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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독재국가 총선거부 ‘야권 분열’

이번 주 위클리경향에 기고한 기사입니다.

[세계]독재국가 총선거부 ‘야권 분열’
2010 11/09위클리경향 899호
ㆍ버마·이집트, 선거 불참 주장에 현실정치 참여 목소리

“독재정권이 만들어놓은 게임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불리하긴 하지만 선거에 참여해 현실 정치에 참여할 공간을 만드는 것이 옳다.”
“비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총선 자체를 거부하자.”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가 지난 9월 21일 카이로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의 아들 가말의 대통령 선거 출마에 반대하며 “세습에 반대한다”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카이로/AP통신


11월 총선을 앞두고 버마(7일)와 이집트(28일) 야당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두 나라 민주화운동을 이끌고 있는 인물들이 독재정권 하에서 편파적으로 치러지는 총선을 전면적으로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민들에게 불복종운동을 제안하고 나선 한편, 의석을 차지해 독재정권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근거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버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아웅산 수치 여사는 최근 국민들에게 선거 불참을 촉구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수치 여사의 변호사인 니얀 윈은 수치 여사가 “1990년 선거에서 국민들은 열망을 밝혔지만 정부는 그 결과를 무시했다”며 “이제 90년에 정부가 했던 것에 대해 국민들이 되갚아줄 기회”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90년 치러진 총선에서 전체 485개 의석 중 392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던 수치 여사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이미 선거 불참을 선언한 바 있다. NLD에 앞서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도 총선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버마 밖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들도 총선 거부에 동참했다.

아웅산 수치 여사 선거 불참 촉구
이집트에서는 귀국 후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국민들에게 총선 거부를 촉구하고 나섰다. AP통신에 따르면 엘바라데이는 “이번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이집트를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국민적 의지를 거스르는 일”이라며 “전체 유권자가 선거를 완전히 거부한다면 체제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엘바라데이는 지난해 11월 IAEA 사무총장직에서 퇴임한 후 지난 2월 이집트로 돌아가 정치개혁운동 조직인 ‘변화를 위한 국민연대’를 창설했다. 알 가드당과 국민전선 등의 야당 조직들도 엘바라데이와 함께 이번 총선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현재 버마에서는 1962년 군사쿠데타 이후 1948년 동안 군사독재가 이어지고 있다. 88년 8월 8일 ‘8888혁명’이라고 불리는 대규모의 민주화시위가 벌어졌지만 군부는 이를 무참히 진압했고,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수치 여사를 가택연금한 바 있다. 네윈 정권에 이어 군부를 장악한 탄 슈웨 장군은 지난 8월 27일 민정 이양의 중간 단계로 총선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NLD가 압승을 거뒀던 1990년 총선 이후 20년 만에 첫 선거가 치러지는 셈이다.

이집트의 경우 현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82)는 1981년부터 29년째 대통령직을 맡고 있다. 내년 대선에는 그의 아들이자 집권 국민민주당의 정책위원회 위원장인 가말(47)이 여당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커 2대 세습이 이뤄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일본 거주 버마인들과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0월 27일 도쿄에서 군부정권의 편파적인 총선 실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쿄/AP통신


두 나라의 독재정부는 모두 이번 선거를 편파적으로 치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버마 군부는 이번 선거에서 NLD를 비롯한 10개 정당의 선거 참여를 금지했다. 수형자는 정치 참여를 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법까지 개정해 현재 가택 연금상태인 수치 여사 등 민주화 인사들의 총선 참여를 막아버렸다. 버마 군부는 또 지난 8월 13일 선거일을 공고하면서 8월 30일까지 후보자 등록을 하도록 요구했다. 330개 선거구에서 상원, 하원, 지방의회 후보를 17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등록하게 함으로써 미리 준비를 하고 있던 군부 출신 정치인들 말고는 후보자 등록을 하기 힘든 상황을 만든 것이다. 총선에서 군부가 안정적인 의석을 차지할 수 있도록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채워놓은 셈이다.

이집트 정부 역시 언론통제와 야당 탄압을 통해 집권 국민민주당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국영방송이 야당의 광고방송을 거부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집트의 주요 야당 중 하나인 와프드당은 10월 25일 성명을 통해 “이집트 국영방송이 광고료를 받은 이후에도 광고방송을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와프드당은 또 인쇄소들도 야당의 선거운동용 인쇄물을 제작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집트 정부는 10월 초에도 방송법을 위반했다며 12개의 민간 방송채널을 폐쇄하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허가제로 전환하는 등 언론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집권당에 유리한 편파 선거 분위기
그러나 이들 국가 안팎에서는 야당이 총선에 참여해 단 1석이라도 의석을 차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수치 여사와 엘바라데이의 총선 불참에 동참하는 야당들과 달리 이를 비판하며 현실정치에 참여하려는 야당들이 있어 버마와 이집트 모두 야권이 분열되는 양상이다.

버마의 경우 NLD에서 떨어져 나온 야당인 민족민주세력당(NDF)이 선거에 참여할 계획이지만 전체 1163개 선거구 가운데 160개 선거구에만 후보를 낼 계획이다. 군부는 새로 개정한 헌법에 따라 군부 몫으로 의회 의석 25%를 차지해 놓은 상태다. 1962년 군사 쿠데타 이전 민주정부 시기의 장관 등 전직 고관들의 딸이어서 ‘세 공주들’이라고 불리는 쵸 쵸 쿄 녜인, 미야 탄 탄 누, 네이 예 바 스웨 등의 버마 야권 정치인들은 개인 재산을 털어 선거에 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재정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데다 군부의 감시와 협박에 시달리고 있고, 당선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들이 선거에 나서게 된 것은 아직은 군부 출신 정치인들보다 세력이 미약하지만 앞으로 점점 목소리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도 최대 야당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은 총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종교 색채를 드러낸다는 이유로 인해 정부에 의해 불법화돼 있는 무슬림형제단은 2005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소속 회원들을 출마시켜 의회 전체 의석 가운데 20%를 얻은 바 있다. 자유주의 성향을 갖고 있는 와프당도 총선에 참여하는 것으로 당론을 결정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선거가 정부에 유리하게 치러진다 해도 의회에서 최대한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로 조직을 꾸려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버마 민족민주세력당의 랑군 책임자 미야트 니얀느라 소에는 “우리는 아웅산 수치의 결정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군부와) 협상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의회에 가서 정부가 우리나라에 변화를 가져오도록 설득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기범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holjja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