 수도 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

고양이가 생존을 위해 보유하게 된 고유의 특질도 도시에서의 고양이의 삶을 위험에 몰아넣는 요인이 된다. 고양이들은 생쥐, 쥐, 땅쥐, 들쥐, 어린 토끼등 작은 설치류를 주로 잡아먹는 사냥꾼이다. 특화된 사냥꾼으로서 길고양이는 유연한 몸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균형감각을 얻었다. 작은 사냥감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집요한 추적을 통해 사냥에 성공한다. 그래서 고양이는 이런 작은 동물이 살 수 있는 곳, 동그란 구멍, 작은 틈, 쥐의 꼬리와 비슷한 모습의 끈, 날아가는 비닐처럼 빠르고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물이나 물체에 무조건 호기심을 느끼고 끌리게 된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 도시에는 고양이들이 호기심을 느끼지만 사실은 생존을 위협하는 덫이 즐비하다. 이곳에는 먹잇감이 아니라 절망과 고립, 고통과 죽음이 있다. 거름망이 없는 하수구 구멍, 환풍기의 배기구, 배수관, 자동차 엔진룸, 빗물받이, 건물의 작은 틈에 빠지고 끼여 수많은 길고양이들이 소리 없이 오랜 고통 속에 죽어간다.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물체에 이끌려 뛰어가다 차량 사고가 나거나 끈이나 비닐봉지 손잡이가 걸려 목이나 몸이 조여 서서히 죽어가기도 한다. 

카라에는 위험에 처한 길고양이들의 구조 요청이 연일 빗발친다. 그런데 길고양이를 구조하는 왕도는 없다. 대개 모든 길고양이들은 그들을 보살펴준 분이 직접 구조할 때 구조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에 어떻게 고양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알려드리고 포획장비를 대여해 드리곤 한다. 바로 그 길고양이의 행동과 습성을 잘 아는 분이 바로 그 고양이를 구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인 경우가 많다. 119 소방관님들이 구조 현장에 와 주시는 경우 큰 힘이 되어 주시지만 이 경우 역시 지역 길고양이 자원봉사자의 고양이에 대한 정보가 더해져야 구조 확률을 높일 수 있다. 

깊은 하수도 배관에 빠진 아기 고양이. 카라 활동가로서도 구할 수 없어서 119 소방관님의 도움을 구하여 결국 구조. 동물보호단체 카라.

질병이 심한 상태로 차량 엔진룸에 숨어들어간 고양이를 구조하기 위해 차량에 어망을 두른 모습. 동물보호단체 카라.

일반적인 고양이 덫으로는 구조가 어려운 길고양이의 구조를 위해 카라에서 고안한 수동 덫. 고양이의 습성을 최대한 고려하여 포획 확률을 높인 장비로 위급한 고양이 구조 성공. 단순해 보이지만 이 덫으로 고난이도의 구조에 여러 차례 성공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

카라의 수동 덫으로 구조한 고양이. 얼굴이 심하게 손상되어 있는 이 고양이는 평소 보살피던 분의 적극적 도움으로 비로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구조되어 정말 다행이다. 동물보호단체 카라.

때로는 특수장비나 전문적인 설비 그리고 건물이나 구조물의 내부 구조를 잘 아는 전문 기술자분들이 구조에 큰 도움을 주시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동물을 연민하여 구조 활동에 적극적으로 내일처럼 참여해 주시는 분들을 종종 만나기도 한다. 

땅 밑 깊숙이 빠져 울고 있는 어미 고양이를 구조하기 위해 배관 설비사님이 작업 계획을 짜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

배관설비사분께서 가져오신 고가의 내시경 장비를 이용해 우수관 깊숙이 빠져 있는 고양이의 존재를 확인하고 우선 생존을 위해 먹이를 투입. 동물보호단체 카라.

건물의 구조를 잘 아는 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다. 환풍구를 통해 건물 내부 공간에 빠진 고양이를 발견하고 기뻐하시는 설비 전문가의 모습. 동물보호단체 카라.

설비전문가가 대리석 구조물을 들어 올리고 발견한 고양이의 모습. 이 고양이를 좁은 틈에서 들어 올리는데는 긴 우산의 손잡이가 이용되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

문제는 심각한 위기상황에서 간절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없이 많은 길고양이들 중에 이렇게 구조되어 도움을 받게 되는 경우는 극소수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전문 인력과 자원과 같은 현실의 한계 때문에 매우 한정된 구조 요청에만 응답이 가능하다. 구조에 나섰으나 실패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러는 동안 손길과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절대 다수의 길고양이들이 숨져 갈 것이다. 때로는 상황에 압도되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도 외롭고 슬프게 죽어가는 데 동물쯤이야...라고 하기엔, 우리 곁에서 고통을 호소해 오는 동물들의 존재는 너무나 실존적이다. 그래서 언제나 가슴이 먹먹하다. 전반적인 동물들의 상황이 나아져, 더 많은 시민들이 동물 보호에 공감해 주시고, 길고양이들의 척박한 삶이 개선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