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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이야기 한가득

본의 아니게 낚시가 된 슈퍼맨의 신문사 퇴직 기사

지난 23일 미국 DC코믹스의 슈퍼히어로물 슈퍼맨의 주인공이 신문사를 떠난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24일자 지면에 기사화됐고, 인터넷에는 23일 저녁에 게재되었습니다. 그런데 네이버에 올라간 이 기사는 본의 아니게 낚시 기사가 되어 네이버 이용자들이 단 악플이 줄줄이 달리게 되었더군요.

왜 그런가 했더니 네이버에 공개된 제목에 슈퍼맨이 빠지고 '나, 이제 신문사 기자 그만둡니다'라고 돼있었더군요. 많은 이들이 '앗, 뭐지? 기자가 사표 쓰면서 뭔가 양심고백이라도 하나?'라는 생각으로 클릭을 해봤더니 슈퍼맨 주인공이 그만둔다는 내용이었으니 낚시 기사가 될 수밖에요.

댓글을 단 이들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사실 이건 종이신문과 온라인의 차이로 인해 숱한 누리꾼들을 낚아버린 본의 아닌 낚시였습니다. 지면에 실린 아래 기사를 보시면 조금 이해가 가실 겁니다.



말풍선이 슈퍼맨에 연결되어있는 지면 기사를 보면서 이 기사가 낚시 기사가 될 거라고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 기사는 그냥 만화 주인공 슈퍼맨이 신문사를 그만두고 인터넷 언론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는 화제성 기사로 그치는 내용이 아니기도 합니다. 클라크 켄트가 반 세기 넘게, 작품 속에서는 7년 동안 신문사 기자를 한 것은 단지 정체를 숨기고 생활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슈퍼맨의 또 다른 자아인 자신이 쓰고 싶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기자가 정보 취득이 용이한 직업에다 이전에 미국 사회에서 기자가 정의를 실천하는 직업으로서 선망받는 대상이었던 점도 고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켄트가 신문사를 떠나는 것은 더 이상 신문이 저널리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화제성 기사만을 싣고 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습니다. 기사에는 포함되어있지 않지만 그가 일하던 데일리플래닛은 대기업에 인수된 후 저널리즘으로서의 기능을 빠르게 상실하고 있는 상황이었고요. 결국 슈퍼맨의 사표는 신문이라는 올드미디어가 점점 힘을 잃고,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지요. 게다가 슈퍼맨은 아예 기자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뉴미디어인 인터넷 매체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각광받고 있는 진보적 인터넷 매체 허핑턴포스트 같은 매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사를 쓰면서 종이신문 기자인 저는 참 씁쓸한 기분이 되었고, 회사에서도 비슷한 반응들이 많았습니다. 신문기자라면 누구나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악플이 줄줄이 달리는 걸 보고 온라인뉴스팀에 전화를 해 제목을 수정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나름 의미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서 쓴 기사가 본의 아니게 낚시성 기사가 된 것보다는 종이신문의 현실 때문에 씁쓸한 기분이었습니다.


이건 사족이지만 이왕 네이버 댓글에서 반말에다 욕에다 가족까지 언급된 폭언을 들었으니^^;; 해명해 두자면 종이신문의 경우는 취재기자, 즉 기사내용을 취재하고 작성하는 기자는 제목을 다는 업무를 맡지 않습니다. 제목을 달고 지면에 기사를 배치하는 업무는 편집기자가 따로 맡고 있지요. 온라인매체의 경우는 기사도 쓰고 제목도 다는 경우도 많을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