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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뷰]美 ‘임계전 핵실험’의 자가당착

제가 아사히신문 기사를 보고 발제해서 기사화된 내용으로 워싱턴 특파원 선배께서 기자 칼럼을 쓰셨네요. 딱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인 것 같습니다. 저희와 한겨레를 제외한 다른 언론들은 오바마 행정부 들어 처음 실시된 이번 핵실험에 대한 기사를 쓴 곳이 거의 없었어요. 써도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죠. 모르고 그러는 것인지 알고도 그러는 것인지 자못 궁금합니다.

[글로벌 뷰]美 ‘임계전 핵실험’의 자가당착
 유신모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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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힘주어 내세우는 ‘핵무기 없는 세상’이 과연 올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그 날은 아마도 미국의 핵무기가 없어지는 날일 것이다. 지구상에 핵무기를 단 1개라도 갖고 있는 나라가 남아 있는 한 미국은 자신들의 핵무기를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15일 미국이 4년 만에 처음으로, 또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임계전(前) 핵실험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같은 추측은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됐다. 

임계전 핵실험은 고성능 폭약을 터뜨려 플루토늄이 연쇄반응을 일으키기 직전 상태까지 충격을 준 뒤 핵물질이 비산하는 양태를 분석해 핵폭발 성능을 예측하는 실험이다. 오래된 핵무기의 폭발 신뢰성과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핵폭발이 없었고,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서도 금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어 임계전 핵실험은 핵실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은 미국도 안다. 

임계전 핵실험은 섬광이 없어 위성으로 관측하지 못하며, 폭발력이 작아 지진파로 감지하기도 어렵다. 지하에서 실시한다면 방사능 감시장치로 관찰할 수도 없다. 임계전 핵실험을 악용하면 ‘핵출력(yield) 제로’의 실험을 했는지, 소량의 출력으로 실제 폭발실험을 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핵폭발이 없었더라도 슈퍼컴퓨터의 모의실험을 이용해 핵분열 연쇄반응에 이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압력·온도변화를 측정하면 실제 핵실험이나 다를 바가 없다. 더욱이 미국은 이번 실험을 하면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도 지켰던 ‘48시간 전 국제사회 통보’의 관례도 지키지 않았다. 만약 이란이나 북한이 임계전 핵실험을 했다면 미국은 이를 핵실험이 아니므로 괜찮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오바마 대통령은 핵 보유국에는 핵 군축을, 핵 미보유국에는 핵 야망 포기를 촉구하고 있지만 미국이 솔선수범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1년 전 오바마 대통령의 ‘핵무기 없는 세상’ 선언에 공감한 국제사회는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확인한 것은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라는 그의 선거 구호 안에 핵실험도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다.