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경단체,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의 현장 이야기

산양이 지나간 자리, 케이블카는 답이 아니다


              3월13일, 무인카메라에 잡힌 산양의 모습. 녹색연합 제공.



무인카메라에 잡힌 야생동물

설악산의 늦봄은 아직 눈이 듬성듬성 남아 있다. 산 곳곳에서 꽃들이 깨어나는 시절, 봄눈은 힘이 없다. 오색에서 끝청봉까지 인적없는 길을 오른다. 노선을 따라 설치한 무인카메라를 확인한다. 눈이 두텁게 쌓여있던 겨울과는 달리 산을 오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노선 주변에는 멸종위기야생동물1급, 천연기념물217호인, 산양의 배설물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금방 싸고 간 듯한 반짝이는 똥도 보이고, 시간이 지난듯 갈색으로 변한 똥도 발견된다.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 산양의 배설물. 녹색연합 제공.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 담비의 배설물. 녹색연합 제공.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 하늘다람쥐의 배설물. 녹색연합 제공.



산양만이 아니다. 멸종위기야생동물2급인 담비와 하늘다람쥐도 흔적을 남겼다. 나무에 매달린 무인카메라는 사람 앞에 드러내지 않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잡아낸다. 멧돼지, 노루, 그리고 산양까지...먹이를 찾는 모습, 어미와 함께 걷는 어린 산양의 모습…. 이곳은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먹고, 자고, 싸며 살아가는, 그들의 터전이다.


3월28일, 야간에 촬영된 산양의 모습. 녹색연합 제공.


여기는 산양의 이동통로일뿐?

이들의 모습은 반가우면서도 안타깝다. 바로 이 길이 양양군이 계획 중인 오색케이블카 예정노선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9일 양양군수가 강원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2012년과 2013년 두차례에 걸친 부결 이후 3번째 케이블카 사업 신청이다. 양양군의 주장은 오색-끝청 구간이 환경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환경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멸종위기종의 주서식지에는 케이블카 건설을 하지 못한다. 양양군의 사업 신청서는 “멸종위기종인 산양의 출연빈도가 아주 낮아 주요서식지가 아닌 이동경로로 분석”된다고 적고 있다. 현지 조사 결과 6개월동안 4회 조사해서, 무인카메라 1회, 배설물 2곳, 육안으로 확인 1회 조사되었다는 것이다. 양양군은 이 조사결과를 근거로 케이블카 설치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양양군이 4월29일 제출한 오색케이블카 사업 개요 (출처: 양양군)



사라진 카메라

그런데, 양양군은 도대체 어떻게 조사를 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녹색연합이 올해 초부터 4개월 정도 조사한 결과는 이와 너무 다르다. 한 달에 한 번 가량 케이블카 노선에 설치한 무인카메라를 확인할 때마다 산양의 모습이 나타났다. 특히 4월 중순 조사 당시에는 9개의 카메라 가운데 4곳에서 산양이 촬영되었다. 실제 산양촬영지점은 무인 카메라 설치 지점의 반이 넘어간다. 2개의 카메라는 분실되었기 때문이다(카메라가 사라진 주변은 케이블카 지주 건설 예정지로 양양군이 표시해 놓은 곳이다. 탐방로조차 없는 곳에서 무인카메라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누가 무슨 이유로 가져간 것일까? 이것 또한 큰 의문이다.). 산양 배설물이나 발자국 흔적은 지천에 널려있다.

위험에 처한 생명들

양양군 주장처럼 산양의 주서식지와 이동통로를 구분하는 것은 그 자체가 궤변에 가깝다. 학술적으로도 타당하지 않은 기준이다. 멸종위기종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라면 그 자체가 보호해야 마땅하다. 사실 마리 수가 무엇이 중요한가. 설악산 전체가 산양이 숨쉬며 살고 있는 곳이거늘….

케이블카가 위협하는 것은 산양만이 아니다. 케이블카 예정노선은 높은 설악산 능선의 거센 바람이 부는 곳이다. 실제 중청대피소의 풍속은 초당 19m를 나타내기도 한다. 사람 몸이 휘청거릴 정도다. 케이블카 노선을 따라 나무를 뒤흔드는 거센 바람 소리가 들린다. 안전의 문제가 대두되는 까닭이다.

중청대피소의 풍속계가 초속 19.6m를 가리킬 정도로 바람이 강하다. 녹색연합 제공.



산으로 향하는 욕망의 삽질

케이블카를 위해서라면 야생생물도, 안전도 함부로 무시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생명보다 돈벌이를 우선시하는 잘못된 욕망의 소산이다. 이런 욕망은 전국의 산을 들쑤셔 놓고 있다. 설악산을 비롯해서 신불산, 가지산, 지리산 등등.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자연공원(국립공원, 도립공원, 군립공원 등)에 우후죽순으로 케이블카 계획이 들어서고 있다. 그 배후에는 박근혜 정부의 산지관광특구를 비롯한 규제완화 정책이 있다.

상생의 길. 케이블카는 답이 아니다.

이 문제점을 짚기 위한 토론회가 5월 6일 국회에서 열렸다. 자연공원케이블카반대범국민대책위원회와 우원식 의원, 정진후 의원 등이 함께 자리를 마련했다. 토론회의 많은 참가자들이 자연공원을 비롯한 보호구역, 특별히 공원자연보존지구 내에 관광시설인 케이블카를 허용하는 것 자체를 문제로 지적했다. 이번 설악산 케이블카 예정노선도 전체 3.4km 가운데 2.9km가 자연보존지구를 지나간다.

공원자연보존지구는 자연공원 중에서도 특별히 생태계 보전을 위해 지정한 지구를 가리킨다. 우리나라 국토대비 국립공원의 면적은 불과 7%에 불과하다. 국립공원 중에서도 “공원자연보존지구”는 국립공원 면적의 23%, 국토면적 대비 1%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설악산은 전체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의 1/5이나 차지한다. 설악산이 특별한 이유다.

국립공원 관련 통계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설악산 케이블카의 심사결과를 주시하고 있었다. 설악산이 뚫리면 나머지 국립공원에 줄줄이 케이블카가 들어설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케이블카는 그저 몇몇 건설업자의 배를 불릴 뿐, 지역의 진정한 발전대안이 될 수 없다. 케이블카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제는 산양과 지역주민이, 자연과 마을이, 미래세대와 현재세대가, 함께 살아갈 상생의 길을 찾을 때가 온 것 같다. 같이 살기 위한 길을. 그 첫단추는 설악산의 케이블카를 막는 것이다. 환경훼손과 사회적 갈등만을 불러일으키는 케이블카는 결코 답이 아니다.

설악산과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운동이 함께 만났다. 녹색연합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