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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국제기사

'블러디 아이보리' 아프리카 코끼리·코뿔소 씨가 마른다

[세계]아프리카 코끼리·코뿔소 씨가 마른다
2012 09/25주간경향 994호
아프리카 전문가들은 이미 ‘블러디 다이아몬드(핏빛 다이아몬드)’에 이어 ‘블러디 아이보리(핏빛 상아)’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의 농구영웅 야오밍(위쪽)이 지난달 16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케냐 야생동물보호국 보관소에서 케냐 공원 관리책임자와 함께 케냐 당국이 압수한 코끼리 상아들을 지켜보고 있다. 야오밍은 코끼리와 코뿔소 밀렵을 줄이기 위한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아프리카를 방문했다. 나이로비/AP연합뉴스 


코끼리, 코뿔소, 사자와 같은 대형 포유류들이 전쟁범죄와 범죄조직의 돈줄이 되면서 멸종위기에 몰리고 있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반군들과 민병대 조직들은 코끼리를 밀렵해 상아를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 오래전부터 상아를 귀중품으로 여겨온 아시아 각국에서의 수요가 워낙 많기 때문에 코끼리들이 이들 반군과 민병대들에게 학살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이 9월 13일 보도했다.

케냐에서는 자연공원 관리인들과 밀렵꾼들 사이에 총격전까지 벌어지고 있다. 9월 초 슈피겔 기자가 케냐 동차보국립공원 현장을 찾았을 당시 공원 관리인들이 오후에 밀렵꾼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첩보를 받고 덤불과 나무들 사이에 잠복하자 실제로 밀렵군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40여분간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날 현장에서는 자동소총으로 완전무장한 소말리아 밀렵꾼 한 명이 사망했으며 5명이 부상을 입었다. 공원 관리인들은 이날은 자체 피해가 없었으며 그나마 평화로운 날이었다고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입을 모았다.

현재 아프리카에는 50만마리의 코끼리가 서식하고 있지만 밀렵꾼들은 매년 수만마리를 살해하고 있으며 밀렵꾼들에게 희생당하는 코끼리의 수는 매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아프리카 국가들의 세관에서 압수된 상아는 23톤에 달했으며 이는 지난 20년 동안 가장 많은 양으로 기록됐다.

민병대와 반군 조직들 돈벌이 수단
게다가 최근 밀렵에 뛰어든 민병대와 반군 조직들은 기존의 밀렵꾼들보다 한층 잔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전비 마련을 위해 중화기로 코끼리들을 무차별 살육하고 있다. <슈피겔>은 소말리아의 알 카에다와 연계된 반군조직 알 샤바브와 수단의 잔자위드, 우간다의 반군조직 ‘신의 저항’ 등이 중앙아프리카의 사바나지역을 코끼리들의 킬링필드로 만들고 있다고 묘사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전에 시에라리온에서 다이아몬드가 민병대가 저지른 전쟁범죄의 자금원이 되었던 것처럼 상아가 대륙 전체에서 분쟁에 연료를 공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프리카 전문가들은 이미 ‘블러디 다이아몬드(핏빛 다이아몬드)’에 이어 ‘블러디 아이보리(핏빛 상아)’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간다 북부에서 코끼리는 이미 멸종되었으며 이들 중 다수가 ‘신의 저항’ 조직에 살육당했다. 이 조직에서 소년병사로 몸을 담았던 조세프 오코트는 “우리는 지나는 길 위의 모든 것에게 사격을 가했다”며 “고기는 병사들이 먹었고, 상아는 사령관들이 가져갔다”고 증언했다.

암시장에서 상아는 ㎏당 2000달러(약 223만8000원)가량에 팔리고 있으며 상아 하나는 약 10~60㎏에 달한다. 코끼리 한 마리를 죽이면 약 12만 달러를 벌 수 있으며, 이는 아프리카에서는 무척 큰 금액이다. 상아 밀수는 이들 조직에게 쉬운 돈벌이로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코끼리 한마리 죽이면 12만달러 벌어
공원 관리조직과 밀렵꾼들의 충돌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케냐 공원 관리인들의 책임자 줄리우스 키픈게티치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밀렵꾼들을 산 채로 붙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그들을 쏴서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올해에만 관리인 7명이 밀렵꾼들과의 충돌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은 우리 관리인들을 가능한 한 많이 죽이고 우리 코끼리들의 씨를 말리려 하고 있다”며 “총알에는 총알로 갚을 뿐이다. (우리도) 그들을 죽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검은코뿔소의 최대 서식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조직범죄단이 새로운 돈벌이로 코뿔소 밀렵에 눈을 돌리면서 코뿔소의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아시아의 코뿔소 뿔 수요를 맞추기 위해 남아공 조직범죄단이 사냥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는 현재 코뿔소 뿔이 암 치료와 정력에 좋다는 미신으로 인해 수요를 감당하기 힘든 지경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코뿔소 뿔이 베트남의 사치스러운 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지난 4일 보도했다. 이들은 파티에 모여 코뿔소 뿔을 갈아 넣은 음료를 마시는데 이는 코뿔소 뿔이 성적 능력을 증강시켜 준다는 속설 때문이다. 또 코뿔소 뿔이 암에 걸린 이들을 기적처럼 낫게 해준다는 믿음 역시 코뿔소 뿔의 수요를 늘리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남아공에서는 373마리의 코뿔쏘가 밀렵꾼들에게 사냥당했으며 크루거국립공원에서만 229마리가 뿔 때문에 밀렵꾼의 희생양이 되었다. 림포포, 크와줄루-나탈 등에서도 피해가 잇따랐다. 매년 밀렵으로 숨지는 코뿔소의 수는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밀렵당한 코뿔소는 448마리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매일 2마리꼴로 AK-47 소총의 총격으로 살해된 코뿔소의 시체가 발견되고 있어 적어도 515마리가 희생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올해 밀렵 혐의로 체포된 이들은 199명에 달한다. 남아공 당국이 코뿔소 밀렵꾼에 대해 징역 10~20년의 중형을 내리고 있지만 밀렵행위 근절에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코뿔소 뿔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베트남에서 당국은 코뿔소 뿔 밀렵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베트남 당국은 베트남이 아시아에서 남아공 코뿔소 뿔의 최대 수요지라는 점조차 부인하고 있다.

남아공 내에는 약 1만8000마리의 흰코뿔소와 1195마리의 검은코뿔소가 서식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코뿔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치다. 세계자연보존연맹은 지난해 11월 아프리카 서부의 검은코뿔소는 이미 멸종된 상태이며 중앙아프리카의 흰코뿔소도 멸종위기라고 경고한 바 있다.

코뿔소 뿔 정력제로 베트남서 큰 인기
아프리카, 아시아는 물론 선진국에서도 코뿔소 뿔을 밀수하려다 세관에서 적발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아프리카 남부 모잠비크에서 세관당국이 코뿔소 뿔을 지닌 채 수도 마푸토 공항을 떠나려던 베트남인을 두 차례 검거한 바 있다. 지난 2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세관과 경찰이 일제단속을 벌인 결과 코뿔소 뿔 20개를 압수한 바 있으며, 유럽에서는 박물관의 코뿔소 뿔이 도난당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은 “서구에서도 범죄조직들에게 코뿔소 뿔이 헤로인이나 코카인 같은 고가의 마약보다 더 수지맞는 밀수품으로 선호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프리카 언론사들의 기사를 전하는 뉴스사이트 올아프리카닷컴은 남아공 정부가 베트남과 밀렵방지 협정을 맺었다고 지난 4일 전한 바 있다. 남아공 환경부는 베트남 측과 코뿔소 밀렵을 막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남아공 정부가 베트남에 밀렵 방지를 위한 협력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사자 역시 뼈가 밀수 대상으로 주목받으면서 멸종위기에 몰리고 있다. 가디언은 범죄조직들이 밀렵한 완전한 형체를 갖춘 사자의 뼈가 약 6000파운드(약 1087만원)에 팔리고 있다고 전했다. 남아공 언론들은 사자 역시 10~12년 내에 멸종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의 코뿔소 담당자 조세프 오코리는 “아프리카의 야생동물 관련 범죄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며 “아시아의 경제가 성장하고 이들 동물의 사체를 밀수할 만한 돈이 없던 이들이 경제적 능력을 갖춘 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이 동물들의 사체를 얻을 방법은 불법적인 것밖에 없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 차원의 국제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이는 아프리카연합 수준이 아닌 유엔 수준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기범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holjjak@kyunghyang.com>



중국의 농구영웅 야오밍이 지난달 16일 케냐 북부 삼부루에서 밀렵꾼들에 의해 살해당한 코끼리의 사체를 바라보고 있다. 나이로비/AP연합뉴스


 필리핀 세관 공무원들이 7일 마닐라 세관 창고에서 압수한 코뿔소 뿔의 무게를 달아보고 있다. 마닐라/로이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