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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관련 기사 2010.2.~

무바라크의 ‘반전 드라마’… 퇴임거부서 굴복까지 1박2일

무바라크의 ‘반전 드라마’… 퇴임거부서 굴복까지 1박2일

ㆍ희망에서 절망, 다시 희망으로

희망에서 절망으로, 다시 희망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시위대의 즉각 사퇴 요구에 굴복하기까지 1박 2일은 반전이 거듭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대는 물론 전 세계가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예상한 것은 10일 저녁이었다. 이날 오후부터 이집트 군부와 집권 여당이 무바라크 하야를 예고하는 발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특히 군부와 집권 국민민주당(NDP)이 무바라크의 하야가 임박한 듯한 발언을 내놓은 직후 이집트 국영방송이 무바라크의 대국민 연설을 예고한 것이 기대를 한껏 부풀게 했다.

         이집트 공무원들이 카이로의 내각 건물에서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초상화를 떼어내고 있다. (AP연합뉴스|경향신문 DB)

무바라크의 하야 기대로 이날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위대의 규모는 순식간에 수십만명으로 불어났다. 승리를 확신한 시민들은 축제 분위기를 자아냈고, 외신들은 무바라크의 하야가 예상된다는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수장의 무바라크 하야 예상 발언은 무바라크 하야를 기정사실로 만든 또 다른 불씨였다.

무바라크 하야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이날 오후 이집트 군 고위간부의 발언으로부터 시작됐다. 알자지라방송에 따르면 타흐리르 광장에서 승리의 함성이 터진 것은 하산 알 로웨니 카이로 방위사령관이 시위대를 상대로 “당신들의 요구는 오늘 밤 모두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선언한 오후 5시20분쯤이다. 

군부는 오후 5시30분쯤 국영방송의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군이 국가를 수호할 것이며 시위대의 정당한 요구를 지원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군 최고지휘관회의의 ‘코뮈니케 1호’를 발표했다. 방송 뒤 무바라크 하야를 기대하며 타흐리르 광장으로 모여드는 시민들은 급격하게 늘었다. 오후 6시쯤에는 미 CIA 국장 리언 파네타가 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무바라크가 하야할 것이라고 잘못 판단한 내용을 증언했다. 곧이어 이집트 국영방송이 무바라크의 대국민 연설을 예고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세계가 이집트의 변화의 순간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해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이날 오후 10시45분에야 연설에 나선 무바라크는 사임을 거부했다. 타흐리르 광장의 축제 분위기는 순식간에 절망과 한숨으로 뒤바뀌었다. 이집트 국민들의 분노는 결국 당초 금요예배 뒤 100만명의 항의시위가 예정된 11일 목표를 웃도는 군중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최대 규모의 시위로 폭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국민 연설에서 9월 대선 때까지 대통령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던 무바라크가 하야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정오 금요예배가 끝나면서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등 전국 주요도시에서 도도한 강물처럼 흘러나온 인파는 대해(大海)를 이뤘다. 무바라크의 노욕이 역사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마침내 오후 6시 술레이만 부통령이 무바라크의 하야 소식을 전격 발표하면서 무바라크의 대국민 연설이 끝난 지 19시간 만에 다시 반전됐다. 1박2일 동안 이집트 국민들을 울리고, 웃겼던 드라마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김기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