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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의 현장 이야기

어느 봄날의 외침 “사람들아 우리도 좀 살자”

'환경단체,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의 현장 이야기'는 환경단체,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의 현장 이야기를 담는 카테고리입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도 연재될 예정입니다. 그 첫 글로 녹색연합 황인철 평화생태팀장의 글을 올립니다.



어느 봄날의 외침 “사람들아 우리도 좀 살자”





봄이 시작된 3월, 주말이면 전국의 유명한 산들은 북적인다. 서울과 밀착되어 위치한 북한산 국립공원도 예외는 아니다. 대도시에 이처럼 국립공원이 인접하고 있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그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잦을 수 밖에 없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국립공원이 버스 한 번, 전철 한 번에 타고 찾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자. 생태계 보호라는 취지로 지정된 국립공원의 입장에서 등산객의 접근성이 높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더군다나 지금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라는 “빠르고 편리한” 운송수단이 들어선다면? 





북한산 탐방로 입구에서의 1인 시위


3월의 마지막 주말, 환경단체 회원들이 북한산성 입구에 모여들었다. 2014년 하반기부터 다시 불붙기 시작한 국립공원의 케이블카 문제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현재 강원도 양양군을 비롯한 여러 지자체에서 설악산, 지리산 등의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건설계획을 우후죽순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 배경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2014년 중순, 박근혜 정부는 산림환경훼손이 우려되는 각종 규제완화 정책을 내놓았다. 케이블카, 호텔, 리조트 등 각종 관광시설이 무분별하게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더군다나 작년 말 “평창올림픽에 맞춰 설악산 케이블카를 추진하라”고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였다. 하지만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의 경우, 이미 2012,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국립공원위원회에서 부결된 바 있다. 환경성, 경제성, 기술성 등 모든 측면에서 타당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꺼진 것 같던 케이블카의 불씨를 다시 지피고 있다. 

북한산을 오르며 케이블카반대 캠페인 중인 범대위 회원들



녹색연합,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모임, 녹색친구들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자연공원내케이블카반대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소속 단체 회원 20여 명은 이런 현실을 북한산 탐방객들에게 전하는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사실 북한산도 지난 2012년에는 케이블카 후보지 가운데 한 곳이었다. 이날 캠페인에는 당시 1000일 산상 시위를 진행했던 김병관 대장과 박그림 녹색연합 대표 등도 함께 참여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탐방로 입구에서 간단한 퍼포먼스를 준비하던 범대위 회원들을 막아선 것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이었다. 미신고 집회라는 것이었다. 급기야 경찰까지 출동하기에 이르렀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제지하는데 항상 재빠른 공권력의 모습이 이날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결국 입구에서의 캠페인은 박그림 대표의 1인 시위로 대체하고 9시30분 경 북한산 정상 백운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범대위 회원들의 등과 가슴에는 작은 글씨들이 쓰여 있었다. “No 케이블카,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돼서도 안되고 될 수도 없다.” 

복원을 위한 출입금지구역에 무분별하게 출입하는 모습

복원을 위한 출입금지구역에 무분별하게 출입하는 모습



약 2시간30분 가량 산을 오르자, 북한산 정상, 백운대가 가까이 보였다. 그런데 정상을 덮고 있는 것은 그 이름처럼 ‘하얀 구름’(白雲)이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등산인파였다. 로프를 잡고 오르내리는 길은 한참을 기다려야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탐방객들로 가득했다. 구름처럼 덮은 사람의 발길은 출입금지구역도 서슴없이 넘었다. 훼손된 정상부를 복원하기 위해 출입을 금지한 지역까지 돗자리를 펴고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인간이 자연을 무분별하게 이용한다면, 자연은 인간 곁에 더 이상 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이런 탐방문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북한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설악산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립공원이 이미 과도한 탐방압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곳에 케이블카가 들어선다면? 사실상 “미래세대를 위한 생태계 보전”이라는 국립공원 본래의 취지는 오간데 없고, 환경훼손은 가속될 것이 뻔하다. 국립공원에 필요한 것은 케이블카와 같은 관광시설이 아니라 정상부 예약탐방제, 탐방로휴식년제와 같은 제도의 도입이다. 

백운대의 박그림대표(녹색연합)와 지성희사무국장(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모임)



범대위 회원들과 함께 백운대 정상에 오른 박그림 대표는 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설악산은 인간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곳은 산양과 같은 수많은 멸종위기종들이 살아가는 집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는 집에 매일 수백명씩 찾아온다면 여러분들은 견딜 수 있겠습니까? 케이블카가 안되는 이유입니다.”

범대위 회원들이 백운대 정상에서 진행한 카드섹션에도 “사람들아 우리도 좀 살자!!”라고 외치는 산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산양은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산양은 지금도 외치고 있다. 다만 인간들이 못 듣고 있을 뿐. 

백운대에서 진행한 케이블카 반대 카드섹션

백운대에서 진행한 케이블카 반대 카드섹션

백운대에서 진행한 케이블카 반대 카드섹션



이 날 카드섹션과 함께 진행한 간단한 설문조사에서 대다수의 시민들은 케이블카의 문제점에 공감하는 입장을 표시했다. 환경단체에서 외치는 “케이블카 반대”는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다. 케이블카 “반대”의 외침은 생태계의 최후 보루인 국립공원을 “보전”하자는 목소리다. 돈벌이를 위해 더 쉽게 더 빠르게 자연을 소비하는 수단의 도입 대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생”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산양이 사리지는 땅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참여한 케이블카 설문

시민들이 참여한 케이블카 설문


범대위는 광화문, 대학로 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매일 케이블카 반대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4월에는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다. 국립공원에 더 이상의 케이블카가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을 환경부는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케이블카 계획이 부결될 때까지 “우리도 좀 살자”는 산양의 외침은 계속 될 것이다. 

백운대의 케이블카 반대 캠페인

백운대의 케이블카 반대 캠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