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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기사 2010.5.~

문예위, 예술인 ‘길들이기’ 논란

ㆍ“정부보조금 4년치 집행내역 통장사본 내라” 느닷없는 요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화예술위)가 보조금 지원을 받은 예술인들에게 2006년부터 4년간의 통장 사본을 제출토록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올해 초 문예단체들에 촛불시위 불참 확인서를 요구한 데 이어 또 하나의 예술계 길들이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화예술위는 지난 7일 문예단체 및 개인에게 위원장 명의로 전자우편을 보내 ‘민간보조금 지원 관련 자체 점검’을 위해 △지원금 수령·집행 관리통장 사본 1부 △지원금 집행 영수증 사본 1부 등의 자료를 16일까지 제출토록 요구했다. 이 보조금은 단체나 개인이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제출한 사업계획 예산의 50~70%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채택된 사업별로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2000만~3000만원 정도를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인들은 이 같은 요구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공연단체 간부는 “법적으로 자료제출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요구를 하려면 사업집행 당시에 했어야 한다”며 “지난해까지 성과보고서에 영수증을 첨부한 결산보고만 받다가 뒤집어 4년 전 자료까지 요구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공연기획자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나중에 문화부 감사 때 찍혀 별도의 감사를 받을 수 있다는 위협성 얘기를 들었다”며 “문화부가 지시한 것 같은데, 기금을 받아야 하는 영세단체 입장에선 덜컥 겁부터 났다”고 전했다. 

조직적인 거부 움직임도 일고 있다. 한국작가회의는 “지금까지 한번도 통장 입출금 내역을 요구받은 적이 없고, 다른 의도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라 일단 제출 마감일을 다음주로 연기해놓았다”며 “제출할 것인지는 내부 회의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공연단체 관계자는 “불합리한 요구라고 생각해 응하지 않기로 했다”며 “연명을 통해 성명서를 내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자료 제출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제기됐다. 보조금 사용 때 단일 계좌를 이용하지 않아도 됐기에 통장이 여러 개인 데다 공연비 등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경우도 많아 통장 내역과 영수증만으로는 집행 내역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문예단체는 “내라는 자료가 너무 많아 다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마감일인 16일까지 자료를 다 제출하지 못했다. 문화예술위는 예술인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다른 금융정보 거래 내역은 수정액으로 지워서 제출하라고 답변한 상태다. 

4년 전 자료까지 제출토록 한 데 대해서는 참여정부 당시 지원받은 예술인들을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단체 관계자는 “문화예술위가 문화부 감사 전에 책잡힐 일도 없앨 겸 예술인들에게 ‘지원금을 계속 받으려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길들이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