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제부 기사 2010.8.~

‘파키스탄 민심’ 폭격한 美 무인비행기

‘파키스탄 민심’ 폭격한 美 무인비행기

ㆍ오폭 희생자 가족들 “CIA 상대 소송 제기”
ㆍ공습 묵인하는 자국 정부 향해서도 비난

미국의 무인비행기 공습으로 가족을 잃은 파키스탄인들이 미 중앙정보국(CIA)을 상대로 자국과 미국 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추가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보여 미국의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 습격 이후 불협화음을 보여온 양국 관계가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지난 9일 파키스탄 출신 변호사 미르자 샤자드 아크바르가 파키스탄 내에서 미국 무인비행기의 공습으로 죽거나 다친 이들의 가족 24명이 CIA에 대해 파키스탄과 미국, 영국 법원에 손해배상 등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아크바르는 이날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들(희생자들)은 테러와의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며 “무인비행기 공습 피해 가족들이 점점 더 많이 소송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인비행기 공습에는 CIA 외에도 영국 정보당국도 관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크바르는 2009년 1월 CIA 무인비행기 공습으로 가족을 잃은 파키스탄 언론인이 지난해 12월 이슬라마바드 CIA 지부장을 살인혐의로 고소한 사건도 담당하고 있다.

아크바르는 또 “국가가 어떻게 자국민들이 살해당하도록 허락할 수 있는가”라며 무인비행기 공습을 묵인해온 파키스탄 정부도 비판했다. 비리폭로 전문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국무부 외교전문에 따르면 유수프 라자 길라니 파키스탄 총리는 파키스탄 주재 미 대사에게 CIA의 자국 내 무인비행기 공습에 대해 묵인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무인비행기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빈 라덴 살해 이전부터 파키스탄 내 미국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는 주원인이었다.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 뉴아메리카재단의 집계에 따르면 2004년 이후 10일 현재까지 파키스탄에서 무인비행기 공습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은 1470~2339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무장세력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1177~1868명이다. 민간인 희생자는 353~471명으로 추정된다. 미국이 무인비행기를 사용하는 주목적인 탈레반 및 알카에다 지도자가 무인비행기 공습으로 살해된 경우는 33명에 불과하다. 파키스탄 내 무인비행기 공습 횟수는 2004~2007년 9회에서 2008년 33회, 2009년 53회, 2010년 118회로 급증하는 등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출범 이후 늘어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는 10일 현재 25차례 공습이 실시됐다.

파키스탄 내에서는 5개월 사이 두 차례에 걸쳐 CIA 파키스탄 지부장의 이름이 현지 언론에 공개되면서 두 나라 정보기관 사이에도 불협화음이 이어지고 있다. 9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파키스탄 한 민영방송은 CIA 파키스탄 지부장과 파키스탄 정보국(ISI)의 아메드 수자 파샤 국장이 만난 사실을 지난 6일 보도하면서 CIA 지부장 이름을 ‘마크 칼튼’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미국 관리들은 빈 라덴 은신처 급습에 불만을 품은 ISI가 CIA에 대한 정보를 흘린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CIA 지부장과 ISI 국장의 회동에서도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크바르가 담당하고 있는 CIA 지부장 고소 사건 당시에도 미국은 지부장의 실명 공개 배후로 ISI를 지목한 바 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