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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국제기사

[세계]소말리아 어린이에게 새 희망을


새 헌법에는 어린이 노동을 금지하고 어린이들을 학대와 방임에서 보호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어린이들을 병사로 사용하는 것과 어린 나이에 결혼을 강요당하는 것 역시 불법으로 규정했다.

소말리아 어린이 이삭 압디(오른쪽 사진)는 여동생과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매일 15시간씩 일하고 있다. 10살인 압디가 하는 일은 마약잎인 캇을 파는 것으로, 매일 저녁 일이 끝나면 손님들이 버린 캇 잎의 다발을 받을 수 있다. 이 잎들 가운데 상태가 괜찮은 것을 모아 팔아도 벌 수 있는 돈은 하루 1달러가 채 안 되지만, 이 적은 돈마저 없다면 압디의 가족은 굶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말리아인들이 지난 8월 9일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모하메드 압둘라히 전 총리의 사진이 그려진 현수막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압둘라히는 8월 20일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 AP연합뉴스


소말리아에서 새 헌법 초안이 통과되고 새로운 정부 구성이 가시화되면서 소말리아 어린이들의 고통이 종식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소말리아 어린이들은 오랜 세월 어린이 병사로 팔려가고, 기근에 고통받고, 질병으로 숨져갔다.

소말리아 제헌평의회는 지난 8월 1일 과도정부 체제를 끝내고 새 연방정부를 출범시키기 위한 헌법 초안을 마련했다. 지역 원로들에 의해 선정된 645명의 제헌평의회 의원들은 표결을 통해 헌법안을 채택했으며, 전체 유효투표의 96%인 621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어린이 보호 내용 담은 새 헌법 제정
새 헌법안에는 모든 소말리아 국민은 부족과 종교를 떠나 평등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정부체제로는 연방제를 채택했다. 압디라흐만 자브릴 헌법담당 장관은 이날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라며 “우리는 오늘 지난 8년간 이어져온 과업이 완수되는 것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또 소말리아 과도정부는 8월 중에 새 의회를 구성해 헌법안을 공식 통과시키고 과도정부의 임기가 끝나는 20일에는 선거를 통해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

AP통신은 지난 8일 ‘소말리아의 헌법이 어린이들에게 큰 약속을 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새 헌법에 담긴 어린이들을 위한 내용을 소개했다. 새 헌법에는 어린이 노동을 금지하고 어린이들을 학대와 방임에서 보호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어린이들을 병사로 사용하는 것과 어린 나이에 결혼을 강요당하는 것 역시 불법으로 규정했다. 또 어린이들은 모두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과 모든 소말리아인들은 중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헌법이 만들어지고 새 정부가 구성된다고 해서 소말리아인들의, 특히 어린이들의 고통이 끝날 것이라는 예상은 헛된 장밋빛 전망에 그칠지도 모른다. 소말리아 어린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요소들은 크게 테러조직과 내전, 가뭄과 기근을 들 수 있으며 이 문제들은 모두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태다.

소말리아에서는 모하메드 사이다 바레 대통령이 이끌던 독재정권이 1991년 군부 지도자 무함마드 파라 아이디드가 이끄는 군벌연합의 쿠데타로 무너진 이후 30년 넘게 무정부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2004년 압둘라히 유수프 아메드 대통령의 과도정부가 구성되었으나 제대로 된 정부로서 기능하고 있지는 못하다.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은 수도 모가디슈와 인근 지역 정도에 불과하다. 

소말리아 어린이 이삭 압디가 7월 15일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마약의 일종인 캇의 잎을 정돈하고 있다. 모가디슈/AP연합뉴스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와 연계돼 있는 알샤바브는 남부지역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으며 내전은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알샤바브는 소말리아 정부 고위인사들을 공격하겠다며 위협을 가하고 있고, 8월 초에는 헌법 초안을 승인하는 회의장을 공격하려던 자살폭탄 시도 2건이 적발된 바 있다. 2009년 현재 내전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은 40만명에 달하고, 외국으로 피신한 난민 67만명에, 내부 난민도 14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테러조직과 내전, 기아로부터 구해야
유엔은 지난해 7월 20일 소말리아 남부의 일부 지역이 식량부족이 심화되면서 기근을 겪고 있다고 선언한 바 있으며, 기근으로 인해 수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의 기근 기준은 어린이의 30% 이상이 급성영양실조를 앓고 있고, 인구 1만명당 2명이 매일 굶어죽는 상태를 말한다. 유엔은 이들 지역이 지난 2월 기근상태를 벗어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크 보덴 유엔 소말리아 인도조정관은 지난 7월 “현재도 251만명 이상이 긴급한 원조가 필요한 상태다”라고 말하며 소말리아의 기근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근이 소말리아만의 문제가 아닌 것도 피해를 키우고 있다. 소말리아 남부지역을 벗어나 인근 지역으로 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하라 사막 남쪽의 서아프리카 사헬지역의 9개 나라에서는 1870만명이 식량위기를 겪고 있으며, 110만명의 어린이가 급성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 이 지역에서 기근이 만성화된 원인은 심각한 가뭄 때문이다. 이전에도 이 지역에서는 가뭄이 주기적으로 발생해 왔지만 최근에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가뭄이 찾아오는 주기가 짧아지면서 더욱 빈발하고 있는 상태다.

또 내전이 지속되면서 정부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도 소말리아 어린이들의 고통을 키우고 있다. 알샤바브가 장악하고 있는 남부지역에는 이들의 방해로 외국으로부터 온 지원물자를 전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같은 가뭄을 겪으면서도 피해 규모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척박한 상황에서 어른들뿐 아니라 어린이들도 생존 자체가 목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압디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생존이 최우선이다”라며 “돈을 더 벌게 되면 가족들에게 가져다주고 있다”고 말했다. 압디는 “그렇지만 매일 돈을 벌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며 “때때로 나는 하루 종일 빵 한 조각으로 허기를 면할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내전 지속되면서 정부 제기능 못해
모가디슈에서 반군이 축출되면서 폭력사태는 줄어들고 있지만 거리로 내던져진 아이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소말리아 남부를 덮친 기근으로 수만 가구가 그나마 물자가 많은 편인 모가디슈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건강한 아이들은 알카에다 연계조직에 납치돼 자살폭탄 공격 요원으로 양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의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양성학교에서 10세 이하의 어린이들이 자살폭탄 요원 교육을 받는 현장이 적발됐다고 지난 13일 보도했다. 이 학교에서 알샤바브 조직원들은 아이들에게 자살폭탄을 터뜨려 순교하면 천국에 간다고 교육을 하고 있었으며, 아이들은 침대에 쇠사슬로 묶인 채 감금돼 있었다. 유니세프는 소말리아를 초등학교 등록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로 꼽고 있다.

현재 소말리아에서 압디처럼 일찌감치 노동을 시작한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내전이나 테러조직이 아니다. 새로 마련되는 헌법과 새 정부는 압디를 비롯한 소말리아 어린이들의 가장 큰 문제인 배고픔이라는 난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다. 압디는 “만약 우리가 학교에 가고 더 나은 직업을 얻을 수 있다면 삶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범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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