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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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0-19 22:00:06ㅣ수정 : 2010-10-19 22:00:07
ㆍ한반도평화포럼 창립 1주년 백낙청 이사장 특별 인터뷰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72)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에서만은 실용주의로 나갈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며 “지금은 그 기대가 완전히 어긋났다”고 밝혔다.
남북관계의 갈 길에 대해 백 교수는 “해법은 6·15공동선언에 담겨 있다”며 “항구적인 분단 상태에 머물면서 교류협력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당장 통일하는 것도 아닌 국가연합이라는 중간단계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재통합하고, 거기에 걸맞은 내부 변화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평화포럼 공동 이사장인 백 교수는 18일 포럼 창립 1주년을 맞아 경향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 문제와 관련, “국내에서 무리한 MB 정책들을 밀어붙여선 동력이 안 생길 것”이라며 “전문성을 요하는데, 지금의 통일안보팀 인적 구성으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선 “‘못 믿겠으면 너희가 밝혀봐라’ 하는 식은 정보와 예산을 독점한 정부가 할 소리가 아니다”라며 “더 이상 남북관계 문제를 미뤄선 안된다”고 주문했다.
백 교수는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우리 국민정서에 어긋날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일반적 상식에도 어긋난다는 점이야 분명하다”며 “그러나 북의 3대 세습을 비판할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는 따져볼 일”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국내 정치에 대해서도 “시민사회가 관여한 연합정치는 6·2 지방선거가 처음”이라며 “2012년에는 시민사회의 힘이 또 다른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랜 기간 남북을 오가며 ‘한반도식 통일’ 구상에 천착해온 백 교수와의 인터뷰는 김봉선 경향신문 정치·국제에디터가 진행했다.
■ “천안함은 이념 이전에 사회의 기초체력 문제
현 통일안보팀으론 남북정상회담 어려워”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올해 가장 큰 사건은 천안함 사건입니다. 어떻게 정리하고 있습니까.
“우리 해군 46명의 목숨이 희생되고 국내정세나 남북관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인데, 사실관계 자체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정책이나 이념 이전에 과학과 상식의 영역에 속한 문제죠. 우리 사회의 기초체력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더 뻗어나가고 선진화되기 위해 기초체력이 튼튼해야지요. 정부가 이 사건을 북한 소행으로 단정하고 갖가지 강경조치를 국내외에서 취했는데 다수 국민에게 먹히지 않았고 국제사회에서도 불신을 샀지요. 정부도 난감하겠지만, 국민도 난감합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못 믿겠으면 너희들이 진상을 말해봐라. 그것도 못하면서 왜 불신하느냐’고 합니다. 정보와 예산을 독점한 정부가 할 소리가 아니지요. 차라리 정부가 ‘북한 소행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봐서 그럴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나왔다면 국민들의 호응이 훨씬 컸을 거예요. 그런데 정황증거는 없이 허점투성이의 ‘결정적 증거’라는 걸 불쑥 내놓으니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갈지 국민이 난감해지는 거지요.”
-정부는 왜 천안함 사건을 그렇게 처리했을까요.
“단기적으로 지방선거가 있었고, 중기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5·24 담화’가 보여주듯 남북관계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려 했던 듯합니다. 하지만 둘 다 성공하지 못했어요. 앞으로 어떡할 거냐? 진실이 쉽게 밝혀질 게 아니니까 그냥 덮고 빨리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6자회담을 재개하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저 역시 진상규명을 마칠 때까지 남북관계 문제를 미뤄선 안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진상규명은 우리 사회의 기초체력과 관계된다는 점에서 덮어둘 수 없고, 대외적으로 할 일을 하면서 진실규명을 국민이 힘을 모아 용기있고 지혜롭게 해나가는 이원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평가한다면.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에서만은 실용주의로 나갈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어요. 그런 기대는 완전히 어긋났지요. 저 자신이 분단체제론을 개진하며 남북문제와 국내 민주개혁 문제가 맞물려 있다고 주장해왔지만 실제로 그 둘이 얼마나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습니다. 국내에서 무리한 (대북)정책을 추진하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고, 그러면 극우적 세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고, 그들이 요구하는 남북대결로 갈 수밖에 없는 거지요. 또 다른 측면은 현 정부 통일안보팀이 너무 무능한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반도식 통일’은 중단된 걸까요.
“‘한반도식 통일’은 베트남, 독일, 예멘과 달리 중간단계를 거쳐 진행되면서 시민참여의 폭이 넓어지는 방식으로 수행하는 통일을 뜻합니다. 지금 중대한 고비에 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명제를 철회하고 싶진 않아요. 한반도식 통일은 장기적 과제여서 2~3년 오르락내리락 하더라도 본질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정부간에 일이 안 풀리면 시민이 거기에 맞서 남쪽 사회도 바꾸고 남북관계도 다시 진전시키는 것이 당연한 과정입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근본적 철학의 변화는 없겠지만, 임기 후반에 가면 남북정상회담 같은 이벤트가 추진될 것 같은데요.
“5·24 담화대로라면 정상회담은 앞으로도 있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 자신이 그 노선을 고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남북정상회담 얘기가 다시 나올 텐데 성사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우선 국내에서 무리한 MB정책들을 밀어붙여서는 정상회담을 할 정치적 동력이 안 생깁니다. 또 하나는 정상회담 준비도 굉장히 전문성을 요하는데 지금의 인적 구성으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최근 대통령 측근에 남북관계에 적극적인 인사들이 일부 들어간 것이 다소 희망적이긴 합니다만.”
■ “‘한반도식 통일’ 고비 해법은 6·15공동선언
북한 3대세습 논쟁 비판 기준 따져봐야”
-북한의 3대 세습 공식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 국민정서에 어긋날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일반적 상식에도 어긋난다는 점이야 분명하지요. 그러나 이런 단답형 원칙표명으로 뭐가 되는 건 아니고 더구나 보수언론처럼 일종의 사상검증, 충성맹세를 강요하는 건 문제예요. 민주노동당에 대한 경향신문의 문제제기는 취지가 다르겠지만, 뭔가 오랜만에 시류에 일치하는 자신감이랄까 어떤 고압적인 자세가 느껴졌어요. 아무튼 이 문제가 사회적 토론의 대상이 되는 건 필요합니다. 세습이 좋으냐 나쁘냐로 편가르기 하는 차원이 아니라 북한을 정말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진보진영 내 토론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지난날 NL(민족해방)-PD(민중민주주의) 노선 다툼의 연장선상에서 한쪽은 북한에 대해 문제제기만 해도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몰아붙이고, 다른 한쪽은 민족화해나 한반도의 궁극적 통합에 대한 비전도, 관심도 없으면서 상대를 친북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갈 만큼 진보진영이나 사회 전체가 성숙했다고 봅니다”
-진보·보수를 아울러 성숙한 토론을 위해 조언한다면.
“가령 북의 3대 세습을 비판할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지 따져볼 일입니다. 경제권력 세습은 괜찮지만 정치권력 세습은 안된다는 ‘남한식 표준’을 적용하는 건지, 그게 아니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한다면 권좌의 세습은 무조건 안된다는 세계 표준이 있다는 건지 물어봐야지요. 저는 세계 표준은 민주주의라든가 인권, 생존권 등이고 세습문제는 그 표준을 적용해서 판단할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분단체제가 해소되지 않고서는 남한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 건설에도 한계가 있고 북한이 정상적인 사회주의 국가가 되는 것은 더욱이나 불가능하다는 게 저의 지론이기 때문에, 북의 세습체제가 세계 표준에 어긋나는 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동시에 그걸 갑자기 깨달은 듯 법석을 떠는 데도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비슷한 시각에서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북한 인권문제의 해결책으로 북한의 현 체제를 빨리 쓰러뜨리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이 쓰러지라고 해서 쓰러지지도 않으려니와, 쓰러진다고 인권 상황이 자동적으로 나아지는 것도 아니지요. 반면 무작정 북을 도와주고 교류하다보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으로 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안이하다고 봐요. 해법은 6·15 공동선언에 담겨 있습니다. 항구적인 분단상태에 머물면서 교류협력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당장 통일하는 것도 아닌, 국가연합이라는 중간단계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재통합하고 거기에 걸맞은 내부변화를 진행하자는 겁니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북한 인권개선의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대승호 송환, 수해 복구 지원 요청, 이산상봉 제의 등 9월 이후 북한의 화해공세는 김정은 세습체제 안착이라는 고도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이뤄졌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요.
“천안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의 대북공세가 북으로서도 시련이었을 텐데, 6·2 지방선거와 안보리 의장성명을 거치면서 그 시련을 넘어섰다고 본 듯합니다. 경제를 개선할 필요성이야 예전부터 있었는데, 특히 김정은으로의 승계과정을 순조롭게 밟으려면 경제에서도 성과를 내야 하고 남북관계나 대미관계에서도 성과를 내야 할 겁니다.”
-6·2 지방선거를 계기로 여야에 복지담론이 확산됐는데요, 복지국가가 진보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복지담론이 전면화된 것은 하나의 역사적 전진이지만 진보의 대안 여부는 간단치 않아요. 여당 후보가 복지를 안하겠다고 하고 진보 쪽에서 하자고 하면 간단하지만 박근혜씨도 복지국가를 하겠다는데, 복지를 더 전면적으로 하겠다는 쪽이 꼭 이길지는 의문이에요. 복지를 주장하는 진보인사들은 대개 남북관계의 발전 여부가 남한사회 복지와 직결돼 있다는 인식이 부족해요. 복지를 하려면 재원이 필요하고 추진동력도 있어야 합니다. 이 모두 남북관계가 잘 돼야 가능합니다. 또 하나, 복지사회 건설은 복지실현에 수혜시민들의 능동적 참여가 확대되는 민주주의 아젠다가 수반되지 않으면 ‘건설족’에 이어 ‘복지족’을 양산할 우려가 있지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 연대’가 주요한 의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6·2 지방선거를 계기로 야권연대가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생겼지요. 지금은 그런 원칙적 합의를 바탕으로 2012년 총선, 대선에서 어떤 야권연대를 만들 것인지를 두고 백가쟁명하는 시기입니다. 일단 온갖 토론을 하되 자기와 다른 입장을 부당하게 폄훼하는 일은 피해야지요. 그러면서 내년 초쯤 큰 가닥이 잡혔으면 합니다. 한국의 민주개혁 세력이 집권할 땐 DJP 연합, 노무현-정몽준 연합 등 늘 연합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관여한 연합정치가 얼마간 실현된 것은 6·2 선거가 처음입니다. 2012년에는 시민사회의 힘이 또 다른 수준에 이를 겁니다. 중요한 것은 시민권력이 잘 행사될 수 있도록 그때까지 우리 사회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일입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72)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에서만은 실용주의로 나갈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며 “지금은 그 기대가 완전히 어긋났다”고 밝혔다.
남북관계의 갈 길에 대해 백 교수는 “해법은 6·15공동선언에 담겨 있다”며 “항구적인 분단 상태에 머물면서 교류협력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당장 통일하는 것도 아닌 국가연합이라는 중간단계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재통합하고, 거기에 걸맞은 내부 변화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18일 경향신문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한반도평화포럼 공동 이사장인 백 교수는 18일 포럼 창립 1주년을 맞아 경향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 문제와 관련, “국내에서 무리한 MB 정책들을 밀어붙여선 동력이 안 생길 것”이라며 “전문성을 요하는데, 지금의 통일안보팀 인적 구성으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선 “‘못 믿겠으면 너희가 밝혀봐라’ 하는 식은 정보와 예산을 독점한 정부가 할 소리가 아니다”라며 “더 이상 남북관계 문제를 미뤄선 안된다”고 주문했다.
백 교수는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우리 국민정서에 어긋날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일반적 상식에도 어긋난다는 점이야 분명하다”며 “그러나 북의 3대 세습을 비판할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는 따져볼 일”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국내 정치에 대해서도 “시민사회가 관여한 연합정치는 6·2 지방선거가 처음”이라며 “2012년에는 시민사회의 힘이 또 다른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랜 기간 남북을 오가며 ‘한반도식 통일’ 구상에 천착해온 백 교수와의 인터뷰는 김봉선 경향신문 정치·국제에디터가 진행했다.
■ “천안함은 이념 이전에 사회의 기초체력 문제
현 통일안보팀으론 남북정상회담 어려워”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올해 가장 큰 사건은 천안함 사건입니다. 어떻게 정리하고 있습니까.
“우리 해군 46명의 목숨이 희생되고 국내정세나 남북관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인데, 사실관계 자체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정책이나 이념 이전에 과학과 상식의 영역에 속한 문제죠. 우리 사회의 기초체력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더 뻗어나가고 선진화되기 위해 기초체력이 튼튼해야지요. 정부가 이 사건을 북한 소행으로 단정하고 갖가지 강경조치를 국내외에서 취했는데 다수 국민에게 먹히지 않았고 국제사회에서도 불신을 샀지요. 정부도 난감하겠지만, 국민도 난감합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못 믿겠으면 너희들이 진상을 말해봐라. 그것도 못하면서 왜 불신하느냐’고 합니다. 정보와 예산을 독점한 정부가 할 소리가 아니지요. 차라리 정부가 ‘북한 소행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봐서 그럴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나왔다면 국민들의 호응이 훨씬 컸을 거예요. 그런데 정황증거는 없이 허점투성이의 ‘결정적 증거’라는 걸 불쑥 내놓으니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갈지 국민이 난감해지는 거지요.”
-정부는 왜 천안함 사건을 그렇게 처리했을까요.
“단기적으로 지방선거가 있었고, 중기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5·24 담화’가 보여주듯 남북관계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려 했던 듯합니다. 하지만 둘 다 성공하지 못했어요. 앞으로 어떡할 거냐? 진실이 쉽게 밝혀질 게 아니니까 그냥 덮고 빨리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6자회담을 재개하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저 역시 진상규명을 마칠 때까지 남북관계 문제를 미뤄선 안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진상규명은 우리 사회의 기초체력과 관계된다는 점에서 덮어둘 수 없고, 대외적으로 할 일을 하면서 진실규명을 국민이 힘을 모아 용기있고 지혜롭게 해나가는 이원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평가한다면.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에서만은 실용주의로 나갈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어요. 그런 기대는 완전히 어긋났지요. 저 자신이 분단체제론을 개진하며 남북문제와 국내 민주개혁 문제가 맞물려 있다고 주장해왔지만 실제로 그 둘이 얼마나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습니다. 국내에서 무리한 (대북)정책을 추진하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고, 그러면 극우적 세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고, 그들이 요구하는 남북대결로 갈 수밖에 없는 거지요. 또 다른 측면은 현 정부 통일안보팀이 너무 무능한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반도식 통일’은 중단된 걸까요.
“‘한반도식 통일’은 베트남, 독일, 예멘과 달리 중간단계를 거쳐 진행되면서 시민참여의 폭이 넓어지는 방식으로 수행하는 통일을 뜻합니다. 지금 중대한 고비에 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명제를 철회하고 싶진 않아요. 한반도식 통일은 장기적 과제여서 2~3년 오르락내리락 하더라도 본질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정부간에 일이 안 풀리면 시민이 거기에 맞서 남쪽 사회도 바꾸고 남북관계도 다시 진전시키는 것이 당연한 과정입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근본적 철학의 변화는 없겠지만, 임기 후반에 가면 남북정상회담 같은 이벤트가 추진될 것 같은데요.
“5·24 담화대로라면 정상회담은 앞으로도 있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 자신이 그 노선을 고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남북정상회담 얘기가 다시 나올 텐데 성사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우선 국내에서 무리한 MB정책들을 밀어붙여서는 정상회담을 할 정치적 동력이 안 생깁니다. 또 하나는 정상회담 준비도 굉장히 전문성을 요하는데 지금의 인적 구성으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최근 대통령 측근에 남북관계에 적극적인 인사들이 일부 들어간 것이 다소 희망적이긴 합니다만.”
■ “‘한반도식 통일’ 고비 해법은 6·15공동선언
북한 3대세습 논쟁 비판 기준 따져봐야”
-북한의 3대 세습 공식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 국민정서에 어긋날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일반적 상식에도 어긋난다는 점이야 분명하지요. 그러나 이런 단답형 원칙표명으로 뭐가 되는 건 아니고 더구나 보수언론처럼 일종의 사상검증, 충성맹세를 강요하는 건 문제예요. 민주노동당에 대한 경향신문의 문제제기는 취지가 다르겠지만, 뭔가 오랜만에 시류에 일치하는 자신감이랄까 어떤 고압적인 자세가 느껴졌어요. 아무튼 이 문제가 사회적 토론의 대상이 되는 건 필요합니다. 세습이 좋으냐 나쁘냐로 편가르기 하는 차원이 아니라 북한을 정말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진보진영 내 토론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지난날 NL(민족해방)-PD(민중민주주의) 노선 다툼의 연장선상에서 한쪽은 북한에 대해 문제제기만 해도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몰아붙이고, 다른 한쪽은 민족화해나 한반도의 궁극적 통합에 대한 비전도, 관심도 없으면서 상대를 친북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갈 만큼 진보진영이나 사회 전체가 성숙했다고 봅니다”
-진보·보수를 아울러 성숙한 토론을 위해 조언한다면.
“가령 북의 3대 세습을 비판할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지 따져볼 일입니다. 경제권력 세습은 괜찮지만 정치권력 세습은 안된다는 ‘남한식 표준’을 적용하는 건지, 그게 아니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한다면 권좌의 세습은 무조건 안된다는 세계 표준이 있다는 건지 물어봐야지요. 저는 세계 표준은 민주주의라든가 인권, 생존권 등이고 세습문제는 그 표준을 적용해서 판단할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분단체제가 해소되지 않고서는 남한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 건설에도 한계가 있고 북한이 정상적인 사회주의 국가가 되는 것은 더욱이나 불가능하다는 게 저의 지론이기 때문에, 북의 세습체제가 세계 표준에 어긋나는 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동시에 그걸 갑자기 깨달은 듯 법석을 떠는 데도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비슷한 시각에서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북한 인권문제의 해결책으로 북한의 현 체제를 빨리 쓰러뜨리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이 쓰러지라고 해서 쓰러지지도 않으려니와, 쓰러진다고 인권 상황이 자동적으로 나아지는 것도 아니지요. 반면 무작정 북을 도와주고 교류하다보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으로 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안이하다고 봐요. 해법은 6·15 공동선언에 담겨 있습니다. 항구적인 분단상태에 머물면서 교류협력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당장 통일하는 것도 아닌, 국가연합이라는 중간단계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재통합하고 거기에 걸맞은 내부변화를 진행하자는 겁니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북한 인권개선의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대승호 송환, 수해 복구 지원 요청, 이산상봉 제의 등 9월 이후 북한의 화해공세는 김정은 세습체제 안착이라는 고도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이뤄졌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요.
“천안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의 대북공세가 북으로서도 시련이었을 텐데, 6·2 지방선거와 안보리 의장성명을 거치면서 그 시련을 넘어섰다고 본 듯합니다. 경제를 개선할 필요성이야 예전부터 있었는데, 특히 김정은으로의 승계과정을 순조롭게 밟으려면 경제에서도 성과를 내야 하고 남북관계나 대미관계에서도 성과를 내야 할 겁니다.”
-6·2 지방선거를 계기로 여야에 복지담론이 확산됐는데요, 복지국가가 진보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복지담론이 전면화된 것은 하나의 역사적 전진이지만 진보의 대안 여부는 간단치 않아요. 여당 후보가 복지를 안하겠다고 하고 진보 쪽에서 하자고 하면 간단하지만 박근혜씨도 복지국가를 하겠다는데, 복지를 더 전면적으로 하겠다는 쪽이 꼭 이길지는 의문이에요. 복지를 주장하는 진보인사들은 대개 남북관계의 발전 여부가 남한사회 복지와 직결돼 있다는 인식이 부족해요. 복지를 하려면 재원이 필요하고 추진동력도 있어야 합니다. 이 모두 남북관계가 잘 돼야 가능합니다. 또 하나, 복지사회 건설은 복지실현에 수혜시민들의 능동적 참여가 확대되는 민주주의 아젠다가 수반되지 않으면 ‘건설족’에 이어 ‘복지족’을 양산할 우려가 있지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 연대’가 주요한 의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6·2 지방선거를 계기로 야권연대가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생겼지요. 지금은 그런 원칙적 합의를 바탕으로 2012년 총선, 대선에서 어떤 야권연대를 만들 것인지를 두고 백가쟁명하는 시기입니다. 일단 온갖 토론을 하되 자기와 다른 입장을 부당하게 폄훼하는 일은 피해야지요. 그러면서 내년 초쯤 큰 가닥이 잡혔으면 합니다. 한국의 민주개혁 세력이 집권할 땐 DJP 연합, 노무현-정몽준 연합 등 늘 연합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관여한 연합정치가 얼마간 실현된 것은 6·2 선거가 처음입니다. 2012년에는 시민사회의 힘이 또 다른 수준에 이를 겁니다. 중요한 것은 시민권력이 잘 행사될 수 있도록 그때까지 우리 사회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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