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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관련 기사 2010.2.~

타협과 타도 사이, 갈림길에 선 ‘시민혁명’

타협과 타도 사이, 갈림길에 선 ‘시민혁명’

ㆍ반정부 시위 향방은

‘승리할 때까지’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한 젊은이가 6일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자신의 얼굴에 이집트 국기를 칠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일상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카이로 | AP연합뉴스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는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서 승리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패배자가 될 것인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에 던져진 질문이다. 7일 반정부 시위는 14일째로 접어들었다. 전날 이집트 정부가 야권단체들과 대화를 통해 개헌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유화책을 꺼내들었지만,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수만명은 “무바라크가 물러날 때까지 광장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결기를 접지 않고 있다. 

30년 철권통치였던 무바라크 체제를 처음 흔든 힘은 야권 지도자도, 군부도, 미국도 아닌 다수의 시위대에서 나왔다. 하지만 중심조직이 없는 시위대가 이집트 정국의 향방을 정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타흐리르 광장에 남은 시위대는 강경하다. 오마르 타그(20)를 포함한 시민 수십명은 지난 6일 밤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 방어선을 친 군부의 탱크 바로 밑에서 잠을 청했다. 군부의 시위대 진압을 우려한 까닭이다. 타그는 미국 시사주간 타임에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정치적 타협이란 없다”고 말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타흐리르 광장에는 이집트 박물관 등 주요 건물 옥상에서 친정부 시위대의 공격이나 공안경찰의 진압에 대비하기 위해 수십명의 ‘옥상 지도자’들이 있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자체적으로 소규모 그룹을 결성하고, 그중 한명을 현장 지도자로 선출했다. 타임의 현장 기자는 “시위대는 자신들의 승리가 가까이 와 있다고 믿는다. 9월 대선까지 기다리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정부와 야권의 협상안이 나온 전날 ‘4·6 청년운동’과 무슬림형제단 등 시위를 주도한 단체들은 연합체 ‘청년의 분노 혁명 통일 지도부’를 구성하고 정부의 협상안을 거부했다.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역시 “무바라크가 즉각 퇴진하기 전에는 대화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물론 정부의 부분개혁에 만족하고 일상으로 복귀한 시민들도 있다. 이집트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려 추후 시위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모하메드 엘 자위(22)는 지난 1일 무바라크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4일 광장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인 마무드 엘 자위(60)는 “무바라크는 ‘대선에 나가지 않겠다’는 거짓말을 두번이나 한 사람”이라며 광장에 남았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 주도한 협상과 관련, 정부가 일부 야권단체들을 만족시킴으로써 반정부 진영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과거 무슬림형제단 소속이었던 아부엘 엘라 마디는 “정권이 무슬림형제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야권을) 조각내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집트 군부의 고위급 인사들도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와 직접 접촉해 해산 및 생업 복귀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날 군부가 처음으로 시위대 체포에 나서면서 군부와 시위대 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국제앰네스티는 6일 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공안경찰이 여전히 전기고문과 같은 잔학행위를 일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협상 자리에서는 정치범 인권실태에 대한 불만사항을 처리하고 30년간 지속된 비상계엄법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변화의 조짐조차 없다는 비판이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