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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 기사 2010.8.~

[세계]세계문화유산 상업화 ‘원주민 소외’

[세계]세계문화유산 상업화 ‘원주민 소외'

주간경향 909호


                         중국 남서부 윈난성 나시족 자치현에서 나시족 여성이 염전에 물을 붓고 있다. 나시족 상형문자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정작 나시족들은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위기에 처했다.
                                                                                                                                                 창두/신화연합뉴스


ㆍ막대한 관광수입 혜택은 없고 생활환경 나빠져 고향 떠나기도

세계문화유산은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가 인류 전체를 위해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을 말한다. 그러나 전통문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존되지만 정작 그 전통문화의 당사자인 원주민들은 고향에서 쫓겨나다시피 떠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남서부 윈난성 나시족(納西族) 자치현은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후 거센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전통양식의 목조가옥들로 가득했던 이 지역에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토산품 상점과 호텔, 식당, 바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현재 약 3.8㎢ 넓이의 나시족 자치현 여강의 고성 내에는 약 2000개 이상의 점포가 들어서 있다.

모소족으로도 불리는 나시족은 윈난성 나시족 자치현을 중심으로 거주하며, 현재 사용되는 유일한 상형문자인 둥바(東巴)문자로 유명하다. 둥바문자는 나시족의 전통종교인 둥바교의 경전을 기록하는 데 사용되어 왔으며, 200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둥바는 나시어로 현명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조용하던 마을 상업시설 넘쳐나

2009년 나시족 자치현을 찾은 관광객은 중국 국내외를 합해 758만명에 달한다. 덕분에 인구 110만명인 리장(麗江)시가 벌어들인 관광수입은 지역 총생산의 75%에 달하는 88억 위안(약 1조5000억원)이다. 리장시는 건물 유지·보수를 포함한 고성 보존사업에 약 15억 위안(약 2550억원) 이상을 투입하고 있다.

문제는 리장시가 이처럼 막대한 관광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나시족에게는 별다른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발 2400m 고원지대에 위치한 리장시의 나시족 자치현 고성 내에 거주하는 인구 15만명 가운데 나시족은 70%가량에 달한다. 그러나 나시족 자치현이 관광지로 변하면서 물가가 뛰고 생활환경이 악화되면서 이미 나시족의 절반 이상이 고향을 등지게 됐다. 나시족 여성인 리씨(54)는 요미우리와의 인터뷰에서 “밤에는 시끄럽고, 물은 오염돼 마실 수가 없다.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 1년 내에 떠날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물론 나시족 내에서도 경제논리로 세계문화유산 지정 후 관광지화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을 가진 이들도 있다. 리장시 고성보호관리국장을 맡고 있는 한 나시족 출신 공무원은 “2.5 위안(약 425원)짜리 티셔츠에 둥바문자를 인쇄해 팔면 5배를 받을 수 있다. 경제적 가치가 있어야만 문화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리장시의 나시족 자치현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후 막대한 관광수입을 벌어들이면서 중국 내에서는 세계문화유산 신청 바람이 불기도 했다. 이미 중국 내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은 40곳이며,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을 해놓은 곳도 35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일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도 중국은 세계문화유산 최다 보유국이 될 전망이다. 현재 세계문화유산 최다 보유국은 45곳을 보유한 이탈리아다.

기원전 8000년부터 과학적인 역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내 소수민족 먀오족 역시 세계문화유산 지정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구이저우성 정부는 2008년 먀오족 거주지역 등에 대한 관광 진흥을 목적으로 5000만 위안(약 85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먀오족은 중국 내륙 서남부 구이저우성 첸둥난 자치주 등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다.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좡족, 만주족, 후이족에 이어 네 번째로 인구가 많다.

                    

태국 시민들이 유네스코가 프레아 비히어 사원을 캄보디아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데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방콕/AP연합뉴스

거리에 조명을 장식하고 농지를 갈아엎어 관광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상점가를 건설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9일부터 22일까지 치른 13년에 한 번 있는 먀오족 전통축제는 대성황을 이뤘다. 그러나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던 먀오족에게 관광객들이 많이 찾게 된 것은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전통축제는 먀오족 구성원 모두가 모여 벌이는 대동제라기보다는 이미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한 볼거리로 전락했고, 젊은이들 가운데는 먀오족 고유언어보다는 중국어를 더 잘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개발 반대 원주민 당국과 충돌도

사람 얼굴 모양의 거대 석상 모아이로 유명한 남태평양의 이스터섬에서는 개발 광풍으로 주민들과 경찰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이스터섬에는 모아이 887개가 곳곳에 놓여 있으며,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3.5~10미터 크기에 무게 20~90톤에 달하는 모아이를 보기 위해 매년 약 5만명의 관광객들이 이스터섬을 찾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3일 개발에 반대하며 섬 내 관공서를 점거하고 있던 주민들과 폭동 진압 경찰이 충돌하면서 최소 20명이 부상을 당했다. 칠레 정부는 관광수입을 늘리기 위한 개발사업에 2억5000만 달러(약 2850억원)를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로 구성된 라파누이그룹은 이에 반발해 지난해 9월부터 이스터섬 내 10여개의 관공서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주민들은 유적들이 파괴되는 것과 원주민들이 섬에서 밀려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둘러싸고 영토 분쟁이 일어난 경우도 있다. 지난 2008년 7월 캄보디아의 신청으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힌두사원 프레아 비히어를 둘러싸고 캄보디아와 태국 두 나라 국경에서는 계속해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프레아 비히어는 11세기에 건축된 힌두교 사원이다. 캄보디아와 태국 국경의 전략적인 요충지에 위치해 있어 오랫동안 국경분쟁의 원인이 된 이 사원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는 1962년 캄보디아의 보호국이었던 프랑스가 1904년 국경 지도를 잘못 작성했다며 사원을 캄보디아 소유로, 인접한 북쪽 땅은 태국 영토로 판결한 바 있다. 두 나라는 2009년 4월 교전을 벌여 최소 2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최근 캄보디아군이 이 지역에서 태국인들을 무단침입 혐의로 체포하면서 국경분쟁이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캄보디아와 태국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태국 집권당 정치인 등 7명이 토지 측량작업을 벌이다 캄보디아군에 체포됐다. 캄보디아군은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태국 정치인들이 캄보디아 영토 내에서 토지 측량작업을 했기 때문에 체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체포된 태국 집권 민주당 파니치 위키츠렛 하원의원은 태국 언론과의 전화 통화에서 태국 영토에서 체포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니치 의원은 캄보디아군이 태국 영토 내에 주둔하고 있다는 민원을 확인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했다는 것이다.

<김기범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holjjak@kyunghyang.com>


▼아래는 나시족이 사용하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상형문자인 둥바문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