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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진 관련

질병·추위·위생… 극에 달한 ‘대피소 스트레스’

질병·추위·위생… 극에 달한 ‘대피소 스트레스’

ㆍ94%가 의약품 부족 시달려… 개선 기미 없어 ‘정신적 고통’

유리창 닦는 이재민 도호쿠 대지진과 쓰나미가 할퀴고 간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의 한 대피소에서 한 이재민이 유리창을 닦고 있다. 이시노마키(미야기현) |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도호쿠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인근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피난민들이 질병과 추위에 더해 오랜 대피소 생활로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피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21일 마이니치신문이 미야기현, 이와테현, 후쿠시마현의 대피소 33곳을 조사한 결과 적어도 487명이 각종 질병에 고통받고 있었다. 또 94%의 대피소가 의약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난방이나 식사를 따뜻하게 할 만큼의 충분한 연료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대피소도 4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33곳의 대피소에는 모두 1만1092명이 머물고 있다.

283명이 머물고 있는 이와테현 가마이시시 코시중학교에서는 현재 십수명이 감염성 위장염에 걸려 설사와 구토 증세를 보이고 있다. 또 120명이 머물고 있는 이와테현 오후나토시 아야사토중학교에서도 10명 정도가 감기에 걸린 상태다. 증세가 심하지는 않지만 이들 환자에게 증세에 맞는 약을 찾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초 대피소에 머물고 있는 스가와라 미치에(79)는 지병인 녹내장 약을 구하지 못하면서 “이대로 실명하는 건 아닐까”라고 걱정하고 있다. 약 400명이 머물고 있는 미야기현 게센누마시 게센누마 초등학교의 운영책임자는 마이니치와의 인터뷰에서 “3일 전부터 감기가 퍼지고 있지만 약이 곧 떨어질 것 같다”며 “갈아입을 속옷도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의약품이 충분한 대피소는 미야기현의 2곳뿐으로 의약품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대피소도 10곳에 달한다. 

갈아입을 옷이 부족한 데다 화장실의 위생상태가 열악한 것도 문제다. 대피소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스트레스성 질병을 앓게 되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연료 부족으로 난방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대피소도 3곳에 달한다. 52%의 대피소가 연료가 불충분한 상황이다. 하루 한 끼 이상의 식사를 따뜻하게 데워 피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대피소는 19개뿐이다. 이와테현 오쓰치초 안도초등학교처럼 며칠에 한번 정도만 따뜻한 식사를 줄 수 있는 대피소도 12개에 달한다. 대피소 2곳에서는 찬 음식만을 제공하고 있다. 

정원을 넘게 피난민을 받아들인 대피소도 5곳에 달해 안도초등학교 대피소 정원은 120명이지만 현재 800명이 입소해 있다. 이처럼 사생활 보호가 불가능하고 상황이 나아지질 않다 보니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와테현 미야코시의 아타고초등학교에서는 비좁은 잠자리로 인해 피난민들 사이에 싸움도 일어나고 있다.

나고야시를 기반으로 한 재해구조단체 ‘레스큐스톡야드’의 마쓰다 요코 사무국장은 “긴급한 약품 부족과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대로라면 원래 병이 없었던 이들도 노인들을 중심으로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신대지진 당시 대피소에 대해 연구했던 우에노 준 슈도대학 도쿄부학장도 “한신 당시에는 3~7일 만에 기반시설이 회복되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10일이 지나도 그만큼 복구가 되지 않고 있다”며 “이 상태가 계속되면 대피소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