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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관련 기사 2010.2.~

무바라크 잇단 유화책 ‘약발’ 안 먹힌다

무바라크 잇단 유화책 ‘약발’ 안 먹힌다

ㆍ공무원 급여 인상 등 국면 전환 시도
어린이도 “퇴진” 한 이집트 소년이 7일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대와 함께 “소(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지칭)는 사람들을 살 수 있게 놔 둬라”라고 적힌 종이와 이집트 국기를 들고 서 있다. 이집트 국민들 사이에서 무바라크는 ‘웃는 소’라는 뜻의 ‘가무스 다히크(Gamus Dahik)’로 통한다. 카이로 | AP연합뉴스


이집트 정부와 야권의 2차 대화가 8일(현지시간) 예정된 가운데 무슬림형제단과 시위대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퇴진 요구를 이어갔다. 이날 헌법개혁위원회 설립을 승인한 무바라크 정권은 공무원 급여 인상 등 유화책을 발표하며 국면 전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차 대화는 지난 6일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 이끄는 정부와 범야권이 가진 1차 대화에 이은 것이다. 1차 대화에서는 헌법개혁위원회 등을 구성하는 방안이 도출됐으나 야권 일부는 무바라크가 먼저 퇴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야권 최대 세력인 무슬림형제단도 ‘무바라크 즉각 퇴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부와의 대화를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술레이만은 무바라크가 헌법개혁위원회와 정치개혁을 감독할 독립위원회의 설립을 승인했다고 밝혔으나 위원 명단과 선발 과정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물밑대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이날까지 15일째 잦아들지 않고 있다.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시위대들은 독자적으로 ‘청년의 분노 혁명 통일 지도부’를 구성해 무바라크의 퇴출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기로 결정했다. 위원회 위원에는 4·6청년운동과 무슬림형제단의 젊은층,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지지그룹, 정의와 자유 그룹 등 5개 그룹의 대표 10명이 선정됐다. 이들은 8일과 11일 다시 대규모 집회를 예고한 상태다.

뉴욕타임스는 여전히 수만명이 광장에 남아 있으며 군부가 이날부터 정부의 취재 허가증을 받지 못한 외신기자들의 타흐리르 광장 접근을 막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자 와엘 고님이 전날 석방되면서 이에 고무된 젊은층이 새로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집트 내각은 7일 공무원 등 공공부문의 월급을 4월부터 15% 올리고, 연금을 인상하기 위해 65억 이집트파운드(약 1조2000억원)를 지출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약 8000만명의 이집트 인구 가운데 혜택을 받는 공공부문 관계자가 600만명에 이를 것이라며 생필품 가격 인상에 따른 민생고를 해결해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이 밖에도 친 무바라크 시위대와 반정부 시위대의 충돌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명령하고, 사망자 유족 및 부상자들에게 보상하기 위한 기금을 설립하는 방안을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전체 노동력의 4분의 1에 달하는 이집트 관료와 군부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위 지지자인 자카리야 압델아지즈 판사는 AP통신에 “정권이 하고 있는 것은 공기 중에 연막을 치고 사람들이 서로 등을 돌리게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레함 엘데소키 벨톤 금융 투자은행 수석분석가는 알자지라에 “공무원 대부분은 아주 월급이 낮기 때문에 구매력이 낮아 인플레이션을 조정하는 데 별다른 영향을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미르 라드완 신임 재무장관은 “급여 인상은 시민들에게 주는 뇌물이 아니라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빵과 곡물, 식용유 등의 가격이 45%가 넘는 인상률을 보이는 등 경제상황 악화가 시위를 촉발한 만큼 이집트 파운드화가 급락할 경우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이것이 이집트 민중들의 불만을 다시 점화시킬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한편 이스라엘은 술레이만을 일찌감치 차기 지도자로 지목했던 것으로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위키리크스의 미 외교전문을 인용해 보도했다. 2008년 8월 이스라엘발 미국 외교전문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무바라크가 사망하거나 활동이 불가능할 경우 술레이만이 대통령직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일찌감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