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재단의 환경디플로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10월 29일부터 열흘 동안 영국과 독일 생태도시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아래 링크의 기사를 보면 아시겠지만 영국에서도 인상깊은 부분들이 있었고, 배운 것도 많지만 기사 내용에는 독일에서 본 내용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갔네요. 그만큼 실제로 변화한 것들과 변화하려고 애쓰는 모습들이 독일에 많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원전이 없이도 에너지 수급이 가능한 세상을 실제로 만들어가고 있는 독일의 모습을 탐방기를 통해 소개해 드립니다.
낭비 줄이고 재생에너지 늘리니 원전 없이도 ‘100% 자급자족’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1102230455&code=610103
생태도시는 무엇이고, 생태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거대도시인 서울에서, 지나치게 에너지 소비가 높은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이들이 많은 한국에서 생태도시를 만들고,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요. 생태도시는 이미 정부, 지자체가 이미 숱하게 울궈먹은 흘러간 유행가이자 구호에 불과한 개념이 아닐까요.
이런 의문들에 대해 언론재단의 생태도시를 주제로 한 환경디플로마는 모든 물음에 대해 명쾌한 답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8차례의 국내 강의와 8박 10일 간의 해외 출장 동안 한 가지 답만은 얻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하기는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시도들이 모일 때 변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돌아와서 바로 마감한 기사에도 위에 적은 대로의 깨달음을 담았습니다. 기사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탄소를 내뿜는 화력발전도, 위험한 원자력발전도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나 지난달 29일부터 열흘간 살펴본 독일과 영국의 생태도시·생태주거단지는 ‘SF영화 속 꿈같은 이야기’가 아직 멀지만 가까이 올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에너지 효율화와 재생에너지 사용, 누구나 아는 두 갈래의 답을 통해서다.
특히 마음으로 다가왔던 현장은 함부르크에 많았습니다. 11월 4일 오후에 찾았던 독일 함부르크 한자주택조합의 크론호스트 단지도 그 중 한곳입니다. 한자주택조합에서 에너지 일을 맡고 있는 마리온 에벨과의 대화에서보다는 직접 들어갔던 하이디 레더 씨의 집은 독일의 에너지 정책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습니다.
“단열재만 추가 설치해도 건물 구조에 따라 에너지 효율이 50%가량 높아지는 곳이 있다”는 담당자의 설명보다는 직접 들어가 보니 난방 없이도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이 감돌았던 것이 인상에 깊이 남았습니다.
당일이 비가 내리는 데다 찬 바람이 불면서 초겨울 날씨였던 탓에 바깥 기온이 7도까지 내려간 상태였지만 실내가 21도인 것을 온도계를 통해 확인한 것은 어쩌면 행운이었습니다. 레더 씨가 주방에서 설명할 때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니었다면 기사에 포함되었어야할 중요한 수치들을 놓쳤을 수도 있었습니다.
레더 씨 집의 사례는 실제 기사를 쓰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자주택조합 담당자로부터는 “14㎝ 두께의 단열재가 에너지 효율을 30% 정도 올렸고, 독일의 에너지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이 아파트의 월 난방비는 2008년 1㎡당 1.49유로(2127.3원)에서 현재 1.43유로(2041.6원)로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조합의 다른 임대주택들도 순차적으로 단열재를 설치하는 등 단열재 설치라는 기본 조치만으로도 전력 소비와 탄소 배출량을 격감시키고 있다는 의미있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담당자의 얘기만으로는 기사를 채우는 것조차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주택단지를 함께 둘러본 브란덴부르크 공대 환경계획연구소 전임강사인 문기덕 박사에게 미리 부탁해 실제 가정을 방문했던 것이 다행인 셈입니다.
특히 독일에서 문 박사께서 코디를 맡았던 것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실제 한자주택조합에서의 경우 문 박사는 “독일에서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단열재 설치 작업이 보편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공공건물과 임대주택은 우선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등의 같은 도움말을 해주었는데 이 내용은 기사에도 그대로 전문가의 해설로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함부르크가 해외출장지로 선택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 프라이부르크를 골랐다면 그곳 역시 베드제드처럼 식상한 느낌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함부르크는 아직까지는 국내 언론에 있어 새로운 곳인 탓입니다.
독일에서 찾아갔던 여러 현장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에너지벙커와 에너지힐입니다. 올해 함부르크 빌헬름스부르크 미테 지역에 완공된 에너지벙커의 경우 2차 세계대전 때 방공요새와 3만여명이 대피할 수 있는 방공호로 쓰였던 것을 재생에너지 생산시설로 바꾼 점이 가장 인상깊은 점이었습니다.
현지 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1947년 영국군이 내부 시설을 폭파한 뒤로 버려져 있었던 이 시설에 함부르크시 에너지청은 태양광·태양열·바이오메탄가스 발전시설을 설치하고, 인근 공단의 열회수 시스템에서 열을 모아 200만ℓ 규모의 물을 데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8층 높이 건물인 에너지벙커가 생산하는 열은 주변의 3000가구에는 난방을, 1000가구에는 전기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버려진 시설을 다시 살려서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것 자체가 함부르크 어린이들은 물론 시민들에게는 살아있는 역사교육 현장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국에서도 정부와 지자체, 시민단체 등이 재생에너지 생산시설을 조성하기 위해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기보다는 상징성, 역사성이 담긴 공간들을 활용하는 방안을 적용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한 사항일 것입니다.
에너지벙커의 모습. 함부르크 국제건축박람회유한회사 제공
에너지힐의 경우 극도로 오염되어 있던 장소를 재생에너지 기지로 바꾼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1947년쯤 불법적인 쓰레기장이 돼 1979년까지 700만t의 쓰레기가 쌓인 곳은 현재 풍력발전기 3대가 돌아가는 공원으로 바뀐 상태였습니다. 맹독성 다이옥신까지 검출되었던 이 곳은 정화작업을 거친 후 풍력발전기와 태양광발전기로 연간 1200만kwh의 전력을 생산하는 장소로 탈바꿈해 있었습니다.
에너지힐의 모습. 함부르크 국제건축박람회유한회사 제공
독일 출장은 환경부에 출입하기 전 국제부에서 썼던 원전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기사들이 옳은 내용이었다는 새로운 근거들을 제공받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독일에서 보고 들은 사실들은 국제부에서 썼던 원전은 이미 사양산업이며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이미 원전 발전량을 추월했고, 인류의 미래는 원전에 있지 않다는 내용들의 좋은, 그리고 새로운 근거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직후 벌어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독일은 원전 일부의 가동을 멈추었지만 이런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증가시키기 위한 노력과 전력시장 변화 등을 통해 원전이 필요없는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사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문 박사는 “지난 3일 찾은 에너지힐의 풍력발전기 하나가 멈춰 있었던 이유가 독일의 전력 생산에 여유가 있다는 방증”이라며 “화력발전·원전은 쉽게 멈출 수 없는 탓에 전력 수요보다 발전량이 많아질 경우 풍력발전기를 멈추곤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11월 5일 함부르크에서 만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스벤 테스케 재생에너지국장의 말도 이런 생각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그는 “이미 재생에너지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예측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재생에너지로 모든 에너지를 충당하는 세상이 SF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린피스 스벤 테스케 재생에너지국장. 최근 방한해 그린피스 한국지부와 함께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가능성에 대한 브리핑을 했습니다.
전력시장 변화와 관해서는 돌아온 후 추가 취재가 필요했습니다. 현장에서 문 박사에게 들은 내용을 한국에 돌아온 후 이메일, 국제전화를 통해 문의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베를린자유대 환경정책연구센터 미란다 슈로이어는 독일 정부의 탈핵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전력시장 자율화를 꼽았다. 전력 사용자가 생산자를 직접 골라 요금을 낼 수 있게되자 재생에너지 전기를 고르는 사람이 늘었고, 그후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다시 늘면서 탈핵이 가능하다는 공감대도 넓어졌다는 것이다.”
그린피스가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원전은 설 자리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제드의 경우는 생활방식을 바꾸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탄소와의 전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사례였습니다. 베드제드 방문날 알게 된 열병합발전소가 이미 오래전부터 고장이 나 기존 전력망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소 실망감을 안겨주기는 했지만 현지 안내자의 말처럼 그것이 베드제드를 폄하하거나 실패라고 여기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 런던 ‘베드제드’ 저탄소 주택단지의 모습. 지붕에 달려있는 닭벼슬 모양 굴뚝은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만든 환풍장치입니다. 아래 사진은 영국에 거주하는 이인선 건축가가 베드제드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입니다. 베드제드는 베딩턴 제로 에너지 디벨롭먼트의 약자입니다.
탄소 배출 제로라는 야심찬 계획은 무색해진 셈이지만 베드제드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선례로서도 충분히 의미를 가집니다. 10월 30일 베드제드를 방문했을 당시 만난 한 주민은 “연간 전기·가스 요금을 합해 383파운드(65만원)가량을 내고 있다”며 “보통 다른 가정이 1000~1500파운드(171만~256만원)의 요금을 내는 것보다 70% 이상 절약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추운 날에도 난방을 틀기보다 실내에서 두꺼운 옷을 껴입고 지낸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내용은 베드제드와 같은 저탄소주택이 가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뿐 아니라 하드웨어로서의 저탄소주택에 산다는 것이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바꾸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이런 소프트웨어를 채용하는 삶을 선택했기에 베드제드와 같은 곳에 살면서 다소의 불편함을 견디는 것이 가능해질지도 모릅니다.
베드제드 주민들은 1대의 차를 여러 명이 공유하는 ‘카클럽’,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식생활도 유기농 음식물 위주로 짜는 등 일반적인 현대의 도시인들과는 구별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비록 무탄소의 꿈을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전기 사용과 탄소 배출을 같이 줄이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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