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볼 만한 지점을 알려주는 글인 듯.
북한의 정치권력 3대 세습. 이 민감한 이슈를 소재로 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일이 너무 커졌다. 도화선은 북한 세습에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고 민주노동당을 비판한 경향신문의 10월1일자 사설 ‘민노당은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다. 급기야 오늘 새언론포럼과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우리에게 경향신문 사설은 무엇이었나’란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연다. 옴부즈만 필자로서 모른 척하고 넘어가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경향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문은 북한이 권력 승계를 대중 앞에 공식화한 노동당 창건일 열병식과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사망을 주요하게 취급하면서 지난 한 주를 시작했다. 제한된 취재원에서 나온 파편적 정보로 사실을 자기 입맛대로 각색한 우리나라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행태를 감안할 때 경향의 접근은 차분한 편이었다. 다만, 고 황장엽씨의 빈소를 스케치한 12일자 사회면 중간 톱기사에서 수양딸의 말을 인용해 “북 3대 세습 속상해 떠난 듯”을 헤드라인으로 올린 것은 거슬렸다. 추측성 발언을 기사에 담는 건 용인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이 제목으로 부각하는 순간 독자의 마음속에는 사안을 바라보는 생각의 틀이 생성된다. 부적절하면서 자극적인 편집이다. 우연치곤 절묘하나 북한의 권력 세습과 황씨 사망 간의 인과성은 세인의 입방아에 오를망정 경향 같은 정론지가 주목할 거리는 아니다.
토론회 주제로 비화된 경향의 10월1일 사설도 ‘추정의 기정사실화’가 사달을 낸 측면이 있다.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은 게 “비판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고 “인정하겠다”는 의미로 귀결되는 걸까. 그런 논리대로라면 누군가 4대강 사업을 비판하지 않으면 이 사업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과연 그런가.
경향의 트레이드마크인 ‘책 읽는 경향’ 14일자에는 <침묵의 세계>가 소개되었다. 김중일 시인은 “많은 말을 쏟아내며, 다양하고 참신한 비유를 동원…해도, 결국은 충분히 말하지 못하며 말해진 말조차…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고 공허하게 부유”한다며 침묵은 “무엇을 기피하고자 할 때의 말하지 아니하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팽팽한 소통의 가능성”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노동당 논평은 나에게 그러한 침묵으로 다가왔고 이 침묵은 하나의 견해로 읽혔다. 이게 올바른 해독인지 여부를 떠나 다기한 해석만큼은 가능하다. 그럼에도 경향은 민노당 논평의 문구를 너무 단선적으로 규정했다. 신중했던 평소와 다른 자세였다.
경향답지 않은 모습은 또 있었다. 민주노동당 논평이 나온 다음날 조선일보는 ‘3대 세습 못 본 체하는 좌파는 가짜 좌파다’란 사설을 통해 낡아빠진 이념 공세에 나섰다. 문제의 경향 사설은 바로 그 다음날 나왔다. 민노당을 포함한 진보 진영의 커밍아웃을 왜 이리 채근하는지 모르겠다.
권력 세습을 상식적이라고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내키는 대로 비판하는 게 언론이나 정당의 임무는 아니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지적하듯 북한 세습은 비판하더라도 고려할 요소가 너무 많다. 이런 사안엔 신속한 입장 표명보다 ‘에포케(epoche)’가 제격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회의론자들이 즐겨 쓰던 이 용어는, 판단하는 사람이나 대상의 입장과 조건이 다양하기에 매사를 일률적으로 재단하지 않는 일종의 판단 유보를 뜻한다. 경향은 평소 사려 깊은 편집태도를 견지했다. 다른 언론에 비해 종북주의 논쟁을 거치며 “분당이라는 아픔까지 겪은” 민주노동당의 속사정에 밝을 터이다. 그런 경향신문이 조선일보와 흡사한 프레임으로 민노당을 압박하고 나선 건 낯선 광경이었다.
10월1일 사설에 무리수가 있긴 했다. 무엇보다 평소의 경향과 달랐다. 그럼에도 신문사로서 제기할 수 있는 목소리였다고 본다. 불씨가 되었으나 예기치 못한 파장일 수 있다. 자제력을 발휘해 자기 방어에 나서지 않은 경향의 후속 방침은 인상적이었다. 13일자 6면과 21면 기사를 통해 저간의 경과와 논쟁 구도도 공평하게 소개했다. 같은 내용의 기사가 중복 게재된 모양새가 다소 어이없긴 했지만. 그러나 15일자 사설 ‘북한 3대 세습과 진보정치의 과제’는 과유불급이었다.
이미 화두는 진보 진영에 던진 것 아닌가. 이제 경향은 시장의 여론 동향을 주시하고 전문가의 다양한 견해를 매개하면 된다. 15일자 사설 옆에 외부 기고(‘북한의 세습과 민족 구성원의 도리’)를 배치했고 16일에는 고정칼럼 ‘이택광의 왜?’가 알아서 이 주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지 않던가. 스스로 할 말이 있으면 내부의 기명칼럼을 활용하면 된다. 신문사의 공식 입장인 사설의 남용은 과도한 매체력 행사일 뿐이다. 그런데 경향 독자들이 이 이슈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다. 최소한 난 별로다.
- 김재영 | 충남대 교수·언론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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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0-17 21:41:29ㅣ수정 : 2010-10-17 21:41:29
경향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문은 북한이 권력 승계를 대중 앞에 공식화한 노동당 창건일 열병식과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사망을 주요하게 취급하면서 지난 한 주를 시작했다. 제한된 취재원에서 나온 파편적 정보로 사실을 자기 입맛대로 각색한 우리나라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행태를 감안할 때 경향의 접근은 차분한 편이었다. 다만, 고 황장엽씨의 빈소를 스케치한 12일자 사회면 중간 톱기사에서 수양딸의 말을 인용해 “북 3대 세습 속상해 떠난 듯”을 헤드라인으로 올린 것은 거슬렸다. 추측성 발언을 기사에 담는 건 용인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이 제목으로 부각하는 순간 독자의 마음속에는 사안을 바라보는 생각의 틀이 생성된다. 부적절하면서 자극적인 편집이다. 우연치곤 절묘하나 북한의 권력 세습과 황씨 사망 간의 인과성은 세인의 입방아에 오를망정 경향 같은 정론지가 주목할 거리는 아니다.
토론회 주제로 비화된 경향의 10월1일 사설도 ‘추정의 기정사실화’가 사달을 낸 측면이 있다.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은 게 “비판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고 “인정하겠다”는 의미로 귀결되는 걸까. 그런 논리대로라면 누군가 4대강 사업을 비판하지 않으면 이 사업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과연 그런가.
경향의 트레이드마크인 ‘책 읽는 경향’ 14일자에는 <침묵의 세계>가 소개되었다. 김중일 시인은 “많은 말을 쏟아내며, 다양하고 참신한 비유를 동원…해도, 결국은 충분히 말하지 못하며 말해진 말조차…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고 공허하게 부유”한다며 침묵은 “무엇을 기피하고자 할 때의 말하지 아니하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팽팽한 소통의 가능성”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노동당 논평은 나에게 그러한 침묵으로 다가왔고 이 침묵은 하나의 견해로 읽혔다. 이게 올바른 해독인지 여부를 떠나 다기한 해석만큼은 가능하다. 그럼에도 경향은 민노당 논평의 문구를 너무 단선적으로 규정했다. 신중했던 평소와 다른 자세였다.
경향답지 않은 모습은 또 있었다. 민주노동당 논평이 나온 다음날 조선일보는 ‘3대 세습 못 본 체하는 좌파는 가짜 좌파다’란 사설을 통해 낡아빠진 이념 공세에 나섰다. 문제의 경향 사설은 바로 그 다음날 나왔다. 민노당을 포함한 진보 진영의 커밍아웃을 왜 이리 채근하는지 모르겠다.
권력 세습을 상식적이라고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내키는 대로 비판하는 게 언론이나 정당의 임무는 아니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지적하듯 북한 세습은 비판하더라도 고려할 요소가 너무 많다. 이런 사안엔 신속한 입장 표명보다 ‘에포케(epoche)’가 제격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회의론자들이 즐겨 쓰던 이 용어는, 판단하는 사람이나 대상의 입장과 조건이 다양하기에 매사를 일률적으로 재단하지 않는 일종의 판단 유보를 뜻한다. 경향은 평소 사려 깊은 편집태도를 견지했다. 다른 언론에 비해 종북주의 논쟁을 거치며 “분당이라는 아픔까지 겪은” 민주노동당의 속사정에 밝을 터이다. 그런 경향신문이 조선일보와 흡사한 프레임으로 민노당을 압박하고 나선 건 낯선 광경이었다.
10월1일 사설에 무리수가 있긴 했다. 무엇보다 평소의 경향과 달랐다. 그럼에도 신문사로서 제기할 수 있는 목소리였다고 본다. 불씨가 되었으나 예기치 못한 파장일 수 있다. 자제력을 발휘해 자기 방어에 나서지 않은 경향의 후속 방침은 인상적이었다. 13일자 6면과 21면 기사를 통해 저간의 경과와 논쟁 구도도 공평하게 소개했다. 같은 내용의 기사가 중복 게재된 모양새가 다소 어이없긴 했지만. 그러나 15일자 사설 ‘북한 3대 세습과 진보정치의 과제’는 과유불급이었다.
이미 화두는 진보 진영에 던진 것 아닌가. 이제 경향은 시장의 여론 동향을 주시하고 전문가의 다양한 견해를 매개하면 된다. 15일자 사설 옆에 외부 기고(‘북한의 세습과 민족 구성원의 도리’)를 배치했고 16일에는 고정칼럼 ‘이택광의 왜?’가 알아서 이 주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지 않던가. 스스로 할 말이 있으면 내부의 기명칼럼을 활용하면 된다. 신문사의 공식 입장인 사설의 남용은 과도한 매체력 행사일 뿐이다. 그런데 경향 독자들이 이 이슈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다. 최소한 난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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