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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 기사 2010.8.~

‘집시의 천국’ 스페인… 강제추방 대신 국민으로 포용

ㆍ프랑스·이탈리아와 달리 75년부터 시민권 부여
ㆍ주택 등 보조 정착 도와 빈부차·인종차별은 숙제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교외에 거주하고 있는 집시 안토니오 모레노는 대부분 극빈층인 다른 유럽 국가의 동족들과 달리 4개의 침실과 수영장이 있는 집에서 여유있게 살고 있다. 자신 소유의 스튜디오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다루는 버젓한 직업도 있다. 그는 또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잇따라 쫓겨나고 있는 동족들과는 달리 강제추방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인구 4만명가량의 불법 정착촌에 살면서도 그가 이처럼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스페인이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수십년째 집시에 대한 통합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덕분이다. 모레노는 “강제추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우리는 (스페인에) 통합됐다. 나는 스페인인이자 집시다. 그리고 나는 양쪽 모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스페인 거주 집시들이 지난 3월 말 부활절 전주인 수난주간을 맞아 말라가에서 행진을 하며 춤을 추고 있다. 말라가 |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서유럽 국가들이 집시를 문젯거리로 보고 추방하고 있는 데 반해 스페인은 집시들에 대한 포용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에 따르면 스페인이 집시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한 것은 1975년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죽은 이후다. 취직교육은 물론 4명 이상 모이는 것조차 금지됐던 집시들에게 주택 및 의료 보조, 교육 등 사회적 혜택이 부여됐으며, 그 후 집시들의 생활은 극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스페인 집시의 빈민가 거주 비율이 78년 78%에서 현재 16%로 낮아졌고, 절반가량은 집을 소유하게 됐다. 대부분의 집시 어린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문맹률도 15%가량으로 떨어졌다. 또 집시의 75%가량은 고정적인 수입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집시 통합정책에 매년 3600만유로(약 560억원)를 투입하고 있다. 스페인에 거주하는 집시는 약 97만명으로 추산되며, 서유럽에서는 가장 많다.

스페인 집시들이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쉽게 기존 사회에 융합되고, 또 정부도 통합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게 된 것은 비슷한 관습과 집시 문화의 수용, 모든 민족을 포괄한 헌법 등의 이유 때문이다. 스페인에서도 가장 많은 집시가 거주하는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관습이 가족과 가문을 중시하고 연장자의 권위를 따르는 집시들의 전통과 비슷한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결혼 등의 교류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원주민과의 교류를 통해 수세기 동안 같은 지역에 정주하게 된 이 지역 집시들은 다른 지역 집시들에 비해 통합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었다. 안달루시아 지역 집시들의 문화였던 플라멩코 춤과 전통의상이 스페인 문화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융합된 것도 이 지역 집시들이 원주민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데 큰 몫을 했다. 독재자 프랑코 사후에 제정된 집시 등 모든 소수민족을 포괄하는 헌법은 집시들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계기가 됐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인종차별적 시각이 남아 있지만 스페인은 다른 유럽국가들은 물론 집시들에게 집시 통합정책에 성공한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비비안 레딩 부위원장은 타임지에 보낸 e메일에서 “스페인 정부는 집시 인구를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집시와 집시가 아닌 스페인인 사이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스페인 정부와 시민단체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2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는 집시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을 활성화하는 전국적인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앙겔 가빌론도 스페인 교육장관은 집시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교육은 자유를 뜻한다.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정말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올 여름 집시 8000여명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으로 추방한 프랑스는 EU의 경고에도 오는 15일부터 추방되는 이민자들의 모든 손가락 지문을 채취하는 등 반 집시정책을 강화할 예정이다. 12세 이상의 재정 지원을 받은 이민자 전원의 지문을 채취해 재입국을방지하려는 의도다. 프랑스는 추방되는 집시들에게 여비 명목으로 어른 300유로(약 46만원), 어린이 100유로(약 15만4000원)씩을 지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