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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교육팀 박아름


어린이날,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동물원에 다녀온 적 있는 분들 많으시지요. 우리사회의 ‘사람동물’ 뿐 아니라 다른 동물의 삶에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동물원 역시 사람들의 즐거움만 추구하지 말고 야생동물 보호와 종보전 연구, 그리고 동물보호교육 등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의 많은 동물원은 동물쇼, 동물타기, 만지는 체험 및 함께 사진찍기 등 동물의 삶을 힘들게 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찾아가는 동물보호교육’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동물보호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카라 제공.



혹시, 체험동물원 다녀오셨나요

아이들은 호기심에 동물을 만지고 싶어 할 수 있지만, 수많은 이들의 낯선 손길을 감당하는 동물의 복지는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체험’동물원은 동물들에게는 ‘공포체험’일 수 있는 것이지요. 동물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이런 식의 직접적 만남은, 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곧 동물을 ‘사람 편의대로 이용하고, 희생시키는’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줄 수 있어 문제적입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어린이에게는, 사람처럼 좋고 싫음을 느끼는 그들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배움, 내가 받고 싶은 친절한 태도를 동물에게도 보여 달라는 이야기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동물보호교육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어 반갑지만, 아쉽게도 아직 우리 교육현장에서 쉽게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그 많던 교실 속 동물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오히려 우리 교육현장에는 무책임한 ‘올해용 동물 기르기’가 동물보호교육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학교는 동물이 적절한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기에 적절한 곳은 아니지요. 수많은 소음과 ‘사람냄새’에 둘러싸여야 하고, 무엇보다 활동반경이 심하게 좁아집니다. 애초에 자연스러운 먹이, 배변, 자기돌봄 활동을 할 수 없는 조건에서 살아가는 동물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다람쥐는 더럽다’거나 ‘거북이는/금붕어는 사람보다 하등하다’는 식의 부정적 고정관념만 갖게 하기도 합니다.

동물을 교실에 살게 할 때 그 동물이 ‘어디에서 와서 (학년이 끝나면) 어디로 가나’에 대한 질문이나, 그가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없는 ‘기르기 체험’은 올바른 책임감을 길러줄 수도 없고, 생명의 신비에 대한 깨달음에는 조금도 근접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동물과의 만남은 동물을 교실로 소환할 것이 아니라, 동물이 있는 곳에 찾아가 거리를 지키면서 하는 조심스러운 관찰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교문 앞 병아리들은 어디서 왔을까요

어렸을 적 학교 앞에서 500원짜리 병아리를 사본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섣부른 이별’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거나, 성장하다가 베란다에서 생을 마감했거나, 도저히 감당을 못하고 ‘시골로 보내’서 이별했다는 식입니다. 한 생명을 보살피는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그 대상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어떠한지 배울 기회를 채 갖기도 전에, 병아리, 강아지, 고양이, 토끼, 햄스터가 아이들의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준비되지 못한 만남 속에 이 동물들이 우리의 ‘돌봄 실패 연습’에 희생되는 동안,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이 동물들을 계속 생산해서 무책임하게 판매하고 있고, 이에 대한 행정의 제재나 감독은 전무하다는 사실입니다. 보호자와 함께 있지 않은 16세 미만의 어린이․청소년에게 동물을 주지도 못하게 하는 나라도 있다는데, 우리 사회도 어린이들에게 함부로 헐값에 동물을 떼다 넘기는 행위를 제재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찾아가는 동물보호교육’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만든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 카라 제공.



무엇을 위해 해부수업을 해야 하나요

동물실험을 당연하고 일상적인 문제로 보게 하는 전수 ‘해부수업’ 역시 안타까운 모습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해부수업은 살아있는 동물을 해부 그 자체를 위해 죽여서 이용하는데, 심지어는 지역의 길고양이를 잡아서 해부에 이용한 수업도 있었습니다. 필자 역시 초등학교 시절 살아있는 개구리의 해부수업에 ‘참여해야만’ 했는데, 솔직히 그 실습의 배움이 꼭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들며, 그 경험과 아무런 상관없이 살아간 어린이들의 손에 고통스럽게 죽었어야 했던 그 개구리를 생각하면 안 하는 것이 실용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옳았다는 판단이 뒤늦게 듭니다. 학생들의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 역시 문제입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찾아가는 동물보호교육’에 참가한 어린이들. 카라 제공.



왜인지는 모르나 동물보호교육 현장에서 만난 요즘의 청소년들은 ‘예전에 교육받은 나처럼 해부수업을 꼭 받지 않아도 됐겠지’라고 생각했다가, 의외로 개구리 해부수업, 소 눈알 해부수업, 사설 과학학원의 다양한 해부수업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한 학생의 소송으로 해부수업의 선택권을 사후에 인정한 사례가 있습니다. 미래세대를 열어갈 우리 학생들에게, 교육현장이 동물을 존중하는 과학과 시민의식을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2012년부터 수도권 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동물보호교육’을 해 오고 있습니다. www.ekara.org



'환경단체,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의 현장 이야기'는 환경단체,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의 현장 이야기를 담는 카테고리입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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