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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관련 기사 2010.2.~

사우디 수니파종교 지도자들 “반정부 시위는 神의 뜻 거역하는 것”

사우디 수니파종교 지도자들 “반정부 시위는 神의 뜻 거역하는 것”

ㆍ“모든 시위는 불법” 정부 입장에 맞장구
ㆍ정·교 유착상 반영… 소수 시아파는 반기

사우디아라비아의 시아파 유력 성직자인 타우피크 알 아미르(오른쪽에서 두번째)가 6일 동부지역 알 아사에서 석방된 뒤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환영인사를 받고 있다. 알 아미르는 지난달 27일 정부에 입헌군주제 전환과 인권 개선 및 부패 척결 등을 공개 촉구한 후 체포됐었다. 알 아사 | 로이터연합뉴스


전제군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반정부 시위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이슬람 수니파 지도자들이 ‘알라의 이름’으로 시위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사우디 왕실과 한 몸으로 기득권을 누려온 종교 지도자들의 일탈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다. 

수니파 고위성직자위원회는 6일 반정부 시위에 대해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며 “개혁을 청원하는 것은 신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이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는 사우디 정부가 모든 시위는 불법이라고 발표한 다음날 나온 성명이다. 이는 아랍권 시위과정에서 종교가 걸림돌로 작용하는 첫 사례로 사우디의 현실을 새삼 주목하게 한다.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서 종교계 지도자들이 반정부 시위에 적극 가담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유독 사우디 종교계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것은 왕실과 종교계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정도로 밀착돼 있기 때문이다.

국가를 통치하는 것은 절대군주인 국왕이지만 사우디 사회에서 일반 법률보다 우선하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해석할 권위는 이슬람의 종교 지도자 울라마들이 갖고 있다. 

또 사우디 왕실인 알 사우드 가문과 울라마 가운데서도 높은 지위인 ‘무프티’가 될 자격을 가진 알 아시 셰이크 가문은 초대 국왕인 압둘 아지즈 때부터 정략결혼을 수차례 맺으며 튼튼히 결속돼 있다. 

결국 왕실의 권한을 축소해 입헌군주제로 만들고, 시아파 차별을 시정할 것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질 경우 왕실은 물론 고위 성직자들에게도 위협이 되기 때문에 무프티들이 이끄는 고위성직자위회가 경고성명을 발표하게 된 셈이다.

사우디 종교지도자들의 성명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은 시위의 동력이 되는 동시에 반정부 세력이 합법적으로 모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수니파에 비해 차별받고 있는 시아파의 고위성직자 타우피크 알 아메르가 지난달 27일 입헌군주제 전환과 시아파 차별 시정을 공개 촉구하다 체포된 것을 계기로 지난 3~4일 동부의 시아파 거주지역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소규모 시위지만 사우디에선 혁명적인 변화다. 

사우디 반정부 세력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자고 호소한 오는 11일은 이슬람의 금요 예배일이기도 하다. 이집트, 튀니지 등 다른 중동 국가들에서도 금요예배 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어떠한 독재자도 금요예배만은 원천봉쇄할 수 없는 아랍권의 문화가 마련해준 의사표현의 장인 셈이다. 

사우디와 인접한 바레인에서는 차별받아온 시아파들이 주축이 된 시위에 일부 수니파가 동참해 수천명이 종파간 통합을 기원하는 인간띠를 만들기도 했다. 정치권력과 야합한 사우디 종교지도자들의 시도가 과연 먹혀들지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한편 사우디 당국은 시아파 성직자 알 아메르를 6일 석방했다고 이날 알자지라방송이 전했다. 사우디 인권단체 인권제일사회에 따르면 지난 3일 이후 시아파가 주로 거주하는 지역인 동부 카티프, 아와미야 등과 수도 리야드 등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체포된 시위대는 26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오는 11일 ‘분노의 날’ 시위를 벌이자는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약 1만7000명이 가입한 상태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