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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의 현장 이야기

저 푸른 초원을 꿈꾸는 몽골의 들판

몽골의 들판은 5월에야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식목행사를 준비한 (사)푸른아시아 활동가 및 에르덴 하늘마을 주민들. 푸른아시아 제공.


5월. 몽골의 들판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시기다. 3월에 봄이 시작되는 우리나라보다 두어달 늦은 셈이다. 시베리아 아래 위치한 몽골은 10월부터 기온이 뚝 뚝 떨어지기 시작해 11월이면 강추위가 몰아닥친다. 추위는 깊고 오랫동안 계속되어 3~4월이 되어도 땅이 녹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3월이면 나무심기 좋은 철이고 4월초 식목일이 있지만 몽골은 땅이 제대로 풀리는 5월초에 식목일이 있다. 우리나라의 봄소식은 화사한 벚꽃이 피고 노란 개나리가 피면서 전해져오지만 몽골의 봄소식은 마른 땅에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묘목을 심는 것으로 퍼져나간다. 

5월초 식목일에 열리는 ‘그린나담(푸른축제)’ 행사가 바로 봄소식을 알리는 ‘팡파르’다. 나담은 몽골어로 축제를 뜻한다. ‘그린나담’은 식목행사는 환경을 의미하는 ‘녹색(Green)에 축제란 말 ’나담‘을 덧붙인 말이다. 나무심는 일이 몽골에선 축제인 셈이다.

행사 참가자가 사막에 나무를 채워 넣는 퍼포먼스에 메시지를 적고 있다. 푸른아시아 제공.

나무를 곧게 심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한 팀을 이루어 한 사람은 나무를 바로 잡고 다른 한 사람은 흙을 덮어야 한다. 식목행사에 참가한 아이 또한 고사리손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푸른아시아 제공.

관수작업을 하는 참가자들. 물동이를 나르는 일이 보기보다 힘들다. 푸른아시아 제공.

몽골에선 산이 아니라 들판에 나무를 심는다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와 달리 몽골은 국토의 46%가 사막이고 42%가 초지였다. 그러나 초지의 70%가 사막화된 들판이 되었다. 나머지 12%가 산과 도시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의 식목은 산에 나무를 심는 것으로 진행되지만 몽골에서 식목은 주로 사막화된 들판에서 이뤄진다. 황폐화된 초지를 되살리기 위해서 우선 나무를 심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초원이었다고 해서 풀만 심으면 초지가 유지되지 않는다. 나무를 심으면 주변에 자연히 풀이 자란다. 사막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요즘엔 몽골인들도 나무심기의 중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다. 그래서 식목일도 하루만 지정된 것이 아니고 봄과 가을(5월 둘째주 토요일/10월 둘째주 토요일)로 나눠 두 번이나 있다.

수도 울란바타르 인근 에르덴 솜에서도 지난 5월9일 몽골의 식목일을 맞이하여 ‘그린나담’이 열렸다. ‘그린나담’의 주 내용은 식목행사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나무를 심고 물을 주는 것. 과거 ‘저 푸른 초원’을 회복하기 위해 합심하는 날이다. 

이날 ‘그린나담’에는 몽골 최초의 대학생 환경동아리 마이클럽, 에코아시아대학교, 몽골 YMCA 등 청년층들을 중심으로 약 350명이 참가했다. 이번 식목행사는 한국의 NGO (사)푸른아시아가 주관했으며, 행사당일 한국국제협력단(KOICA)와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에서 몽골로 파견된 한국 청년들도 참가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차차르간(몽골에서 생육하는 일명 비타민나무) 나무 3000여 그루를 심었다. 식목행사에 참가한 대학생 뭉흐찡(21)씨는 “직접 나무를 심어보니 숲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았다. 앞으로 시간을 내어 이러한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깊이 200m에서 길어 올린 물을 담아놓은 물웅덩이 주변은 오고가는 물동이들로 연신 바빴다. 나무를 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힘들게 물동이를 나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자연스레 분담이 되어 손발이 척척 맞았다. 

가느다란 묘목을 심지만 구덩이는 깊이 60cm 정도, 폭은 어른 손으로 두 뼘 정도 크게 판다. 최대한 뿌리가 내리기 좋게 부드러운 흙을 넣고 보습제도 넣어준다. 행사장에는 언니를 따라온 어린 꼬마도 고사리손을 보태 눈길을 끌었다. 지방자치단체 및 자연환경녹색개발관광부(이하 자연환경부) 관계자들도 참석하여 식목을 장려하고 청년들의 참여를 격려했다. 

행사를 준비한 담딘 (사)푸른아시아 고문은 “모든 참가자들에게 감사드린다. 나무는 심는 것뿐만 아니라 심은 후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지속적인 관심과 사후관리를 강조했다. 냠다와 자연환경부 국장은 “올해 몽골에서 ‘100만 그루 나무심기운동’을 펼칠 만큼 몽골의 사막화가 심해지고 있다. 전 국민적인 실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함께 나무를 심는 한국인들에게도 감사드린다”며 인사를 잊지 않았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는 (사)푸른아시아 몽골지부 이신철 지부장과 한승재 사업부장은 몽골에서의 사막화방지 공로를 인정받아 몽골정부로부터 표창장과 훈장을 각각 받았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사)푸른아시아는 사막화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몽골과 미얀마 등지에서 조림과 지역발전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몽골에서 사막화방지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부터 16년째다. 몽골은 현재 전 국토의 90%가 사막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10년 전 5,000여개였던 몽골의 호수는 현재 1,200여개로 급감했고, 약 880개의 강과 2,100개의 시내가 말라 사라졌다.



10월에 마무리되는 몽골의 봄철 식목준비



일정한 간격으로 구덩이를 파놓은 조림장 예정지의 모습. 이듬해 봄 묘목을 심기 위해 미리 구덩이파는 작업을 해놓는다. 푸른아시아 제공.

몽골의 맨땅은 흙이라고 해도 딱딱해서 삽으로는 팔 수가 없다. 곡갱이로 흙을 깨부순 다음 삽으로 흙을 파내는 작업을 2인1조로 한다. 푸른아시아 제공.

남자 직원이 창처럼 생긴 ‘럼’으로 흙을 부수면 여자 직원이 삽으로 흙을 파낸다. 구덩이 하나를 파더라도 이렇게 2인1조로 작업을 한다. 푸른아시아 제공.

구덩이파기 작업을 하는 날엔 마을 직원들이 모여 공동으로 작업을 한다. 푸른아시아 제공.

물이 귀한 몽골에선 조림장의 묘목에 물을 주기 위해 우물을 파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물 옆엔 작은 규모의 저수지를 만들어 놓는데 보통 크기가 가로 3m 세로 20m 정도 된다. 여기에 비닐을 깔고 우물에서 길어올린 물을 채워놓았다가 물동이로 물을 길어 나무에 주는 작업을 반복한다. 푸른아시아 제공.



이같은 봄철 식목행사 준비는 곳에 따라 전년도 늦가을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겨울이 시작되면 3월까지도 땅이 녹지 않기 때문에 땅이 얼기 전 미리 식목준비를 하는 것이다. 

2014년 가을 찾아간 곳은 몽골의 남부 모래먼지 폭풍지역이면서 사막화지역인 돈드고비였는데 여기선 10월말인데 마지막 구덩이파기와 조림장 철조망설치작업이 한창이었다. 가을이라고 하지만 돈드고비의 땅은 아주 메마르고 단단한 맨땅이었다. 마을주민들이자 조림장의 직원이기도 한 ‘주민직원’들은 ‘럼’이라고 하는 마치 창처럼 생긴 걸로 땅을 찍어서 흙을 쪼갠 다음 삽으로 퍼내며 구덩이를 만드는데 뿌리가 정착할 수 있도록 어른 무릎 깊이 정도 파야 한다고 했다. 주로 남자들이 땅을 찍어 흙을 부드럽게 하면 여자들이 흙을 퍼내는 작업을 하는데 어떤 때는 여자들도 힘든 일을 곧잘 한다. 

구덩이 옆에는 가로 3m 세로 20m 정도의 큰 웅덩이를 파놓았는데 이 웅덩이의 용도는 나무에 줄 물을 가둬두는 것이라고 한다. 이듬해 봄 여기에 물을 채워 물웅덩이로 사용한다. 조림장의 직원들은 또 새로운 조림장을 만들기 위해 인근 지역으로 옮겨 말뚝을 박고 철조망을 치는 작업을 했다. 어린 묘목을 심어놓으면 염소나 양이 몰려와 작은 가지를 마구 먹어치우기 때문에 철조망을 쳐서 묘목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추위와 길고 긴 겨울은 우리의 상식을 무너뜨렸다. 봄이 되면 시작할 나무심기 준비를 겨울이 오기 전 미리 해놓은 것이 무척 신기하고 새롭게 보였다. 한편으로는 자연에 순응하며 새로운 방법을 찾는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